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 특별기획-주민의 삶을 바꾸는 정책 ▷ 1회: 선거 목전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정책 |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부산을 대표하는 수산시장인 자갈치시장 입구 조형물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문구이다. 이 구호야말로 전국 대다수 지자체들의 관광산업정책을 명확히 알려주는 표현이 아닐까. 어떻게든 관광객을 끌어 모아 볼거리를 선사하고 지갑을 열게 하자는 정책.
하지만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지자체 간 관광객 유치전에서 옥천군의 성적표는 그다지 시원치 않아 보인다. 문화관광 분야에 있어 옥천군에 특별히 '정책'이라 느껴질 만한 것이 없는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책을 입안해야 할 옥천군 공무원들조차 '옥천의 진짜 매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옥천군의 문화관광정책은 결국 많은 예산을 들여 보여주기 좋은 대규모 시설을 건립하는데 치중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한국관광연구원 등과 같은 연구기관에선 최근 '대규모 시설 건립으로 관광기반이 확충된다고 해서 지속적인 관광수요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며 방문객이 증가한다고 그것이 지역 주민들의 살림살이에까지 보탬이 되는 순환구조를 갖는 것은 아니다'란 보고서들을 내놓고 있다. 이제는 대규모 관광시설을 통한 간접적인 '낙수효과'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주민 주도로 지역 자원을 활용한 관광산업 모델을 발굴해 직접적인 소득과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는 제안과 함께 말이다.
■ 주민주도형 '관광두레'사업에 관심 급증
주민주도형 문화관광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흐름에 발맞춰, 정부도 지난해부터 주민이 주도해 지역의 관광자원을 발굴하고 그를 바탕으로 사업모델을 설계·창업하도록 지원하는 '관광두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관광두레 사업의 중심에는 '관광두레 프로듀서(피디, PD)'가 있는데, 지역 주민들 중에서 선발된 관광두레피디는 해당 지역이 가진 특색 있는 문화관광자원을 모아내는 일부터, 그를 활용해 관광두레 기업을 창업하는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일 등을 맡고 있다.
관광두레 시행 첫 해인 지난해엔 충북 제천시와 경기도 양평군, 강원도 양구군 등 5개 지역이 관광두레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또 지난 2월 말에는 이웃 영동군을 포함한 전북 무주군, 경북 봉화군 등의 스무개 자치단체가 7대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2기 관광두레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지역별 관광두레피디는 앞으로 3년 동안 정부로부터 인건비를 지원받으며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관광자원을 발굴하고 주민주도형 관광사업의 모델을 만드는 일을 중간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지역의 자원을 새롭게 발굴한 제천 주민들
박달재, 청풍호, 월악산... 제천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요 관광명소들이다. 몇 년 전부터 제천시 차원에서는 '힐링'을 테마로 약초와 한방 관련 각종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에게는 '제천국제영화제'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고장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제천시 관광두레피디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신 피디가 안내한 제천의 명소들은 조금 색달랐다. 이재신 피디는 "청풍호를 한번 둘러보고 가는 것으로 제천 주민들에게 무엇이 남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제천 관광두레는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주민들이 직접 지역 관광자원의 발굴 주체가 되어 사업을 구상하고 그 속에서 소득을 창출하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자원의 재발견과 활용'이라는 제천 관광두레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교동 민화마을'. 제천시 교동은 제천향교가 있는 마을로, 여느 농촌지역이 그렇듯 대다수 주민이 65세 이상인 고령화 마을이다.
지난해 이곳 교동에 '지은순민화연구소'(043-651-3440)라는 이름으로 둥지를 튼 지은순 작가는 조선시대의 학교인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특색에 착안해 '공부'와 관련된 민화로 마을을 꾸며나가고 있다. 물론 '명문대 합격 기원' 따위의 의미를 담은 그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익살스럽고,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다가오는 민화, 그중에서도 '공부'와 관련된 민화들로 벽화작업을 하면서 마을을 방문하는 아이들, 학부모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있는 것. 또 민화가 그려진 골목 곳곳에선 비석치기, 말타기 같은 '골목놀이학교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운영해, 벽화로 유명해진 부산의 감천마을이나 통영의 동피랑마을 못지않은 명소로 교동을 알려나가겠다는 포부이다.
