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옥천빈곤실태 보고서①>커지는 빈곤, 공동체를 위협하다
<기획-옥천빈곤실태 보고서①>커지는 빈곤, 공동체를 위협하다
늘어나는 노인빈곤, 관련 안전망 사실상 없어
부양가족의 존재, 일부 노인들에겐 '없는 게 낫다'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11.09.02 10:03
  • 호수 109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옥천은, 그 속에서 사는 우리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나아지고 있을까요? 20년 전이나 30년 전과 비교해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을까요?

최장집이라는 정치학자는 자신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80년대 후반)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계급 간 불평등 구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 왔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중산층 상층의 특권화된 사회 부분과 나머지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부분 간의 괴리는 심화되었다.> 독자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화이후 주민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뿐 아니라 군수를 뽑고, 군의원들, 도의원들까지 뽑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매년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 식당, 공장, 일자리들입니다. 빈터에 새로 들어서는 그럴듯한 건물은 대부분 군이나 정부예산이 들어간 것이고 주민들은 90년대 이후로는 더 이상 도시의 중심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 부활이 올해로 20년을 맞고 있습니다만, 불행히도 정치는 더 이상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못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못했던 어두운 곳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무너지는 곳에는 빈곤이 있습니다. 빈곤한 노인들이 늘고, 부채의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드는 농민들이 들어납니다. 빈곤으로 가정이 무너질 때 다음 청소년들의 꿈도 함께 파괴됩니다. 지역소상공인들은 잔인한 불법고리대에 두 눈을 뜬 채로 잡아먹힙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상적인 생계유지가 버거운 근로빈곤층, 이른바 워킹푸어(Working Poor) 현상이 우리 이웃들의 일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옥천이라는 지역 공동체가 처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입니다. 빈곤이 지배하는 곳은 민주주의에 기반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으니까요. 본 기획은 바로 이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옥천빈곤실태조사

1회: 무서운 확산, 노인빈곤(상)
2회: 무서운 확산, 노인빈곤(하)
3회: 버려진 농업, 커지는 빈곤(상)
4회: 버려진 농업, 커지는 빈곤(하)
5회: 빈곤의 경계에서 워킹푸어(상)
6회: 빈곤의 경계에서 워킹푸어(하)
7회: 가난은 희망을 먹는다, 청소년 빈곤
8회: 자영업의 수렁, 불법 시금융
9회: 부자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10회:  빈곤에 맞는 사람들

■ 노인으로 가난하게 살지 않는 법
공식적으로 노동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나이 65세. 바로 한국사회에서 노인이 되는 나이다. 65세를 지난 주민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노동능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는 해당되어야 가난을 면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 젊어서 부지런히 벌어 일자리가 없어도 걱정이 없을 만큼의 재산을 비축해 두는 것이다. 부지런히 모은 돈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자식들 교육비에 투자하거나 수억 들어간다는 결혼비용에 전 재산을 바쳤다가는 첫 번째 경우에서 탈락한다.

두 번째 경우도 있다. 비축한 재산이 없더라도 뼈골이 빠지도록 키워 낸 자식들이 노인이 된 부모를 봉양하는 경우다. 법적으로 성년이 된 자녀가 노인이 된 부모를 부양할 책임은 없다. 몇 년 전 한나라당이 효도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노인에 대한 국가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전근대적 입법이라는 비난을 받긴 했지만 아무튼 오늘 대한민국에서 노인들이 빈곤을 면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다. 문제는 둘 다 선택하기엔 몹시 비싼 선택사양이란 점이다. 사교육비 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부모노릇하면서 은퇴 후 2~30년을 쓸 만큼의 돈을 따로 비축한다는 것, 제 식구 건사하기도 버거운 자식들에게 돈과 시간과 노동을 들여 노인이 된 부모를 위해 효를 다하리라 기대하는 것 역시 헛되다. 결국 당신이 누구든 노인이 되는 순간 가난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이 대한민국이다.

■ 한 달 수입 9만1천500원의 삶
올해로 87세를 맞은 노인 신OO씨(청산면 거주)를 만났다. 신OO씨를 기자에게 소개해 준 이는 신씨와 같은 면에 거주하는 장애인 이아무씨. 그런데 이씨가 신씨를 기자에게 소개하게 된 사연이 특이하다.

"할머니를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도대체 이 노인네가 뭘 먹고 사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집으로도 찾아가 보고 얼마나 딱하게 사시는지 알게 됐어요. 항상 지켜봐도 반찬도 잘 없이 밥만 드시대요. 그래서 복지관에서 저한테 밑반찬 배달이 오면 할머니와 나눠 먹고 있습니다."

신 할머니의 이웃인 장애인 이아무씨 역시 젊은 날 큰 교통사고로 노동능력을 상실했고 자신을 부양해 줄 가족도 없이 살아가는 기초생활 수급자다. 기초생활 수급자 가운데서도 혼자 반찬을 해 먹을 처지가 안되는 우리고장 192명의 저소득층에게 옥천군이 복지관을 통해 배달하는 밑반찬. 밑반찬 도움을 받는 어려운 이웃이 다시 그 반찬을 나눠야 할 만큼 가난한 삶이 있을까? 기초노령연금 명목으로 국가로부터 매달 9만1천500원을 받는 것이 사실상 수입의 전부인 신OO 할머니. 그녀의 삶을 들여다본다.

■ 노동능력? 할머니는 아직도 일한다
신OO 할머니는 매일 아침 7시면 동네 사람들이 가꾸는 누군가의 밭으로 출근해 쉼 없이 일한다. 저녁 7시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녀의 일과다. 기자가 신 할머니를 처음 만난 지난 5월27일도 그녀는 마을 이웃의 밭에서 부지런히 밭을 가꾸고 있었다. 87세 노인의 품앗이는 얼마의 돈으로 보상을 받을까?

