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저녁이 있는 삶과 747
<편집국에서>저녁이 있는 삶과 747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4.04.18 11:11
  • 호수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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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야당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 어떤 환상적인 정책이나 공약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저녁이 있는 삶'. 그 짤막한 문장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장면 하나가 담겨 있었다. 고된 하루의 노동을 끝낸 뒤 가족과 마주앉아 별다를 것도 없는 밥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삶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어느 순간 우리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상 속 풍경이 되었다. 부모들은 먹고 살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하고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늦게까지 학교와 학원 공부에 시달려야 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렇게 모든 사람이 죽기살기로 열심히 살지만 좀체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삶의 질과 행복을 판단하는 기준을 '경제적 관점'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내총생산(GDP)이다. 한 나라에서 1년 동안 다양한 경제활동으로 만들어진 가치를 숫자로 나타내주는 것이 국내총생산이다. 이런 기준에 따른다면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한다. 지난 1990년 1인당 국내총생산은 6천305달러였다. 이후 20여년 간 간혹 부침을 겪긴 했지만 꾸준히 늘어나 2012년에는 2만2천582달러까지 높아졌다.

한 나라의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에 새로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여 합산한 국민총소득(GNI)이란 지표도 있다. 2003년 우리 국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1천604만원이었는데 2012년에는 2천559만원으로 뛰어 올랐다. 두 지표는 분명히 우리 국민의 경제상황이 '생산' 측면에서나 '소득' 측면 모두에서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국가 전체로 보면 그렇지만 농천 지역인 우리고장은 다를 수도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통계청에서 제시하는 지역 내 총부가가치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고장의 총부가가치 합계액은 2000년 6천919억9천300만원이었다. 2010년에는 9천875억6천500원으로 10년만에 3천억원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숫자 놀음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나라 전체의 부가 얼마나 늘었는지, 지역의 돈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정작 내 삶은 점점 더 비루하고 팍팍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숫자 놀음으로 시작했으니 숫자놀음에서 일단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지역내총부가가치 항목 중 제조업의 경우 2000년 2천215억6천500만원에서 2010년 3천85억4천300만원으로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농림어업은 967억9천600만원에서 736억1천800만원으로 오히려 줄어 들었다. 지역경제 문제를 제조업과 농림어업으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농업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고장 주민들의 삶의 질이 나빠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옥천신문은 이번 호에 군수 후보로 경쟁을 벌이는 새누리당 김영만 군수와 새정치민주연합 김재종 예비후보의 인터뷰를 실었다. 두 후보는 골프장, 임대주택 사업 등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고, 자영업자 지원 등에 대해서는 큰 인식의 틀을 같이 했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필요하다는 데는 같은 입장을 보였다.

경제가 발전하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경제 발전과 삶의 질은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일까. 저녁이 있는 삶 만큼이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남아있는 대선 구호가 하나 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이다. 747의 가운데 '4'는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국민소득 4만 달러는 거짓 구호였다. 저녁이 있는 삶과 747은 삶을 바라보는 두 개의 극명한 시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어느 쪽일까.

두 군수 후보를 비롯한 군의원 예비후보 등 대다수 정치인들이 우리지역 문제 대부분을 경제 문제의 틀 안에서 인식하는 상황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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