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걷는금강천리(7)>대청호, 수몰의 아픔과 옥천의 비경을 품다
<함께걷는금강천리(7)>대청호, 수몰의 아픔과 옥천의 비경을 품다
군북면 석호리서 추소리까지 발 딛는 곳마다 역사와 절경 담겨
  • 박진희 기자 ojp@okinews.com
  • 승인 2010.11.05 09:43
  • 호수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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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천리-물따라, 길따라, 생명의 숨결따라' 일곱 번째 탐사는 군북면 석호리에서 시작해 강을 따라 보오리-용목리-이백리-환평리를 거쳐 추소리까지 이어졌습니다. 15km 길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감이 빨갛게 익는 마을 이평리, 조헌 선생의 흔적이 남은 이지당,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서도 최우수 하천에 꼽힌 추소리 병풍바위를 만났습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금강천리길의 백미라 해도 과하지 않았습니다.

▲ 군북면 추소리 추소정에서 바라본 병풍바위 일대.

◆불타버린 소각장, 반쪽짜리 습지

이달 금강천리의 시작점은 석호리 마을회관. 마을회관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왼쪽 고갯길로 들어서게 된다. 석호리와 용호리를 둘러싼 대청호는 우리고장 어느 곳보다 폭이 넓으면서도 가장 크게 휘어진다. 산 위에서 대청호를 바라보기에는 지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좋다. 요 근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산에는 서리 맞은 칡넝쿨이 기세를 잃고 황갈색으로 변했다. 그래도 주말동안 잠시 포근해진 날씨에 곳곳에 노란 감국이 만개했다. 여자 검지 손가락만한 노란 꽃에서는 일반 국화보다 훨씬 부드럽고 흔흔한 향이 난다. 탐사단은 저마나 한 가지씩 꺾어 코에 대 보고는 '말려서 베갯속에 넣으면 잠 잘 때 좋다', '그냥 그대로 술을 담가 먹으면 좋다', '차로 마시면 국화잎이 그대로 살아난 차를 마실 수 있다'며 감국 하나를 두고 온갖 이야기꽃을 피운다.

석호리에서 이평리로 가는 고갯길을 넘으니 이평리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대청댐 건설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평리는 마을이 둘로 나눠져 우리가 도달한 이평리 국원이골에서 반대편의 공곡재와 추실을 가려면 배를 타고 가거나 육로로 20km 이상을 가야한다. 탐사단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대청호이지만 수면 아래 '상실의 역사'를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대청호가 그저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마을을 벗어나니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대규모의 구덩이가 나타난다. 옥천군 폐기물처리장이다. 본래 쓰레기소각장이 있어 하루에 20,30톤의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지만 지난 7월 소각시설이 불에 타버렸다. 이후 쓰레기는 벌써 3개월이 넘도록 소각을 못하고 매립하고 있다.

쓰레기를 연료처럼 제조해 쓰레기 양을 줄이고 연료판매 수익을 올리는 지자체도 있다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다. 폐기물처리장 구석에 쌓인 쓰레기더미 사이로 먹이를 찾아나서는 고양이가 멀리서 보아도 웬만한 강아지 보다 커 보인다.

폐기물처리장을 지나 보오리 마을에 닿으면 곳곳에 억새와 갈대가 무성한 서화천이 나타난다. 지오리 용목마을에는 내년 10월까지 41억을 들여 15만㎡의 인공습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환경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윤병규씨는 인공습지 주민설명회에도 참여했었는데 습지 조성 계획에 아쉬움이 많다.

"지금 얘기되는 계획대로라면 여기로 들어오는 유량의 10분의 1도 제대로 정화를 못해요. 습지 규모가 훨씬 커야 물이 천천히 흐르고 인공적으로도 습지를 만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는 부족해요. 장기적으로는 하천 살리기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해요. 하천오염을 줄이기 위해 각종 제재기준을 들이대는데 주민들에게 규제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할 수 있는 지원을 활성화 해야죠."

◆햇볕이 머무는 이지당, 옥천의 비경 부소담악

서화천 줄기를 따라가면 어느새 이백리 이지당에 닿아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42호 이지당은 뒤로 가을산을, 앞으로 서화천을 둬 어디에 앉아도 따스한 가을햇살을 고루 받는다. 400년 전 본래 각신서당이라 불리던 이곳에서 중봉선생은 의병장이 아닌 위대한 성리학자로 후학을 가르쳤다. 이후 송시열 선생이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 즉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 라는 뜻의 문구에서 글자 지(止) 두개를 따 이지당(二止堂)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사)옥천향토사연구회 안후영 회장과 본사 이안재 대표의 설명을 듣던 이근생씨와 탐사단은 문득 '만약에'란 물음을 던진다.