"내가 돈을 달라고 하면 일을 못하지. 돈을 줘야 하면 나같은 노인네를 누가 써. 돈 달라고 안하고 내 일인 것처럼 부지런히 하니까 식구처럼 아침, 점심, 저녁도 같이 먹어. 농사 끝나고 수확하면 참깨고 고추고 쌀이고 콩이고 적당히 싸서 줘. 반찬도 나눠 주고···고맙지."

품삯은 못 받지만 신 할머니에겐 이렇게 일할 밭을 나눠주고 식사도 함께 하는 마을 농민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결국 그녀가 하루 열 두 시간을 바치는 노동은 그녀에게 돈을 주지는 못한다. 그저 이웃들과 노인인 그녀가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일 따름이다. 관절이 아파 가끔 병원에 가야한다는 이 노인에게 돈은 어디서 나올까? 이웃들의 도움으로 돈이 필요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듯 말하는 그녀지만 써야 할 돈은 있다.
 

▲ 지난달 29일 신OO 할머니를 두번째로 찾았다. 이날 신씨는 이사를 앞두고 고 낙담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 노인이 된 자식들, '용돈은 줘'
신 노인의 고정수입은 지난 2009년부터 받기 시작한 기초노령연금 9만1천500원이 전부다. 처음 받을 때는 8만4천원 정도였는데 그동안 9만원까지 올랐단다. 비정기적이지만 추석, 설 명절과 어버이날에는 그녀의 4남매로부터 10만원, 5만 원 정도의 용돈도 받는다. 큰딸이 67세로 이미 노인이고 큰 아들이 내년이면 65세로 노인이 되지만 그래도 명절이면 용돈을 챙겨 줄 여유들은 된다고.

"일 년이면 한 두 번씩은 자식들한테 용돈을 받아요. 그거 안 쓰고 모아서 저금도 했어요. 지금도 통장에 백 만 원 조금 넘게 있는데 가끔 힘없으면 그 돈으로 도라지 넣고 닭도 삶아 먹고, 병원도 가고 그래요."

그녀가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항목(2011년 8월 기준)은 이렇다. 건강보험료로 4천760원, 전기요금으로 1만8천990원(티브이 수신료 2천500원이 포함돼있지만 신씨의 집엔 티브이 수상기가 없다), 상하수도 사용료 1천520원, 전화요금 5천150원, 지난 8월17일에는 주민세도 5천500원 납부했다. 그녀는 집이 없지만 동네 주민이 기름만 때고 살라는 조건으로 빈집에 살도록 허락해 기름값 60만원 외엔 주거비는 나가지 않는다. 쌀은 마을 이장을 통해 정부미인 나랏미를 20킬로그램에 2만 원 정도의 싼값으로 산다. 허리와 관절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면 내는 병원비와 가끔 지출하는 반찬값을 더하면 9만원의 노령연금이 약속한 것처럼 똑 떨어진다고.

"마을에서 이것저것 가져다주니까 살아요. 반찬 챙겨주시는 분도 있고, 밭에 일하러 나가면 밭주인하고도 아침점심저녁 다 먹어요."

■ 2006년 기초생활수급자격심사서 '탈락'
빈곤 문제를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는 2011년 기준으로 혼자 사는 노인들의 월 소득 인정액이 53만2천583원 미만일 경우 최저생계비 기준을 미달하는 가정으로 보고 국가의 부양책임을 인정한다. 이미 노인이 됐거나 노인이 될 자녀들이 명절날 챙겨주는 용돈을 다 더해도 월 소득이 10만원을 넘을까 말까 한, 남의 집에 공짜로 얹혀사는 신 할머니는 소득인정금액을 기준으로 볼 때 당연히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충족한다. 그러나 그녀는 2006년 기초생활수급자격심사에서 자녀들의 소득이 적지 않다는 이유로 수급자격이 거부됐다. 바로 기초생활보장법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다. 노인가정이 아무리 소득이 없이 빈곤하더라도 1촌, 즉 자녀와 자녀의 배우자 재산이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 해당 노인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신OO씨가 수급자격을 인정받을 경우 그녀는 매달 기초노령연금 9만원 외에도 정부로부터 43만6천44원의 현금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9만원만이 허락됐다.

신할머니처럼 빈곤상태의 노인이 정부의 보호를 받기 위해 자치단체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는 사례는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는 사실이다.

실제 우리고장에 거주(시설거주자 제외)하는 기초생활수급 가정 1천364가구 중 절반인 680가구의 수급가정이 노인가정이다. 빈곤가정의 절반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국가의 보호를 받는 680가구 773명의 노인들은 실제 빈곤상태에 처한 노인들 중 극소수라는 점이다. 옥천군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대부분 노인들이 빈곤문제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신청하시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우리고장에서 부양의무자가 있더라도 빈곤 상태의 노인과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경우가 확인된 경우만 예외적으로 수급자격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은 21.48%로 주민 4명 당 1명은 노인인 우리 고장의 실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옥천은 인구의 노령화와 맞물려 노인빈곤 문제가 확산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부양가족이 있는 빈곤층 노인들에게는 신OO 할머니의 경우처럼 9만원의 사회 안전망이 보장되고 있을 뿐이다.

※본 취재와 관련해 옥천군은 기사에 등장한 신OO 노인의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재심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청산면은 신OO노인의 사연을 듣고 신씨를 방문해 현금 등 긴급한 복지지원을 제공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