"<어변성용도>라는 유명한 민화가 있는데, 물고기가 용이 된다는 그림이잖아요. 저는 이런 그림이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가 있던 우리 마을과 참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그러한 민화의 의미를 알려주고 아이들과 골목놀이를 시작으로 식생활교육이나 심리상담, 민화교육까지도 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 반응이요? 나이 든 분들만 모여 살던 동네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니 무척 반가워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세요. 저희 마을 골목 골목이 정말 깨끗하지 않나요? 이게 다 마을 어르신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웃음)"
(<지은순민화연구소> 지은순 작가)
우리고장 구읍과 청산면에도 향교가 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라는 것 말고는 지역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천 교동민화마을의 새로운 발상과 시도는 무척 부러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제천의 관광두레사업으로 새롭게 발굴된 명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제천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지난해 '자작문화예술협동조합'을 꾸려 교동민화마을뿐 아니라 폐교를 활용해 효소체험 및 교육, 유기농 효소자연밥상을 즐길 수 있는 공전자연학교(대표 안영숙)를 열기도 했다. 또 더 이상 기차가 오지 않는 공전역을 '우드트레인'(대표 김광기)이라는 목공예체험공방으로도 변신시켰다. 이밖에도 이미 관광기반시설로 자리 잡고 있는 청풍호의 수상놀이시설이나 수산면 하천리 산야초마을, 덕산면의 누리마을빵까페, 한수면 탄지리 꽃단지마을 등이 제천의 주민주도형 관광자원으로 다시금 부각되고 서로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가고 있다.
덕산면에서 '누리마을빵까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농촌공동체연구소 한석주 소장은 "제천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와 관련해 조금 다른 발상들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며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 공동체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 속에서 어떤 '희망'을 보고 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지역의 관광자원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지역의 재발견, 주민 주도여야 가능하다' △'관광두레'라는 표현이 독특하다. 관광두레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 관광두레에는 상부상조, 환난상휼과 같은 우리 고유의 좋은 전통을 계승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농촌공동체가 흔들리면 결국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 그런 위기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 관광두레사업이 아닐까. 관광의 유형을 '민 주도'로 바꾸자는 것인데, 과거에는 관 주도ㆍ정부 주도 관광 사업으로 그냥 시골에 '너희들 뭐 필요 하냐, 그럼 30억 들여 펜션 지어주고 황토방, 찜질방 지어줄게' 그랬다. 그런데 그 가동률이 30%도 되지 않는다. 30, 40억 원씩 투자했음에도 지금 흉물로 남아있는 것이 70%이다. 청풍호 유명해도 돈 버는 건 관광버스, 도시락업체 = 사실 제천에 '정말 장관이다' 할 만큼 엄청난 관광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풍호가 있다해도 관광객들이 스윽 한번 둘러보고 가지 돈을 쓰진 않는다. 청풍호에 사람이 많이 와도 관광버스랑 도시락업체만 돈을 번다. △ 어쨌든 지역 문화관광산업에 있어 지자체 역할은 매우 크지 않나? 제천시와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나? = 우리는 정부 주도, 관 주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 일단은 목표다. 지원받는 즉시 주민의 자생력이 깨질 수 있다. 자꾸 지원을 받으니까 스스로 대안을 강구하지 않는다. 지자체에 의존할수록 두레의 기본정신은 깨진다 보고 협조관계나 조율관계 이상의 지원관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반야월이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결전태평양 일억총진군> 같은 노래를 작곡해 조선인들에게 '대일본제국을 위해 태평양전쟁에 나가라'고 독려한, 친일인명사전에도 기재된 인물 아닌가. 의병을 일으킨 유인석 장군의 얼이 서린 곳에서 불과 2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반야월기념관을 세운다면 대체 후학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이것은 부끄러운 역사이고 천고의 흉물이 될 기념관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런 내 입장을 담은 격문을 발표했고 이것이 일파만파 언론 보도가 되면서 제천 시민들도 들고 일어나 결국 사업은 추진되지 못했다. 만약 그전에 우리의 두레사업이 제천시 지원이라도 받았다면 그렇게 강하게 비판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레 정신은 철저히 민이 주도하는 것이고 지자체와는 건강한 협력관계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