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옥천빈곤실태 보고서(3)>낮에는 아빠 밤에는 엄마, 일인다역의 고단함
<기획-옥천빈곤실태 보고서(3)>낮에는 아빠 밤에는 엄마, 일인다역의 고단함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11.09.16 10:13
  • 호수 109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워킹푸어(Working poor). 우리말로는 근로빈곤층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일을 해도 빈곤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칭하는 이 단어가 우리 주변에 있는 특별한 이웃들을 칭하지는 않습니다. 가장의 수입으로 식구가 쓰는 생활비를 완전히 충당할 수 없는 상태, 직장을 나가며 열심히 일하지만 언제나 가계부는 몇 십 만 원 쯤, 요즘처럼 자녀들의 대학등록 철이나 이사 등 급전이 필요한 시기엔 백 만 원 이상 적자를 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 결국 늘어나는 것은 카드빚, 마이너스 통장이 전부인 사람들, 어쩌면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을 만큼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워킹 푸어의 문제는 그 이면에서 결코 평범한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바로 워킹푸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정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지는 나라를 정의로운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책임을 회피하기엔 우리들은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결국 워킹푸어의 현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져서는 안되는 나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가난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요. 다음호 까지 2회로 나눠 보도될 워킹푸어의 이야기. 이번호는 그 첫 순서로 남성중심의 사회구조 속에 가장 먼저 빈곤의 경계로 밀려나고 있는 일하는 여성, 그 중에서도 모자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옥천빈곤실태조사

1회: 무서운 확산, 노인빈곤(상)
2회: 무서운 확산, 노인빈곤(하)
3회: 빈곤의 경계에서 워킹푸어(상)
4회: 빈곤의 경계에서 워킹푸어(하)
5회: 버려진 농업, 커지는 빈곤(상)
5회: 버려진 농업, 커지는 빈곤(하)
7회: 가난은 희망을 먹는다, 청소년 빈곤
8회: 자영업의 수렁, 불법 시금융
9회: 부자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10회:  빈곤에 맞는 사람들

■ 여성들만 빠지는 커다란 구멍

빈곤문제를 연구하는 학계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빈곤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빈곤의 여성화로 사용되기도 하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여성일수록 빈곤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빈곤은 여성과 남성에게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고 여성에게 더 빠르고 가혹하게 찾아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노동시장 자체가 성별을 제외한 나머지 조건이 같을지라도 여성에게 취업의 기회와 고용의 질에서 더 낮은 처우를 제공한다. 남성은 생계의 책임자, 여성은 집안일과 양육의 책임자라는 구분이 언제나 따라다니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 남성을 대신할 가장의 역할을 요구받게 되면 곧바로 빈곤의 먹구름이 한부모 가정의 구성원 전체에 드리우는 것이다.

우리고장 기초생활수급자의 구성을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지난 8월 말을 기준으로 시설에서 생활하는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한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1천364가구 가운데 절반을 넘는 711세대가 여성가장, 여성가구주를 둔 가정이다. 남성이 가장인 가정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유독 빈곤으로 정부의 보호를 받는 가정의 경우는 여성가장 가구가 60%에 육박하는 현실은 여성이 가장으로 나서는 순간 해당 세대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빈곤한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책임을 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여성가장, 모자가정을 특별히 배려하는 것은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상태에 대한 평가를 철저히 당사자의 소득인정액이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에 미치느냐 마느냐로 판단할 뿐 그 당사자가 양육의 책임에 쫓기는 여성가장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다.

결국 부양가족이 없는 65세 이상의 노인이거나 근로능력이 없는 장애인, 또는 미성년 아동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성인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사실상 빈곤을 이유로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성인이라면 아무리 열악한 조건이라도 시급 4천320원(내년부터는 4천580원)의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소득이 추정되기 때문에 독신자든, 기혼자든 간에 일단 최저생계의 소득기준은 돈을 벌든 아니든 최저생계의 기준은 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최저임금과 연계된 근로능력이 개인의 빈곤을 측정하는 결정적인 잣대가 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근로능력이 있어도, 그 근로능력을 사용해 돈을 벌고 싶어도 돈을 벌 수 없는 사정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속수무책으로 '아야'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복지의 사각지대, 구멍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바로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들, 그것도 혼자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모자가정의 가장들이다.

 

 

 

 

 

 


 ■낮에는 아빠, 밤에는 엄마···A씨의 눈물

A(30.옥천읍)씨는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했다. 대학을 마치자마자 동갑내기 신랑과 보금자리를 꾸렸지만 삶은 그녀의 바람과 달랐다. 그가 선택한 남자는 돈을 벌어오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컴퓨터 앞에서 게임 속 세상에 빠져 있었고 가정이 필요한 생활비는 A씨의 몫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결혼과 함께 갖게 된 아이가 있었다. 게임 속 세상에 빠진 남편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다. 기저귀, 분유값, 각종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언니오빠들에게 도움을 청해야했다. 그렇게 버틴 지 2년 만에 둘째 아이가 생겼다. 둘째 아이가 생기고 얼마를 더 버티다 이혼을 결심했다. 더 이상 친정 식구들에게 부담을 안겨줄 수 없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그녀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다.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옥천에서 기술을 배울 곳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그래도 도시가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빠가 사는 천안으로 주소를 옮겼지요. 천안시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있었거든요."