"만약, 임진왜란이 발발하지 않아 중봉조헌 선생이 금산전투에서 700의병과 목숨을 잃지 않았더라면 살아남은 제자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잊지 않았을까요?"

이지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은 일행은 이백리 이지당 마을을 거쳐 환평리 군도까지 오르는 임도로 들어선다. 호반마을을 지나며 내려다본 대청호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다. 우리나라 농민문학의 거두 유승규 선생의 고향 추소리를 거쳐 오늘의 마지막 여정인 추소리 병풍바위로 향한다. 병풍바위는 대청호반을 따라 머리 위에 소나무를 얹은 절벽이 700m가량 이어지는 절경이다. 병풍바위는 추소리의 자연마을 부소무니 앞 물위에 떠 있는 산이라 해 '부소담악(赴召潭岳)'이란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소금강, 물위에 떠 있는 산으로 불리는 병풍바위는 국토해양부와 한국하천협회가 뽑은 '아름다운 하천 100선'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6대 하천'에 뽑히기도 했다.

추소정에 올라보니 병풍바위와 추소리, 환평리 마을에 폭 둘러싸인 대청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금강천리의 백미를 맞보는 순간이다. 수차례 우리고장의 병풍방위를 찾은 주민들도 있겠지만 농사를 배우고자 옥천에 인연을 맺고 있는 윤옥순(49), 최원경(50)씨에게 병풍바위는 처음 보는 절경이다.

"동이면 석탄리에서 3년째 농사를 짓고 있어요. 피실마을부터 안터마을까지가 우리의 산책로로 삼고 자주 걷는데 매번 참 좋다 생각해요. 오늘 본 병풍바위도 정말 아름답네요. 차를 따고 이 근처를 종종 지나다녔는데 이런 곳인 줄은 몰랐어요. 앞으로 옥천에서 찾아보고 알아야 할 곳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다음 달에는 금강천리를 잠시 미루고 철새 떼를 만나러 서천으로 떠난다. 찬바람을 따라 서천에 돌아온 철새들의 황홀한 비행을 감상할 수 있다. 12월에는 금강천리 마지막 탐사가 열린다. 물따라, 길따라, 생명의 숨결따라 우리고장을 걸어본 금강천리의 마지막은 군북면 추소리에서 시작해 이평리 공곡재를 넘고 항곡리를 거쳐 보은군과 경계에 있는 대정리에서 끝맺을 예정이다.

▲ 이지당에서 즐기는 점심.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위치한 이지당은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아도 햇볕이 한 가득 들어온다.

'천리길에서 만난 죽마고우'
▲ 이번 금강천리 시작점인 군북면 석호리 마을에서 우연히 오랜 친구를 만난 이충산(사진 왼쪽)씨와 이남규씨.
길 위에서는 사람을 만난다. 그것이 옥천이라는 작은 고장이라면 우연히 만난 마을 주민이 60년 전 함께 초등학교를 다니던 친구일 수도 있다. 군북면 석호리에서 탐사를 막 시작하려던 찰나, 이남규(72, 안내면 답양리)씨는 우연히 만난 마을 주민의 얼굴에서 초등학교 동창의 모습을 용케 찾아냈다. 석호리는 몇십년 만에 온다며 설레던 그는 마을회관 앞에서 도리깨로 콩타작을 하는 노인이 친구 이충산(72)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았다. 이충산씨는 갑작스런 만남에 눈물까지 글썽인다.

"마을 앞에 강이 얼면 니가 우리 어머니 모시고 강도 건너 주고 해서 어머니가 널 참 예뻐했는데……. 돌아가시면서도 남규 니 얘길 하셨지. 40년이 넘도록 얼굴을 못 봤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고 반갑다."

"옥천 사람들하고 같이 산 타고, 강길 걷는 모임인데 석호리 온다 해서 혹시 니가 있을까 했지. 근데 진짜 눈앞에 딱 나타나니 깜짝 놀랐다. 반갑다 친구야."

한참을 안고, 악수하고 다시 포옹하던 두 친구는 시간에 쫓겨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손을 흔든다. 이남규씨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못하고 연락처를 챙겨 앞서간 탐사단을 부랴부랴 쫓는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자신과 달리 평생 땅을 일구면 산 친구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더 깊게 배어 마음 한 켠이 저리다. 그래도 이 길에서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다니 행운 중에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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