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락' 배달 아줌마 김기석씨
'이수락' 배달 아줌마 김기석씨
함께사는 세상 [22]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2.10 00:00
  • 호수 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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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석씨는 풍으로 몸의 절반이 불편한 남편과 '정신지체장애인'인 막내딸을 부양하는 여성가장이면서도 언제나 밝은 웃음을 짓는다.
한 때 `사명감'과 `직업의식'을 가지고 중국음식을 배달했던 일명 `번개'아저씨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또 `배달'은 척박한 `아르바이트' 환경에서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직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배달'의 기원이 어디에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처음 도입한 사람은 `영업방식'의 혁명적 전환을 일으킨 사람임에 틀림없다.

물론 지금이야 과거처럼 `차별적 전략'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일반화되어 버렸고 `택배'라는 형식의 대규모 사업으로 번창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배달원 하면 `짱개'라는 속어와 함께 한 손으로 묘기를 부리듯 자유자재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이런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여성 배달원을 만나기 위해 지난 2일 옥천읍의 음식점 `이수락'을 찾았다.

음식점 앞에는 오토바이가 한 대 서있다. 역시 `배달'하면 은빛 가방(지금은 물론 배달 가방도 플라스틱 제품과 죽제품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과 함께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날 만난 배달원 김기석(51·여·옥천읍 죽향리)씨는 위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쉰이 넘어버린 여성이다.

찾아가기 전에 전화로 `취재요청'을 했지만 완강한 취재거부를 당한 터라 내심 걱정도 됐다. 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주방 아주머니들이 든든한 후원자가 돼 예상과는 달리 쉽게 취재를 진행 할 수 있었다.

▶'아직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근해 가게 청소하고 배달 나갈 밑반찬도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금방 배달이 몰리는 점심 시간이 된다. 이 때부터는 잠시 의자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린다.

이렇게 일손을 재게 놀리다보면 금새 퇴근 시간인 10시 무렵이 된다. 평소에 그녀가 배달을 위해 출동(?)하는 횟수가 70∼80번이라니 얼마나 바쁜 생활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렇게 힘든 건 없어요. 비나 눈이 내리면 조금 힘들까..." 모든 배달 일이 그렇겠지만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러워서 힘들고, 비가 내리면 우산이 아닌 비옷을 입고 줄줄 흘러내리는 물을 뒤집어써야 하는 배달 일이니 쉬울리가 없다. 날씨를 빼고는 크게 힘든 것이 없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그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으레 그렇듯 손님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느냐는 물음에는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쁜 사람들이 많으면 이렇게 살아요? 못 살지... 그나마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살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김씨의 대답을 듣고 있던 식당 동료아주머니 한 분이 답답하다는 듯 한마디 거든다. "아니 없긴 왜 없어. 저 양반이 성격이 워낙 좋으니까 그냥 맨 날 `하하'거리는 거지. 속이 정말 깊은 사람이에요. 착하고..."

배달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당연히 배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해 못하고 따지고 성질 내는 손님들이 많지만 그나마 그녀의 성격이 좋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는 것이 이 아주머니의 얘기다. 신문에 `급하더라도 점심시간에는 배달이 많이 몰려 늦어지니까 조금만 참아달라'는 얘기를 꼭 써달라고 이수락 식구들은 신신당부한다.

"성질부리고 짜증부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들도 많아요. 눈오면 미끄러우니까 오토바이 운전 조심하라고..."

배달사원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여성들이 많이 없어서인지 일부러 김기석씨를 찾는 손님들도 있다. 아이들만 집에 둔 부모들이다. 김기석씨가 배달을 하면 국물에 씌워져 있는 랩도 풀어주고 수저도 놓아주는 자상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할 때는 참 게을렀던 것 같아요. 그나마 일을 하고 나서는 많이 부지런해졌거든요."

▶남들은 퇴직을 준비하지만 저는 이제 시작이죠.
그녀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분야가 `배달'은 아니었다. 김기석씨의 첫 직장은 `옥천유선방송' 이었다. 85년 입사해 `수금사원'으로 유선방송료를 걷으러 다닌 것이 만 9년. 그러나 유선방송료 징수 통지서가 우편으로 배달되면서 94년 첫 직장을 떠난다.

잠시 있었던 곳을 제외하고 다음에 구한 직업은 `자영업'이었다. 당시 체인점으로 운영되고 있던 `양념통닭' 가게를 95년쯤 남편 김선정(60)씨와 함께 경영한 것. 그 가게는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가진 `자신의 가게'라는 것과 함께 `배달'을 접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편도 장사에 그렇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고 빚을 얻어 시작한 장사여서 수익을 내지는 못했다. 결국 98년 자신이 직접 경영했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이수락에서 본격적으로 `배달'과 인연을 맺게 된다.

여기까지 배달과의 인연에 대한 설명은 되는데 첫 사회생활과의 인연이 설명이 되지 않고 남는다. 그러고 보니 남편 김선정(60)씨와의 나이 차이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역시 `연애 결혼'이었다.

"그때는 내가 노총각 한 명 구제해 준거지...뭐(웃음)" 연애시절로 대화가 옮겨지자 금새 김기석씨의 표정이 변한다. 부끄러움, 행복함, 설레임 등의 감정이 조금씩 뒤섞여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는다.

그녀가 조금은 늦은 36살의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운전'을 업으로 삼았던 남편의 사업실패와 흔히 있는 빚 보증 등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기 때문이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현재 그녀는 `여성가장'이다. 풍으로 몸의 절반이 불편한 남편과 `정신지체장애인'인 막내딸을 부양하는...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밝기만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뻔순이'가 되어버렸다고 얘기하며 `허허롭게' 웃는 모습에서 `밝음'의 근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여하튼 그녀는 밝았다.

"내 나이면 남들은 퇴직을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준비할텐데 저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렇게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내 복이라는 생각도 하구요."

사진을 찍기 위해 신문사에서 `이수락'으로 점심을 시켰다. 역시 김기석씨가 환한 웃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그녀에게 `운전 조심하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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