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 대청호 어부
임지훈 대청호 어부
함께사는 세상 [25]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3.03 00:00
  • 호수 5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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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살의 젊은 청년은 대청호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고 있다.
아침 6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군북면 추소리 대청호에는 아직도 어둠이 온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아직 철이 아니어서인지 밤새 낚시줄을 드리운 강태공들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둘러쳐진 산과 검은 물빛은 위압감마저 준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대청호의 풍경은 그곳이 담고 있을 삶의 고단함을 전혀 짐작할 수 없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곳 강변에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고 한 모자는 부지런히 어구들을 배에 옮겨 실으며 올 들어 두 번째 출어 준비를 한다.

▶대청호는 어민들의 소중한 `농토'
두 사람만 올라타도 꽉 찰 듯한 작은 배가 대청호의 물을 가르자 눈에 띄지 않던 물새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날이 풀리면서 대청호의 얼음은 대부분 녹아 내렸지만 아직도 제법 두꺼운 얼음이 배에 부딪혀 '자그락 자그락'거리며 깨지는 소리가 인적 없는 대청호에 퍼져나간다.

얼마쯤 갔을까 엔진을 세우고 어제 오후 내내 쳐 놓았을 그물을 건져 올리는 모자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그 모습은 추수철을 맞아 들녘에서 잘 익은 곡식을 혹시라도 쏟을까 조심스레 거둬들이는 농부들의 손길과 흡사하다.

둘 사이에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는 않지만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손이 척척 맞아 돌아간다. 건져 올리는 그물에는 붕어, 잉어, 눈치, 쏘가리, 베스 등 제법 많은 물고기들이 잡혀 올라온다.

그중 크기가 작은 붕어나 잉어, 눈치(표준어 `누치')들은 다시 물로 던져 넣는다. 하지만 베스는 그대로 갑판 위에 드러누워 있어야 한다. 외래 어종인 베스가 성장하면서 대청호의 토종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으니 어민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을리 없다.

"다른 물고기들은 그물에 걸리면 숨죽여 있는데 저 녀석(베스)은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그물에 걸려도 다른 작은 물고기들을 다 잡아먹어요."

말없이 묵묵히 그물을 건져 올리던 임지훈(28)씨가 한마디 던진다. 베스와는 달리 요즘 구경하기 힘들다는 쏘가리를 다루는 임씨의 어머니 박순정(61)씨의 손길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최고의 민물어류로 꼽히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만큼 거래되는 가격도 높은 어종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물고기를 건네주는 대청호가 삶을 일궈 가는 농토였다.

▶겨울 대표 어종 `빙어' 보기 힘들어
"겨울 내내 쉬었죠. 한 3년 전부터 이 곳에서 빙어를 구경할 수가 없어요. 대청호 수위 때문인지..."

얼음이 두껍게 얼어 배를 띄우지 못 했다기 보다는 겨울철 대표어종인 빙어가 사라지면서 겨우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임씨의 설명이다. 물론 빙어뿐만 아니라 다른 어종도 그 양이 많이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박씨는 처음 담수가 되었을 때는 배를 타고 대청호를 가르면 튀어 오른 물고기가 배 안으로 들어올 정도로 물고기들이 많았다고 설명하면서 줄어든 물고기양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놓는다. 또 몇 년 전부터 빠가사리(표준어 동자개)는 구경도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이 많이 오염된 것도 원인인 것 같아요. 그물에 물고기 대신 온갖 쓰레기들만 건져 올릴 때도 많거든요."

특히 임씨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가 이제는 심각하다고 얘기한다. 날이 풀리면서 낚시꾼들이 다시 대청호를 찾으면 또 그들의 농토와 다름없는 이곳이 얼마나 쓰레기로 몸살을 앓을지 벌써부터 임씨는 걱정이다.

"이 물도 자기들이 마실거면서 왜 그렇게 쓰레기를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올해도 낚시꾼들과 벌일 실랑이를 생각해서인지 임씨는 허허로운 웃음을 던진다. 낚시꾼들의 얘기가 나오자 박씨도 한마디 거든다.

"그나마 그물을 쳐 놓은 곳 근처에서 낚시하던 사람 중에는 배를 타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하다고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물 흔들어 놓아서 고기 다 쫓았다며 화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 얼마나 기가막힌지..."

어쩌면 이 정도는 다행인지도 모른다. 저녁 내내 쳐 놓은 그물을 살살 잡아당겨 물고기들을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다니 `낚시 자격증'에 대한 얘기가 나올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청호 최연소 어부 `임지훈'
임씨는 대청호 어부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래도 20대 초반이었던 96년부터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았으니 경력은 이제 5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고향에 계신 것도 그렇고... 그래서 내려왔어요."

처음에는 어머니 박씨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그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아버지 고 임을수씨를 가족의 곁에서 데려간 대청호에 자신의 삶을 또 맡기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텐데 지훈씨는 그렇게 아버지의 체온이 남아있는 대청호로 돌아왔다.

"우리 어민들의 모임에서 제 바로 위 형님이 38살이니까요. 제가 막내죠. 그래도 모임에 나가면 어른들이 `막둥아! 막둥아!'하면서 잘 챙겨주시니까 저는 참 편해요."

지훈씨에게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계속되는 물일이 견디기 어려울 법도 한데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해 준다'는 매력이 그나마 그에게는 보상이 되고 있는 듯 하다.

"앞으로 뭐 특별한 계획보다는 돈 좀 모이면 어업을 하면서 조그만 가게라도 하나 하고 싶어요."

동안인 얼굴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계획을 얘기하는 지훈씨의 얼굴을 어머니 박씨는 미안함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결혼 때문이다.

"빨리 장가를 가야 하는데 어디 여자가 있어야지... 요즘 누가 이런 데로 시집을 오려구 하나요?"

아들의 결혼이 지금은 가장 큰 걱정거리지만 모두 떠나는 고향에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지훈씨의 마음이 어머니 박씨는 그저 고맙고 자랑스럽기만 한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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