성진아파트관리소장 박희윤씨
성진아파트관리소장 박희윤씨
함께사는 세상 [36]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5.26 00:00
  • 호수 5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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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사무소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마치 작은 아파트 전체가 자신의 집 같다는 박희윤 소장. 그는 성진아파트와 인연을 맺은지 10년이 되어간다.
▶작은 아파트이지만 할 일은 많아요...
옥천읍 장야네거리에서 동이 방면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아파트 두 동이 나란히 서있다.

하나는 지난 90년 90세대가 입주를 시작해 옥천에 고층아파트 시대를 연 `그린아파트'이고 다른 한 동은 64세대가 입주해 있는 작은 규모의 `성진아파트'다. 다른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달리 한 개의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여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작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의 덩치가 작아진 것만큼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담당해야 할 몫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12층의 성진아파트 관리를 맡고 있는 박희윤(47·옥천읍 장야리)씨는 관리소장과 가스안전관리자 등의 역할로 아파트와 함께 생활해 온 지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박희윤씨가 맨 처음 아파트와 인연을 맺은 곳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성진아파트와 이웃인 그린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었던 지난 90년 그린아파트에서다. 일반 회사에서 `산업보일러실'에 근무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아파트와 인연을 맺은 박 소장은 그렇게 5년을 그린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를 하다가 한 가스회사의 안전관리자로 취직을 해 성진아파트의 가스저장고 관리를 맡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위치에서 아파트를 관리하던 중 99년 성진아파트 입주자 모임 측에서 관리소장을 겸직해 줄 것을 제안받아 다시 관리소장으로, 좀더 가까이에서 아파트를 관리해오고 있다.

▶순찰로 시작되는 관리소장의 업무
대형 아파트 단지의 경우 관리사무소에 전기기사와 사무직원 등을 따로 두고 있지만 성진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경비아저씨까지 포함해 모두 3명의 직원이 전부다. 그나마 경비아저씨 두 분은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일을 하니까 평상시 관리사무소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관리소장인 박희윤씨와 경비아저씨 한 명뿐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순찰부터 시작하죠. 가스저장탱크의 이상유무를 살펴보고 기계실을 돌아서 엘리베이터도 한 번 타보죠."

성진아파트 기계실에는 많은 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급수시설을 비롯해 소방시설, 비상발전시설까지. 전기시설과 엘리베이터의 관리는 용역을 줘서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역시 관리소장인 박씨가 직접 찾아다니며 눈으로 점검을 해야 안심이 된다.

"일을 나누어서 책임져 줄 직원이 많지 않으니까 매일 긴장하면서 살아야 돼요. 적은 인력으로 신경써야 할 것들도 많고... 그렇다보니 제가 퇴근하면 경비아저씨들이 할 일이 많아지죠. 그만큼 대형 아파트의 경비아저씨들보다 고생이 많습니다."

동료 직원의 노고도 빼놓지 않고 얘기하는 박 소장을 지난 21일 찾았을 때도 6월분 관리비 납입고지서를 챙기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전산으로 출력한 고지서가 아니고 일일이 직접 작성한 납입고지서였다. 왠지 먹지를 사이에 끼고 볼펜으로 꼭꼭 눌러쓴 고지서가 인쇄물에 익숙해진 눈에는 정감있게 다가왔지만 일일이 써 내려가야 할 수고도 함께 읽혔다.

"이렇게 호수하고 이름하고 관리비 내역을 직접 써서 배부하다 보니까 세대주들 이름이 매우 낯익게 되지요...(웃음)"

64세대밖에 되지 않으니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도 다른 시설물관리와 함께 하면서 직접 한 달에 한번씩 수도검침을 해가며 작성하는 납입고지서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전산프로그램을 사용해도 되는데 그 만큼 입주 세대에 부담으로 돌아가잖아요. 세대 수가 적다보니 경비가 늘어난 데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것은 관리사무소에도 부담이죠."

세대주들이 적다보니 나누어야 할 몫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섣불리 공동경비를 지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파트를 건축한 지 10년이 다 돼 각종 기계를 비롯한 설비의 교체 비용 발생이 증가할 시기여서 세대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박 소장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사무소에 앉아서 바라보면 내 집 같죠..
"빽빽한 대형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아요. 예전에 고만고만한 집들이 펼쳐져 있을 때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를 보면 답답하잖아요."

아파트와 함께 10년을 살아온 그도 삭막하고 답답한 대형아파트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과거 옥천의 모습처럼 시원한 들판과 포근히 감싼 주변 산의 능선이 그대로 보이는 단독주택들이 아직도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나마 입주 세대가 많지 않아서인지 성진아파트는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의 삭막함도 큰 아파트보다는 덜한 것 같다고 박 소장은 얘기한다.

그래서 야트막한 산을 뒤로 하고 앉아있는 성진아파트는 대도시 한가운데 꽉 들어찬 아파트와는 다른 정을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아파트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다니며 살피는 관리소장 입장에서는 관리사무소에 앉아 창을 통해 바라보는 아파트가 이제는 내 집 같이 느껴진다는 것.

"세대주가 적어서 좋은 것도 있어요. 입주자 모임이나 부녀회 모임 같은 것이 잘 되죠. 지난번 어버이날에도 아파트 부녀회에서 조그만 잔치를 열었어요."

게시판에 붙이는 관리사무소의 홍보문을 잘 따라주거나 분리수거 등 공동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들을 잘 정리해주는 입주자들이 고맙다는 얘기도 잊지 않는다. 또 아이들이 많아 때로는 아래 위층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아파트 곳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박 소장이 갖고 있는 성진아파트에 대한 애정의 요소다.

"지난 해 겨울인가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수도계량기 동파 사고가 많았잖아요. 근데 우리 아파트는 동파 사고가 한 건도 없었거든요.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역시 아파트 관리소장답게 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고 그 작은 결과들이 눈에 보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렇게 작은 아파트에서 직접 이 곳 저 곳을 관리하며 살아 온 세월이 10년을 넘어서는 박 소장의 환한 모습에서 작은 것이 갖는 많은 아름다운 것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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