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준 한겨레신문 옥천지국장
정영준 한겨레신문 옥천지국장
함께사는 세상 [23]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2.17 00:00
  • 호수 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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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준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새벽 3시면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9일 옥천읍 장야리로 위치를 옮긴 '한겨레신문사 옥천지국'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빠른 오후 3시50분쯤이었다.

내실의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방에는 아직도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부자리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부자리 속에서 막 나왔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0여분이 흐르고 난 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정영준 지국장이 들어선다.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해서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다"는 말을 남기고 조금은 불편한(아니 불편해 보이는)걸음으로 방에 들어간 정 지국장은 곧 환한 웃음과 함께 사무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새벽 3시면 하루를 시작
정영준(37) 지국장이 한겨레신문사 옥천지국을 맡은 것은 지난 91년 10월이었다. 한겨레신문 옥천지국도 다른 신문 지국과 마찬가지로 새벽 3시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신문을 정리하고 광고 전단지 등이 있으면 `삽지'작업도 하면서 배달 준비를 마치면 새벽 4시. 이 때부터 구독자들에게 신문이 배달되기 시작한다. 배달은 모두 5명이 맡아서 하고 있다. 정영준(37)지국장의 동생인 영관(31)씨와 영관씨의 아내 김점숙(30)씨.

그리고 아파트 두 곳을 전담하는 배달 사원 2명에 정 지국장까지... 그렇게 배달을 마치면 아침 7시30분쯤. 신문을 읽다가 2∼3시간 정도 눈을 부치고 오후에 본격적인 일상업무를 본다.

▶장애로 사회와 구별되기는 싫다
정 지국장은 몸이 불편하다. 왼쪽 팔과 발 그리고 언어장애까지 중복장애를 안고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말하는 이 `장애`가 신문지국을 운영하는데는 전혀 불편함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정 지국장은 자신이 중복장애 2급이라는 것을 지난 2월6일이 돼서야 알았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장애인 등록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제 장애등급이 몇등급인지도 몰랐죠." 정 지국장이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얘기하는 지난 86년 사고 이후 15년이 지나도록 정 지국장은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살았다는 얘기다.

"나도 어엿하게 사회의 한 부분에서 나의 역할을 하고 경제적 능력도 있는데 굳이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와 구별짓고 싶지 않았거든요."

정 지국장의 설명대로 동생이 필요하지만 않았다면 지금도 장애인 등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록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감이 묻어 있는 그의 최종학력은 청주교대 2년 중퇴다.

▶22살에 시작된 '제2의 인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택했던 대학교. 고등학교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 만큼 답답한 대학생활 등은 결국 정영준씨가 2년 만에 학교를 떠나는 요인이 된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고 군 입대를 앞두었던 86년5월. 친구들과 함께 용돈을 벌기 위해 대전 공사판에 나갔다가 정씨는 낙반사고로 뇌를 크게 다치고 한 달간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뇌수술을 받는다. 담당 의사까지도 가망이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결국 정씨는 깨어난다.

퇴원을 해 집으로 돌아와서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지만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면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생각했다. 하지만 뇌를 다치면서 얻은 장애는 쉽게 벗어지지 않았고 정씨의 `희망'은 그냥 희망으로 남았다.

손이 귀한 경주 정씨의 장손인 정 지국장의 장애는 정씨는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먹구름을 드리웠지만 그 먹구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제게 또 한 번의 인생이 주어진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죠. 용기 있고, 진실 되고, 올곧게 살자구..."

▶사회과학 전문출판사 대표가 '꿈'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둘러보니 사회의 많은 모순이 눈에 들어왔다.

"냉철한 이성의 눈으로 아니면 해맑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시대, 이 사회의 모순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정씨가 회복하면서 처음으로 사회활동을 했던 곳은 88년부터 91년까지 활동한 `대전 민주청년회'였다. 그리고 91년 선뜻 한겨레신문사 옥천지국을 인수했던 것도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87년 민주항쟁의 힘을 등에 얻고 탄생한 `한겨레신문'에 대한 애정이 경제적인 이익에 앞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지금 한겨레신문 지국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씨의 꿈은 `출판사업'이다. 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인쇄하는 출판사.

정씨는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답답함에 가위에 눌린 듯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으로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진보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는 생각에 희망을 갖는다고 말한다.

역사의 한 가운데 능동적으로 서있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정영준씨는 자신의 삶 또한 능동적이고 희망적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는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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