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호, 김복임 뻥튀기 아저씨 아줌마
송복호, 김복임 뻥튀기 아저씨 아줌마
함께사는 세상 [24]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2.24 00:00
  • 호수 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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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부부가 뻥튀기 과자를 만들며 청산장을 지킨지 이제 30년이 넘었다.
"뻥이요∼!" 혹은 "소리요∼!"

얼굴에 숯검댕이를 칠한 아저씨의 큰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조막손을 들어 있는 힘껏 귀를 막았고 그 동작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검은 기계에서는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며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또 서울에서 내려올 손주들 챙겨줄 요량으로 뒤주에서 쌀 한 줌과 흰떡 조금을 들고 나오신 할머니가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튀겨진 튀밥을 정성스럽게 보듬는 모습도 떠오른다.

어릴적 최고의 간식거리로 동생과 앉아 하루종일 집어먹어도 질리지 않던 '튀밥'.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신기한 기계였던 그 뻥튀기 기계의 모습이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없는 다른 많은 것들처럼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매번 장에 나오는 것은 고객과의 약속
지난 12일, 청산 5일장을 찾았을 때는 대보름이 지난 첫 장이라 그런지 시장 특유의 북적거림과 활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혹시나 하고 나왔을 것 같은, 생선을 좌판에 늘어놓은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술잔을 주고받으며 흘러간 유행가를 불러제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 크지 않은 청산 장에서 이미 많은 언론매체들을 통해 유명해진 '뻥튀기 부부(?)'를 찾기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검은 무쇠 솥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뻥튀기 기계 중 하나는 굵은 철사로 깨진 부분을 얽어놓아 그 세월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애들이 뭐 이런 거 먹나, 그리고 또 먹을 애들도 없구, 그냥 늙은이들이나 가만히 앉아있으면 심심하니까 튀겨다 먹는 거지..." 쌀이나 옥수수 알갱이, 설에 먹다 남은 가래떡을 담은 깡통을 사람대신 줄 세워 놓고 차례를 기다리던 한 할머니의 얘기다.

32년 경력의 뻥튀기 아저씨 송복호(69, 청산면 교평리)씨는 두 개의 기계를 오가며 압력을 조절하고 상태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사이 그의 아내 김옥임(67)씨는 뻥튀기 기계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먹거리로 변신한 뻥튀기 과자(일명 튀밥)를 비닐 봉지에 모아 담느라 바쁜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장이 안 설 것 같아도 나와야지.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발길을 그냥 돌려세우면 안되잖아. 말은 안 했어도 약속을 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송씨 부부는 청산장이면 항상 장에 나와 송씨 부부를 찾는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내가 37살 먹어서 이걸 시작했는데 그 때는 나이먹구 이런 것 한다는 것도 창피하고 그래서 청산장에는 오지도 못했어..." 송씨가 청산장에서 뻥튀기를 하던 사람에게 기술을 전수 받고 스승(?)과 함께 처음 사업을 펼쳤던 곳은 추풍령 근방이었다. 기술도 서투르고 고향인 청산장에서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그냥 좀 쑥스러웠던 것이 그 이유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장 뿐만 아니라 동네를 찾아다니면 튀밥을 튀겨 줬어... 마침 설 대목을 앞둔 때라 동네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반가워했는데..." 당시만 해도 설 준비 품목 중 하나로 '뻥튀기 과자 만들기'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출장영업(?)을 벌인 송씨 일행을 동네에서 반긴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다. 뻥튀기 기계를 지게에 짊어지고 찾아간 시골동네는 인심도 좋았던 것으로 송씨는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잠자리 걱정,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됐어. 빈방 있으니까 자라는 사람부터 상 차려 놓았으니 먹고 일하라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동네를 돌며 기술을 익히다가 청산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뻥튀기 아저씨'로 열심히 살아 온 것이 이제 30년을 넘어서고 있다.

▶한번 튀기는데 15원에서 지금은 3천원
"그 때 우리 아들 중학교 보낼 등록금하고 저 뻥튀기 기계하고 바꾼거지 뭐, 그래서 동생들은 제대로 가르쳤지만..."

작달막한 키에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짓고 한마디 거드는 송씨의 아내 김옥임씨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남는 눈치다. 송씨의 뻥튀기 사업이 꾸준히 번창한 이유에는 송씨의 기술도 큰 몫을 담당했겠지만 아내 김씨의 활달하고 괄괄한 성격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 없이 세상 살면서 이만큼 살면 행복한 거지 뭐... 할아버지는 매일 아프다고 하는데 나는 아픈데 하나도 없어..."

아내의 얘기에 김씨는 "아이구 매일 아프다고 파스 붙이면서 건강하긴..."하며 면박을 준다. 퉁명스러운 면박이었지만 아내에 대한 걱정이 세월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 배어나는 것까지 송씨는 숨기지 못했다.

"장이 옛날 같지 않아 벌이는 시원찮아도 몸 건강할 때까지는 계속 일 해야지... 우리가 그만둬도 이건 안 없어질꺼야. 또 누군가가 하겠지..." 대화가 마무리 될 무렵 청산에 살고 있는 외손자 민혁(4)이가 장에 들어서자 두 노부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진다.

추운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바쁘면 점심도 소주 몇 잔으로 때울 때가 많지만 30년 넘게 청산장을 지켜온 송복호, 김옥임씨의 모습에서 억척스러운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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