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옥천빈곤실태 보고서(10)>일본 반빈곤 운동의 상징, '유아사마코토'를 만나다
<기획-옥천빈곤실태 보고서(10)>일본 반빈곤 운동의 상징, '유아사마코토'를 만나다
'지역사회 친밀성, 어려운 이웃 보살필 좋은 자산'
고용조건 악화 악순환 고리 끊어야, 서울시장 선거에도 관심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11.12.02 12:30
  • 호수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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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인이 함께 공감한 두 개의 사건이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에, 공교롭게도 자본주의가 가장 덩치를 키웠다는 미국과 일본에서 정치적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복지'라는 화두를 꺼내 든 흑인대통령 오바마의 당선이 첫 번째입니다. 미국인들은 자유로운 경쟁을 기반으로 부와 성장을 외쳐 온 공화당을 심판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몇 개 월 뒤 미국과 1~2위를 다투던 자본주의 대국 일본에서 벌어집니다. 2차 대전 이후 50년 이상 총리를 배출하며 일본정치를 지배한 자민당의 몰락이 그것입니다. 자민당은 2009년 8월 참의원선거에서 480개 의석 중 119석을 얻는데 그쳤고 만년야당 민주당은 308석을 확보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정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미신을 깨트린 거대 변화가 일어 난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건의 본질은 보수정당에서 진보정당으로 정권을 바꾸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일본 두 자본주의 대국에 사는 국민들이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와 정부, 그리고 각종 특혜로 곳간을 채울 대로 채운 대기업이 국민들의 가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미국 대도시의 커다란 공원들에는 자본주의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캠프가 차려지고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정권의 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미FTA를 둘러싸고 촉발된 우리사회의 갈등 속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전환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2009년 일본의 변화에 중심에 있던 사람을 만나보겠습니다. 어쩌면 그는 당시 일본에서 '빈곤'이라는 화두를 무기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나는 꼼수다'가 하고 있는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해야 할 듯합니다.
 


옥천빈곤실태조사

1회: 무서운 확산, 노인빈곤(상)
2회: 무서운 확산, 노인빈곤(하)
3회: 빈곤의 경계에서 워킹푸어(상)
4회: 빈곤의 경계에서 워킹푸어(하)
5회: 버려진 농업, 커지는 빈곤(상)
5회: 버려진 농업, 커지는 빈곤(하)
7회: 가난은 희망을 먹는다, 청소년 빈곤
8회: 자영업의 수렁, 불법 시금융
9회: 부자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10회:  빈곤에 맞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무상급식 문제를 둘러싸고 포퓰리즘이라며 복지정책을 반대한 서울시장이 사퇴하는 등 복지이슈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 잘 알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사퇴하고 박원순씨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도쿄도 지사인 이시하라(편집자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정치인으로 재일한국인 등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부여하는 데 반대하는 등의 활동으로 여러 차례 여론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는 장애인 시설을 견학하는 도중에 장애인들을 가리키며 '이런 사람들이 살아야 할 의미가 있느냐'고 했던 인물이다. 도쿄도 지사도 서울시장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웃음).

▲ 유아사마코토씨
■이시하라 도쿄 지사처럼 소외계층이나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에 부정적인 정치인이 주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의외다.

= 도쿄 같은 대도시의 특수한 상황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다. 도쿄는 어느 곳보다도 돈이 많고,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특징이 있는 곳이다. 그렇다보니 이시하라 같은 정치인에 대한 호응도 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시하라 같은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는 청년세대의 정치참여가 관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사회 전체적으로는 2009년 참의원 선거에서 나타났듯 도쿄와 다른 분위기 아닌가?
= 미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월가시위나 유럽처럼 일본사회 역시 기본적으로는 부가 집중되고 빈곤이 확산되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 속에서 2009년 선거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사회는 2009년 선거 이후 아직 미국의 월가시위처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사회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 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동북지역 대지진으로 인한 충격으로 일본사회의 에너지가 지진극복에 몰려 있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아직 시민들 스스로 정치적 성취에 대한 경험들이 대단히 부족한 상황이며 이것은 청년세대를 포함해 시민들이 힘을 모으면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성세대인 5~60대의 경우는 그들이 학창시절이던 6~70년대 일본 사회변혁 운동의 상징이던 전공투(편집자주. 전학공투회의의 줄임말로 1960년대 말 내 일련의 학생운동을 통틀어 전공투운동이라고 부른다)운동의 실패가 이후 기성세대의 소극적인 정치참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타인과 연대해서 문제를 푸는 것 보다는 각자가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것이 아직 일본에서 월가점령시위 같은 움직임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반핵집회에 수천 명이 모이는 것을 보면 에너지는 분명이 있다.