전문대학을 나온 A씨는 체육을 전공했다. 하지만 자신의 전공으로 얻을 수 있는 직장은 없었다. 자기개발이 급선무라는 생각에 옥천읍 죽향리에 있는 충북인력개발원을 알아봤지만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에게 기숙생활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고향을 떠나 오빠에게 아이들과 자신을 의탁했다.

"6개월 과정으로 그래픽 디자인 직업훈련을 받았고 자격증도 땄는데, 그것뿐이었어요. 좀 괜찮은 회사에서 요구되는 일을 해내기에는 그 실력으로는 부족했고, 일할 만한 회사에서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유로 취업이 되질 않더군요. 직업훈련을 받고 난 뒤에도 생계는 전부 아르바이트를 해서 꾸려야 했습니다."

빵집 아르바이트로 버는 월 8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살았다. 다행히 오빠의 도움이 있어 두 아이를 건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동네 아이들이 '아빠 없는 녀석'이라며 다른 친구를 왕따 시키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제 아이는 아니었지만 한 부모 가정 아이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도저히 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울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그래서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부모가 있는 고향도 그녀에게 도시보다 크게 따뜻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일자리는 100만원을 겨우 넘는 최저생계비 수준의 직장들이었고 그나마도 어린 아이가 둘이나 딸린 여성가장이라는 조건이 걸림돌이 됐다.

"내 가족이 일할 것도 아닌데 남편이 뭘 하는지 꼭 물어봅니다. 한 번은 화가 나서 그것을 왜 물어보냐고 따졌더니 가족이 편안해야 직장생활을 잘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더군요. 아이가 둘이나 딸린 이혼한 여성이 직장을 구하는 일이 란 것이 그렇더군요."

■ "아이들이라도 건강했으면..."

그녀는 돌아온 고향에서 어렵게 월 110만원의 급여를 받는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늘 불안하다. 직원들에게 월급 밀리지 않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사장의 모습이 고맙지만 언제 사무실이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 불안한 직장환경만큼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 아이다. 최근 담임교사의 권유로 옥천교육지원청이 운영하는 위센터에서 큰 아이의 상담을 받았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염려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너무 마음이 아파요. 아이들 시골집에 혼자두지 않으려고 월급은 거의 전부 아이들 학원비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생활비로 다 쓰고 있는데 큰아이가 마음에 그렇게 큰 상처를 안고 살고 있었다니... 그렇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늘 부족해요."

그녀는 오랫동안 한계를 느껴왔다고 했다. 시골에 사는 부모님이 A씨와 두 아이의 주거, A씨의 월급으로는 턱없는 생활비의 일부, 그리고 보육을 책임져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 아마도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렵게 얻은 직장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처럼 모자가정이 옥천에 많을 텐데 그런 엄마와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상담해주고 문제가 있을 때 치유해주고, 엄마들이 절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옥천군에 등록된 모자가정은 A씨를 포함해 모두 84가구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숫자는 스스로 모자가정임을 밝히고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 모자가정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 정부가 저소득 한부모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최저생계비 기준 130% 이하의 수입인 한부모 가정에 자녀양육비 등 약간의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런 지원은 한부모 가정임을 스스로 밝히고 도움을 요청한 경우만 도움을 주는 '신청주의'를 취하고 있다. 정부나 자치단체가 먼저 도움이 필요한 지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한부모 가정에 실제 지원되는 정부의 도움 역시 매우 인색하거나 엉터리다. 한부모 가정으로 등록되면 12세 미만 아동에게는 월5만원의 양육비와 동절기 가구당 5만원의 난방비, 그리고 중고등학생에게는 수업료 등이 지원되지만 금액은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정작 한부모 가정에 가장 필요한 생활비 지원은 아예 없다. 한부모 가정에 무보증으로 1천2백만 원까지(보증이나 담보가 있으면 대출규모는 최대 5천만 원까지 커진다) 장기저리 대출하는 정책자금 '한부모 복지자금 대여 사업'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엉터리제도다. 이 자금을 이용하려면 혼자 사는 엄마나 아빠가 그럴듯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냉장고가 고장 났거나 중고차라도 급하게 출퇴근할 차가 필요하거나, 신용불량자를 면하기 위해 급히 돈을 갚아야 할 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당연히 우리고장에서 한부모가정 복지자금 대여를 신청한 주민은 단 한명도 없다.

매년 모자가정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는 옥천군 여성단체 협의회 박수화 회장은 "당장 모자가정 가구주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엄청난 생활비 압박을 낮출 수 있는 현금인데 현재 양육비 등으로 지원되는 금액은 너무 낮다"며 "대부분 모자가정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이들이 빈곤상태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취재 지원:지역신문발전위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진석 2011-09-19 16:28:44
잘 읽고 갑니다. 워킹푸어의 심각성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당장 필요한 대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