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일하는 이점석씨
작지만 큰일하는 이점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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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2.06.20 00:00
  • 호수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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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어려움이 없었겠어요? 20년을 넘게 살아 왔는데…. 아마도 그게 인연이었나 봅니다" 지난 68년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두 다리를 모두 잃는 부상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주시종(49·옥천읍 마암리 126)씨를 71년에 만나 22년째 병간호를 하며 가정을 꾸려오고 있는 주씨의 부인 이점석(51)씨의 6월을 보내는 남다른 회고이다.

지금도 그 당시만 생각하면 이씨는 남편 주씨와의 인연이 이상하리만큼 인상에 남는다. "월남에 다녀왔다가 부상당한 장애인에다 당시 이보다 좋은 혼처가 많이 들어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묘하게도 마음에 안드는 거예요"

이씨는 고향이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인데 71년 당시 대청댐이 건설되기 전 안남면 연주리 독락정에 살던 남편을 우연한 기회에 들어온 중매로 만나게 된다. 처음 주씨를 보았을 때 비록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생기더란다. 그런데 신랑측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하루가 지난 후 생각해보니 '잘난 것도 없는 나를 그토록 원하는 정성에' 마음이 끌려 결혼하게 되었노라고 설명한다.

남편 주씨는 68년에 파병되어 70년 6월11일에 '푸카'라는 지역의 주둔지에서 포탄에 맞아 두 다리를 잃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가 낮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환경 또한 부인이 두 살이나 더 먹은 상태를 제대로 봐줄 수 없었던 상태.

그럼에도 처음부터 자신의 일생이 애로가 많을 것임을 각오하고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혔던 이씨는 결국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가정에서의 작지만 큰 봉사'에 몸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들 부부에게도 고향인 안남을 떠나오게 만든 인생역정이 있었다.

80년의 대청댐 건설이 그것. 이로 인해 이들은 안남을 떠나 옥천읍 마암리 현재의 집에 정착했다. 1급 국가보훈대상자로 국가로부터 매월 지급되는 연금이 그나마 생활이라도 꾸릴 수 있을 정도로 나오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때문에 가뜩 몸이 불편한 남편에 대한 수발을 위해 이씨의 마음고생 및 몸고생 또한 엄청났으리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더러 일도 다니고 여러가지를 하려고도 해보았다. 그러나 '들토끼 잡다가 집토끼까지 다 놓치겠다' 싶어 이제 남편 뒷바라지에만 힘을 쏟겠다고 말한다. 요즘도 남편 주씨는 신체의 괴로움 때문인지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인지라 술에 의해 남편의 건강이 축날까 걱정하는 이씨는 주위 사람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장한 아내이다.

이씨는 지난 4월8일 장애인 남편과 함께 좋은 가정을 꾸며왔다 해서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옥천군지회 제3주년 기념식에서 군지회로부터 감사장과 10만원의 격려금을 받았는데 현재 옥천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영명이가 이들 부부의 혈육이며 앞으로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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