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책임있는 결정 '표결 실명제'
<편집국에서>책임있는 결정 '표결 실명제'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4.08.08 11:00
  • 호수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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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대 옥천군의회와 관련해 기사를 쓰다보면 가끔 이런 항의를 받곤 했다. 왜 옥천신문은 특정 의원만 부각하고 띄워주느냐는 것이 항의의 골자였다. 군정업무보고, 군정질의, 예산 심의, 행정사무감사 등 굵직굴직한 의회 기사를 쓸 때마다 유독 특정 의원의 이름만 많이 나온다는 것이 항의의 근거였다.

맞다. 6대 의회의 경우 박한범, 안효익 의원의 이름이 기사에 자주 언급됐다. 아마, 다른 6명 의원 이름을 모두 합한 숫자보다 두 의원의 이름이 더 자주 나왔을 것이다. 거기에는 속사정이 있다. 한번이라도 의회를 참관해본다면 옥천신문이 두 의원을 일부러 띄워주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두 명의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참 점잖았다. 점잖아도 너무 점잖아서 문제였다. 집행부에 대한 날카로운 감시와 견제에 입을 다무는 것이 예사였다. 어떤 의원은 회기 중 공식석상에서 한번도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몇날 며칠을 버틴 이도 있었다. 취재를 하다보면 답답함을 넘어 속에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저럴 거면 뭐하러 의원이 됐을까?'

기자의 말이 거짓말 같다면 지금 당장 옥천군의회 홈페이지에 가서 6대 의회 회의록과 동영상 자료를 확인해 보시라. 지방의원으로서 할 말을 하고 밥값을 하는 이들은 박한범, 안효익 의원 정도 밖에 없었다. 옥천신문이 이들을 위해 특별히 띄워주거나 편들어주고 싶어 지면을 할애했던 것이 아니다. 기사에 담을 가치있는 말을 하는 이들이 두 사람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6대 의회는 심각한 직무유기를 했다.

그 결정판은 올 3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리한 2014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1회 추경예산안)이었다. 약 200억원에 달하는 추경예산안이 올라왔지만 6대 의회는 단 한 푼도 깎지 않았다. 추경예산은 본래 당초 예산에서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긴박하거나 중요한 사업들에 한해 제한적으로 세워야 한다. 그만큼 더 까다롭고 높은 기준이 필요하지만, 6대 의회는 이런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원안 통과시켜줬다. 감시 기능을 잃어버린 6대 의회의 오랜 침묵과 무책임, 방조가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혹은 예산안 심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무능력의 극단적 표출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물론, 박한범, 안효익 의원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7대 의회가 새롭게 꾸려졌다. 지금의 당선자들은 후보자 시절, 옥천군의회 개혁과 관련해 대부분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국내외 연수 계획서를 사전에 공개해 주민들의 동의를 얻고 개인별로 보고서를 작성해 그 성과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의장 선거 때도 정견 발표를 해 '왜 의장이 되어야 하는지?' 의회 안팎의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고도 했다. 그동안 별다른 이유없이 비공개로 진행한 의회 간담회를 전격적으로 공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무엇보다 개별 의원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표결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데도 대부분을 뜻을 같이 했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는 '표결 실명제'다. 표결 실명제는 말 그대로 의원이 자기 이름을 내걸고 공개적으로 찬반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일수록 의원들은 집단의 익명성 뒤로 숨어버리곤 한다. 사안이 민감하다는 이유로, 의회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핑계를 곧잘 대곤 한다. 주민을 대신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는다.

표결 실명제는 이런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준비 안된 결정, 생각 없는 동조, 신념없는 판단을 막을 수 있다. 조금 미안한 얘기일 수 있지만, 지난 6대 의회까지 무식한 의원들이 너무 많았다. 가방끈이 짧아 무식한 것이 아니라 의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질, 갖춰야 할 노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나온 무식함이었다. 모르면 찾아보고, 물어보고, 공부하면 된다. 그런 노력과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표결 실명제를 거부하는 의원은 결국 이런 노력과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표결 실명제가 아주 새롭거나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관악구의회의 경우 이미 2010년부터 표결 실명제를 도입했다. 지금 도입한다 해도 빠른 것이 결코 아니란 얘기다.

최근 지역사회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오고 있는 복지관 증축 문제를 보면서 지방의원들의 책임있는 결정이 다시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대다수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행부 논리와 상황론에 끌려 다니는 무기력한 의회를 보며 애초의 개혁 의지가 벌써부터 쇠퇴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앞으로 적십자 봉사관 건립 문제 등 집행부가 던져줄 숙제가 많이 있을 텐데 그때도 지금과 같은 구태를 반복하면 어쩌나.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정이 어떤 의미와 파장을 낳는지 명확하게 기록할 표결 실명제 도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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