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11] 안내면 월외리-신월동, 용골
신마을탐방[11] 안내면 월외리-신월동, 용골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0.12.09 00:00
  • 호수 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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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평평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어 붙여진 들평산 아래에 위치한 신월동. 아래는 가재봉과 색경산(백호산) 아래 용이 구름 사이로 솟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골

월외리에 거주하는 주민은 모두 136명이다. 이중 60세 이상 61명 중 남자 29명, 여자 32명이며 60세 이하 54명 중 여자 24명, 남자는 30명으로 이곳의 고령화 비율은 다른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60세 이하 54명의 주민 중 학생이 21명을 차지해 생동감있는 마을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젊은 마을 `신월동'
13대째 마을을 지키는 문중이 있는 본동에 비해 신월동에 자리잡은 가장 오래된 문중인 문화유씨가 이 마을에 정착한 것은 3대에 불과하다. 유명원(38)씨의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직후 이 마을에 정착하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점차 가구수가 줄어가는 본동에 비해 신월동의 주민 수는 계속 늘어나 이제는 본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번성하고 있다. 거주하고 있는 성씨도 다양하다. 유씨 이외에 이씨, 박씨, 변씨, 배씨, 최씨, 남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함께 화합하며 살아가고 있다. 새로 형성된 마을인 만큼 연령층도 젊다. 월외리에 거주하는 21명의 학생 중 신월동 주민이 11명을 차지하고 있어 젊은 마을임을 자랑한다.

경제적 활동 활발 어려운 농촌 현실로 타격
산이 평평하게 마을을 둘러쌓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들평산 아래에 위치한 신월동은 젊은 일꾼들이 많은 만큼 4개 마을 중 가장 왕성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20가구 중 벼농사에 종사하는 농가는 그리 많지 않고 담배농사 2가구, 돼지와 소 사육 2농가, 그 외에 하우스 포도와 노지 포도, 배 등 다양한 품목의 과수도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활발한 경제활동도 전반적인 농촌의 어려움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현재 토종돼지 70여 두를 사육하고 있는 이기석 이장은 "사료 값이 크게 올라 보리딩겨와 밀기울로 돼지 가격이 오를 때까지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생산원가도 건지지 못해 팔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한 많은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하우스 포도의 경우 크게 오른 기름값으로 연료비 소비가 많고 비닐 가격도 올라 여러 가지로 걱정이라며 점점 더 농촌이 살기 힘들어 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세금이나 공산품의 가격은 크게 오르는데 우리 농산물 가격은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으니 농민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할 뿐입니다." 이 이장의 푸념 속에서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어려운 농촌 현실은 정부의 농가정책 부재에서
"6∼7년 전 정부에서는 배 값 안정을 위해 배나무를 심으라고 권장했습니다. 그동안 정성을 들여 배나무를 키워 올해 소득을 좀 올리나 했더니 사과 값보다 낮은 배 가격으로 출하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몇 농가에서는 배나무를 베어 버릴까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헤아려야 할 정부가 농민들의 어려움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불만이다. 200평의 소 막사에 겨우 3마리만이 남아 우리를 지키고 있고 "소 키워 자식 다 키웠다는 말은 이제 옛 말이 되어 버렸다"는 푸념 속에 점차 농촌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장례 도구를 넣어둔 상여집, 세상 떠나는 주민에게 마지막 배웅
신월동과 본동을 잇는 농로 중간 텃밭에는 세상을 떠난 주민을 장지에까지 운반하는 장례도구를 보관한 상여 집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 보관된 상여와 혼백을 모셔가기 위한 가마 등은 마을 사람들 중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장례에 필요한 도구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기존의 돌담집을 81년 새로 증축하였고 12명이 들게 되어 있는 나무 상여도 이제는 8명이 들 수 있는 조립식 쇠파이프로 교체해 사용된다.

이곳 상여집에 대한 얘기는 마을 주민들의 몇 대 선조들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상여집의 역사가 300여 년 이상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기석 이장은 상여집에 대해 "어려서부터 이곳엔 귀신이 있다는 마을 어른들의 얘기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며 "비오는 어느날 밤, 주민 중 한 사람은 불빛에 이끌려 자기 집인 줄 알고 하룻밤을 묵었던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용이 솟았다는 `용골'
가재봉과 색경산(백호산) 아래 용이 구름사이로 솟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골. 월외리에 거주하는 부자들 중 세 가구는 모두 용골에서 나왔다는 주민들의 말처럼 지금도 담배농사를 짓고 있는 박팔용, 박판만, 남진욱씨가 월외리에서는 가장 부유한 주민에 포함되고 있다.

18가구가 거주했던 이곳도 이제는 모두 고향을 떠나 8가구만이 남았다. 이곳도 박씨 문중이 가장 먼저 정착해 현재는 4가구를 이루고 있고 이밖에 유씨와 임씨가 각각 1가구, 남씨가 2가구를 이루고 있다. 백골이 없어지면서 박씨들이 본동과 용골에 흩어져 정착하며 이루어진 용골은 터가 좁은 관계로 이곳에서 떠나는 주민들이 점차 늘어났다.

신월동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도 이곳 용골에서 이주한 주민들이다. 지금도 신월동에 거주하는 주민 중 용골의 주소인 298번지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주민이 많이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8가구 중 3가구가 담배를 재배하고 있고 그중 박판만씨와 남진욱씨는 2대가 함께 담배재배를 하고 있으며 그밖에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출향인 활동 활발
육사 8기생으로 베트남전쟁 당시 백마부대 파병 후 중앙정보부 총무국장을 지낸 고 김성환 대령도 이곳 월외리 출신이고 전두환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경찰청에 근무하다 현재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박영목씨, 남부 3군 연엽초생산협동조합장 유덕륭씨, 군의원과 옥천신문사 사장을 역임한 이인석씨, 충북에서는 유일한 여자 육군사관학교 생도 이영주씨도 월외리가 배출한 인재로 사회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신월동에서 본동까지 도로포장, 서답벌 가로등 설치 주민 숙원
신월동에서 본동 게이트볼장에 이르는 530m 농로는 현재 비포장으로 비가 오면 경운기의 통행도 힘든 상황이다. 주민들은 이곳의 포장이 유봉열 군수 공약사항인 만큼 조속한 시행을 바라고 있다. 이 도로가 완공될 경우 신월동에서 본동에 이르는 주민의 왕래와 농로이용이 쉬워지고 현재 국도를 이용한 통행보다 위험성도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또한 1기 밖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 서답벌의 가로등 문제도 주민들의 불편사항이다. 5가구가 각각 떨어져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은 해가 지면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불편을 겪고 있는데 노인들이 많은 지역 실정을 고려해 한밤중에도 왕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2기의 가로등이 더 설치되었으면 하는 게 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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