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꼼수의 정치학
<편집국에서>꼼수의 정치학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4.07.25 14:00
  • 호수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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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6기 군수공약 사업 선정이 은밀하게 추진되고 있다. 공개 토론회까지 한 공약사업 추진과정을 두고 '은밀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 내용에 있다. 옥천군은 지난달 25일과 27일 이틀 동안 군청 상황실에서 '민선 6기 군수 공약사업 선정을 위한 주민 토론회'를 개최했다. 주민들의 참여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토론회 이름은 그랬다.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148개 공약사업 중 100개 사업을 추렸고 최근에는 세부 추진 계획서를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8월초에는 주민 설명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주민들로부터 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지탄받던 공직사회의 몸놀림치고는 이례적으로 빨랐다. 그 결과도 옥천군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주민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이 곳곳에 발견된다. 선거 운동할 때는 큰일이라도 낼 것처럼 주민들을 현혹한 뒤 내팽개쳐버리는 선심성 공약과 은근슬쩍 말을 바꾸며 책임지지 않으려는 꼼수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첫 번째 꼼수. 김영만 군수가 이번 선거에서 내놓은 크고작은 공약을 모두 합하면 약 150개에 달한다. 그중에서 △옥천읍 시가지 전기통신 선로 단계적 지중화 사업과 △청산면 팔음산 제2휴양림 조성 △치매환자 통합대책 수립 등 굵직한 사업들은 이번에 모두 장기과제(총 8개) 사업으로 정리됐다. 말이 좋아 장기과제로 추진하는 것이지 사실상 추진 불가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팔음산 제2휴양림의 경우 실무부서 검토 의견은 '추진 불가'로 나왔다.

두 번째 꼼수. 당초 김영만 군수 공보물에는 △충북도립대 기숙사 '확충'이란 공약이 나온다. 하지만 검토 과정에서 이 공약은 기숙사 확충을 위한 지속적 '노력'으로 바뀐다. '확충'이란 단정적 표현과 '노력'이라는 추상적 어휘 사이에서 군수의 책임감은 어물쩍 사라지는 느낌이다. △장위보 자동수문 '설치'가 장위보 '개선'으로 △옥천~동이간 지방도 '확포장'이 확포장을 위한 지속적 '노력'으로 둔갑했다.

세 번째 꼼수. 148개 공약사업을 100개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공약이었던 중요 내용들이 휘발되거나 사라져버렸다. △충청권 광역 철도와 연계한 옥천~대전간 경전철 사업은 △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옥천군종합발전계획 수립 사업으로 통합됐다. △천년고찰 운해길 조성 사업은 △장령산 휴양림 기능 보강을 위한 힐링 1번지 기반 조성 사업 밑으로 들어갔다.

과연, 이 사업들이 별도의 독립된 사안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천년고찰 운해길 조성 사업은 실무부서에서 '추진 불가' 의견이 나온 사업이다. 힐링1번지 역시 1천억원대 대통령 공약사업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은 어느새 사라지고 △장령산 휴양림 기능 보강을 위한 힐링1번지 기반 조성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뒤바뀌었다. 사업 규모 역시 3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네 번째 꼼수. 민선 5기는 출범 초기 78개 사업을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56개 사업을 선정했다. 민선 6기는 두 배에 가까운 100개 공약사업을 추진한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 무리하다보니 공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한 사업들도 포함돼 있다. △가로등 설치 확대나 △마을 안길 조성사업이 과연, 군수가 4년 동안 중점적으로 해야 할 공약사업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밖에 각종 소하천 정비사업이나 도로정비 사업 등은 계속 추진사업으로 해야 할 일이지 별도의 공약사업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옹색하다.

공약은 주민들과 맺은 엄중한 약속이자 계약이다. 쉽게 내팽개치거나 필요에 따라 잘랐다 붙였다 해서는 안 된다.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면 사업을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라도 귀를 크게 열어야 한다. 하지만, 옥천군은 주민 1~2명을 앉혀놓고 주민참여 토론회를 했다고 자화자찬 하고 있다.

그간의 경험에 미뤄 봤을 때 8월초에 있을 주민 설명회는 일방적인 통보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자리가 진정한 주민 설명회라면 '원점 검토'가 가능해야 한다. 100개 사업이 진정 주민을 위한, 주민이 원하는 사업인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공보물에서 사라진 공약들에 대해서는 김 군수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 경위를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소통은 이런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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