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공간의 정치학
<편집국에서>공간의 정치학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4.07.18 10:32
  • 호수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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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티(Sim city)'라는 게임이 있다. 게임 이용자가 설계자가 돼서 도시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어디에 공원을 만들면 좋을지, 시청은 어디에 둘지, 아파트는 몇채나 건립할지를 생각해서 '자기 만의 도시'를 만들어가는 내용이다. 폭력적이거나 외설스런 내용이 없어 제법 괜찮은 게임에 속한다.

하지만 중독성은 꽤 있다. 자기가 만들고 싶은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에 맞게 도로를 내고 건물을 세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게임의 승패는 얼마나 괜찮은 도시를 만들었는 가로 판가름 한다.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도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꽤나 머리를 써야 한다.

가상 공간에서 일어나는 게임 속 '도시'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오만가지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 속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공동체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게임 속 도시를 만드는 것은 제한된 '시간'과 '자원'이다. 현실에서는 주민의 '합의'와 '예산'이 주된 재료가 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합의 없는 도시 만들기, 건물 짓기가 예사로 일어난다. 옥천 나들목과 인접해 있는 향수공원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큰 돈 들여서 만든 공원이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빈터다. 책임지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관점을 조금 더 세밀하게 좁혀보면 이런 일은 더욱 다반사로 일어난다. 특히, 어떤 정치적 목적과 결부된다는 의혹이 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옥천군은 최근 몇 년간 예산을 지원해 몇몇 단체의 건물을 지어줬다. (신축한 경우도 있고 건물 매입을 지원한 경우도 있다.) 새마을회관과 보훈회관, 향토음식교육관(외식업지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물론, 이들 단체가 지역에서 하는 다양한 역할과 활동은 그 자체로 높게 평가받을만 하다. 새마을회관과 보훈회관의 경우 법적인 근거도 나름 뒷받침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지속되다보면 우후죽순, 많은 단체들이 자신들의 사무실을 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게 된다는 점이다.

새마을회관과 보훈회관의 경우 건물을 지은 뒤에도 여전히 군에서 사업비와 인건비 등을 지원받고 있어 다른 사회단체들과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향토음식교육관은 아예 특정 단체 밀어주기라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을 자초했다. 향토음식교육관 역시 그 취지나 활동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지역사회가 그 단체만 특별히 독립된 건물을 예산을 들여서 지어주는 데 합의했는가 하는 점이다. 향토음식교육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다른 단체들의 사무실 요구 근거로 작용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말았다. 저기는 지원해주면서 우리는 왜 안 되냐는 요구 앞에 옥천군은 옹색해질 수밖에 없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 옥천지구협의회(적십자회)가 신속한 구호활동과 구호물품 보관 등을 이유로 옥천군에 건물(적십자 봉사관)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연면적 364 제곱미터(110평), 지상 2층 규모다. 1층은 사무실, 주방, 구호물품 창고로 쓰고 2층은 회의실, 휴게실, 프로그램실로 쓴다는 계획이다.

사업비는 총 5억원인데 도비 2억원은 확보가 된 상태고 여기에 군비 3억원을 더해서 건물을 지은 다음 적십자회에 무상임대 형식으로 주는 방식이 추진되고 있다. 말하자면, 부지 매입과 건물 신축비 모두 옥천군이 내서 만들어주는 셈이다. 향토음식교육관이 총사업비 3억5천400만원 중 1억1천400만원을 자부담한 것과 비교해봐도 무리한 요구다. 건물을 지은 후에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관리비를 마련할 것인지 역시 아무 것도 준비된게 없다. 적십자회 내부에서도 말이 많은 이유다.

새마을회관, 보훈회관, 향토음식교육관, 적십자 봉사관 모두 지역에 필요한 단체들이고 그 활동은 높이 평가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가 또다른 어떤 과한 요구로 이어질지 지역사회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네 개 단체의 공통점은 그 영향력이 9개 읍면에 골고루 퍼질 수 있는 상당히 조밀한 조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주 큰 힘 있는 단체라는 말이다. 군수나 군의원이 함부로 그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다.

향토음식교육관으로 시작돼 적십자 봉사관 건립 요구로 이어지는 목소리 앞에 옥천군은 어떤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할 것인가.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위세 좋게 휘두른 도끼가 자기 발등을 아프게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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