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14] 옥천읍 금구1리
신마을탐방[14] 옥천읍 금구1리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1.02.03 00:00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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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상가와 옥천 식료품 상설시장을 비롯해 패스트푸드점 등 군내 최대 상권을 형성해 옥천군 경제 및 상업중심지로 급부상한 옥천읍 금구1리.
종합상가와 옥천 식료품 상설시장(채소시장)을 비롯해 패스트푸드점 등 군내 최대 상권을 형성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옥천읍 금구1리.

삼양리와 함께 가화리에 포함되어 있던 이 지역은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 이제는 금구1리에서부터 4리까지 4개 마을로 나뉘어 옥천군 최고의 경제 및 상업중심지로 급부상하였다.

254가구에 825명 거주, 92년 926명보다 100여명 줄어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옥천의 가장 큰 경제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금구1리의 인구는 계속 감소추세에 있다. 92년 당시 343가구에 926명이 거주했으나 2000년 11월말 현재 이곳에는 254가구에 825명이 거주, 101명이 줄어든 상태다.

최고 80여명이었던 초등학생 수가 이제는 10여명에 불과한 실정으로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계속해서 인구가 유출돼 시내권에 속하는 금구1리의 인구감소는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254가구 중 농업에 종사하는 가구는 49농가로 주민 대다수가 상업과 직장생활을 하는 등 농사 이외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금구혈'의 명당자리, 거북이 등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을 합쳐 군내면이라 불리면서 붙여진 금구리란 명칭은 풍수지리책자에 `금 거북이의 혈'이 지나는 명당자리라고 소개되면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풍수지리 책자에 소개된 것처럼 현재 옥천지역의 상권이 이곳에 몰려 있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지금도 높은 산에서 금구리를 바라보면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지니고 있고 많은 건물의 지붕들이 거북이의 갈라진 등, 구읍 삼거리는 거북이 목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추억깃든 대폿집과 극장, 전국의 씨름꾼들 모여 대회도 열려
별도의 안주도 없이 그릇으로 파는 술집, 선술집 또는 목로집으로 불리었던 대폿집의 추억이 가장 많이 깃든 곳이 금구1리이다.

"그 당시 김치 값이 비싸 천장에 김치를 매달아 놓은 김치를 쳐다보며 막걸리 안주를 삼던 기억이 나네요"

이범원 금구1리 이장은 그 당시 대폿집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밀집되어 있던 대폿집 가운데 특히 `향미집'은 지역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던 곳으로 80년대까지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대폿집과 함께 60∼70년대 지역 주민들의 명소로 기억되는 공간이 극장이다.

새마을금고 앞쪽에 자리잡은 극장에서는 영사기를 통해 무성영화와 서커스 공연까지 이루어져 주민들의 놀이 공간으로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매년 7월7일 칠석이면 지금의 종합상가 뒤쪽에서는 전국의 씨름꾼들이 모여 힘 자랑을 벌였다.

옥천지역 내에 우시장이 처음 형성된 곳은 지금의 충북과학대 옆 하천변이지만 종합상가 뒤쪽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지금의 시장이 형성될 만큼 우시장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전해지며 씨름대회 역시 많은 주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채소시장과 종합상가
해방 전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지금의 충북과학대 옆 하천변에 형성되었던 채소시장은 우시장 이전과 함께 종합상가 앞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비어 있던 대지에 난전을 펴고 시장을 유지했던 채소시장은 정치권의 변화와 함께 지금의 상가형태로 변모되었다.

"시장 안에 들어오면 가만히 서있어도 저절로 움직여질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어"

옥천식료품 상설시장(채소시장) 번영회 이상준(63) 회장은 대형 매장이 들어서며 크게 성황을 이루었던 시장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채소시장과 함께 이곳의 상권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것이 종합상가이다. 76년 15명의 주주들이 모여 건립한 종합상가는 도로가 건설되던 시기에 가장 큰 번성을 누리게 된다.

"이곳에서 처음 자리를 잡은 많은 상인들이 장사가 잘돼 모두 자리를 잡았을 정도로 건립 초기에는 크게 활성화되었다"고 전하는 (주)종합상가 김창석 대표이사는 "경기도 어렵지만 옥천의 상권이 이제는 대전으로 유출돼 상인들이 크게 위축되어 있다"고 현재 상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한다.

하지만 종합상가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상가 내의 45개 상가는 물론 주변의 상권을 회복하기 위해 6월 이후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인 홍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되고 있는 것이 활성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외지인들 70% 이상 거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70%이상이 외지에서 이주해온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70년대 말 소도읍 가꾸기 사업으로 과거의 건물주들이 많이 바뀐 것도 오랜 기간 금구1리에 거주해온 주민들이 떠나게 된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이 이곳을 떠났지만 금구1리에는 옥천을 대표하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교육장을 지낸 오한종, 오종상씨를 비롯해 옥천읍장을 지낸 유인철, 정기호씨도 금구1리 출신이며 정진철 전 도의원과 강구성 전 군의회 의장도 금구1리를 대표하는 인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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