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18] 이원면 윤정리
신마을탐방[18] 이원면 윤정리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1.03.10 00:00
  • 호수 5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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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목이 가장 먼저 소개된 곳으로 전체주민 중 봉화금씨가 67.4%를 차지하고 있는 이원면 윤정리.
대다수 주민들이 묘목에 종사하는 윤정리 주민들은 요즘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2월 말부터 본격적인 묘목의 출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난 16일, 윤정리를 찾았을 때 마을 주민들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았다.

묘목의 고장답게 윤정리에 들어서자 다른 지역과는 달리, 논을 개조해 만든 묘포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원의 묘목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그 묘목이 처음 들어온 곳이 바로 윤정리입니다" 금영준(61)이장의 얘기 속에서 윤정리 주민들이 지닌 묘목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금기수씨 묘목 첫 보급
윤정리에 묘목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때라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청주에 위치한 임업시험장에 근무하던 금기수씨가 묘목의 접목기술을 배우며 처음으로 윤정리에 묘목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금기수씨가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임업시험장에 필요한 인력을 고향사람들 위주로 고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마을에 묘목이 보급되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시작된 묘목은 이제 윤정리 주민 전체가 재배하고 있을 만큼 마을의 주 소득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마을주민들의 부지런함도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묘목 출하는 물론 오래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국의 많은 지역을 방문, 묘목의 기술을 제공하고 부 수익을 올리며 이원묘목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

봉화금씨 집성촌, 전체 주민 중 67.4% 차지
윤정리는 43가구가 거주하며 가장 큰 마을을 이루고 있는 부르니를 비롯해 6가구가 거주하는 양지말, 3가구가 거주하는 방아다리, 13가구가 거주하는 반전리, 10가구가 거주하는 수묵말, 12가구가 거주하는 평지말 등 6개 자연마을로 나뉘어 있다.

6마을에 나뉘어 거주하는 86가구 중 봉화금씨 성을 가진 가구는 모두 58가구로 마을 전체 주민 중 봉화금씨가 차지하는 비율을 67.4%에 이른다. 특히 윤정리의 가장 큰 마을인 부르니와 양지말은 주민 전체가 봉화금씨 일가를 이루고 있다.

6.25때 참나무 숲이 우거져 북한군의 본부가 세워지기도 한 방아다리만이 윤정리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3가구 중 금씨성을 가진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 않고 새로이 생성돼 외지 주민들이 많이 이주한 수묵말과 평지말에도 금씨성을 가진 주민이 각각 3가구와 1가구를 이루고 있다.

임란 때 의병 금웅신, 처음으로 마을에 정착
봉화금씨의 집성촌인 만큼 윤정리 마을을 처음 일군 사람은 임진왜란 당시 조헌 선생과 함께 왜병과 싸우다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순국한 금웅신 할아버지라고 전해진다.

금웅신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전, 어머니 우봉이씨와 이 마을에 정착한 후 봉화금씨는 지금까지 13대째, 4백 여 년의 긴 세월을 윤정리에서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금씨 문중이 마을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마을 명칭의 유래도 금씨와 관련을 지니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당시 소정리와 윤동리를 합쳐 윤정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와는 달리 양지말의 금상수(80)씨는 "윤정리의 윤(潤)자의 수(水) 변은 부르니 마을의 양 옆을 물이 흐르고 있어 붙여졌고 문(門)자 속의 왕(王)은 마을에 금(琴)씨가 살고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전한다.

또 "윤정리의 정은 마을 가운데 소나무 숲에 정자가 있었는데 그 정자의 모습을 마을 이름에 넣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 각 마을의 명칭도 나름대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항상 해가 비추고 있다고 해서 불려진 양짓말, 마을의 모습이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방아다리, 밭이 넓은 지역 반전리, 자라의 목을 닮아 붙여진 수묵말 등 이름을 통해 그 마을의 특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순직 철도인 위령원, 철도건설을 위해 순직한 영령 모셔
윤정리를 지나는 도로를 따라 반전리와 수묵말 사이에 위치한 순직 철도인 위령원. 이곳은 우리나라의 동맥인 철도건설을 위해 일하다 순직한 영령들을 모신 철도의 성역으로 79년 11월 대전지방철도청 산하 대전 영선사무소 이원묘포장을 성역 예정지로 선정되었고 80년 7월 종합성역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된 후 82년 사업이 마무리되었다.

6,600㎡ 크기의 위령원에는 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한 극락정사 1동, 성모마리아 상 및 십자가상 각 1좌와 부속건물 3동, 출입구에 일주문 등이 건립되었고 등나무 휴게소와 연못, 관상수 1천600그루를 심어 경관을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철도순직 유족들이 음력 4월8일에 영가식을 올리고 있고 현충일에는 유족과 철도직원이 함께 순직 영령을 추도하고 명복을 빌어 주고있다.

▶산신제, 탑신제로 마을의 평온 기원
윤정리 마을주민들은 음력 초사을과 나흘이면 어김없이 한 해 동안 마을이 태평하고 사고없이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산신제와 탑신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주민 중 일년동안 생기복덕의 운을 봐 가장 운이 좋고 깨끗한 사람을 유사로 정해 마을 뒤 대성산 자락의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또 마을 입구에 있는 두 개의 탑에 금줄을 드리고 마을의 재앙을 막아달라고 기원한다.

마을이 생기면서 지금까지 400여 년을 이어온 윤정리 마을의 산신제와 탑신제를 위해 마을주민들은 올해도 종아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정성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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