■빈곤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좀 해보자. '빈곤에 맞서다'에서 독자로 얻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강렬했던 것은 빈곤문제의 첫걸음은 가려진 빈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부분이다.
=빈곤에 처한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자살처럼 스스로를 버리는 방식으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다. 또한 사회 전체적인 빈곤 문제 역시 그것이 노동시장 규제와 관련된 일이든, 실업급여나 국민연금과 관련된 일이든 문제해결은 정치적인 과정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이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돈도 없고 조직력도 미약했던 반빈곤 네트워크는 개인 또는 사회적 차원에서 빈곤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해야 했고 언론과 협력하거나 문제가 심한 경우는 복지관련 공무원들을 법원에 고발해 여론을 환기시키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두고 보아야겠지만 <옥천신문>이 빈곤관련 기사를 쓰는 의도 역시 지역사회가 빈곤문제를 공유하자는 차원이다. 빈곤문제를 극복하는데 지역사회의 역할은 어떨 것이라고 보는가?
= 지역사회는 일정부분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친밀함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웃의 형편에 대한 정보도 도시의 경우와 비교할 때 상당히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빈곤의 경계에 처한 이웃들에 대해 빈곤상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역을 단위로 한 반빈곤활동은 도시의 경우보다 더 효과적으로 빈곤문제에 대응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당신의 책을 보면 지역사회 복지담당 공무원들이 빈곤문제로 도움을 받으려는 주민들에게 도움이 아니라 넘을 수 없는 문턱으로 작동하는 경우를 자주 소개하고 있는데?
= 아무래도 일본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능력이 현격하게 악화되면서 공직자들은 복지수혜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일본정부의 사회안전망 수준은 국가가 일정한 범위를 정해 놓으면 지방자치단체가 각자 처지에 맞게 구체적인 기준을 확정하는 체계인데 요즘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들이 국가가 정한 사회안전망 보다 낮은 수준의 복지기준을 제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형편이다. 이 같은 상황을 지방자치단체 탓으로만볼 수도 없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증세와 고용시장 개입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경제규모에 비해 소득세 등 세입규모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정부의 세입 자체를 늘여야 하며 파견법 등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고용조건이 노동시장에 확산되는 것 역시 막아야 한다. 이렇게 정부가 나서서 근본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그동안 안정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일본사회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역시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고 이미 상당부분 현실이 된 점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한국에도 자주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사회의 빈곤문제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 한국사회 빈곤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진 못하지만 한국사회가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청년세대의 빈곤문제가 일본과 비교할 때 심각하다고 느꼈다. 이들의 급여 자체가 대단히 낮은 것도 문제지만 부모에 대한 청년들의 책임감이나 취업 문제 등은 청년들에게 대단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느꼈다.

■일본 국민들이나 한국 국민들 모두 전쟁 관련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저서를 통해 빈곤문제가 평화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도 밝혔는데?

=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민들이 빈곤하고 정치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는 언제나 사회 전체적으로 정치에 대한 불만이 팽창했고 정치는 그 불만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나라 밖에서 적을 만들어 왔다. 부시정부가 그랬고 일본 동경에는 지금 이순간도 사람들에게 호전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정치세력이 가두집회를 하고 있다. 국민의 불만을 흡수할 무엇인가는 언제나 위정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정부에 참여하는 입장이 됐는데, 이점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 민주당 내각에서 당신이 원하는 빈곤정책을 입안 할 테니 도와달라고 제안했고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어 정부에서 일하게 됐다. 2년 정도 지났는데 꼭 해야겠다고 결심한 일의 20% 정도를 한 것 같다. 그래도 일본정부가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내의 빈곤률 문제나 포착률(편집자주. 포착률은 실제로 빈곤한 사람이 정부의 사회 안전망 안에서 보호받는 비율을 말하며 보통 복지사각지대라는 말과 함께 사용됨)을 조사하고 발표하도록 만든 것은 짧은 기간 관료들의 커다란 저항을 극복하고 이룬 성과다. 관료경험이 없다보니 아직 어리둥절한 때도 있지만 그동안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겠다. 


▲ '빈곤에 맞서다'의 저자 유아사마코토
유아사마코토는 어떤 사람?

2009년 일본 참의원 선거를 8개월 앞둔 정월 초하루. 일본방송 엔에치케이(NHK)는 도쿄 중심가에 있는 한 공원에 차려진 '파견마을'의 이야기를 방송한다. 파견마을은 우리나라로 보면 일종의 간접고용 형태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파견 노동자들이 연말연시를 맞아 의지할 곳 없이 공원에 모여 있는 곳에서 반빈곤네트워크 등 일본 내 20여개 노동, 시민 단체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약 5일 동안 공동체 공간을 운영한 곳인다. 방송전파를 타고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해진 파견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열악한 사회복지 실태는 세밑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바로 이 파견마을의 촌장을 맡았던 이가 유아사마코토다. 당시 반빈곤네트워크 사무국장이던 유아사마코토는 파견마을을 통해 고용보험 등 일본의 사회복지안전망이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고 이러한 파견사원들의 규모가 일본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늘고 있다고 고발했다. 도쿄대학 법대 박사과정 중 학업을 중단하고 반빈곤 운동에 뛰어든 그는 2009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집권한 뒤에는 일본정부로 자리를 옮겨 내각부참여(내각에 빈곤정책관련 정책조언을 담당)라는 직책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아사마코토의 활동과 생각은 2009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그의 저술인 '빈곤에 맞서다'와 '덤벼라 빈곤' 등 번역·출판물로 소개됐다. 유아사마코토와 <옥천신문>의 인터뷰는 지난 10월 20일 동경 내각부 본부건물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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