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걷는금강천리(4)> 옛길 위에서 내 고향을 보네
<함께걷는금강천리(4)> 옛길 위에서 내 고향을 보네
옥천읍-안내면 장계리간 옛 37호 국도,며느리재 이슬봉 따라 옛길을 걷다
  • 박진희 기자 ojp@okinews.com
  • 승인 2010.08.13 09:08
  • 호수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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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천리-물따라, 길따라, 생명의 숨결따라' 네 번째 탐사에는 지금까지 있었던 탐사 중 가장 많은 4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했습니다. 동이면 석탄1리 안터마을에서 출발해 안내면 장계리 장계관광지까지 걷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 일부는 옥천읍 수북리 강변을 출발해 옛 37호 국도를 걸었고, 일부는 강길을 걷다 군북면 국원리로 향하는 며느리재로 올라 옛 37번 국도가 생기기도 전 선조들이 다니던 산길을 걸었습니다. 물길을 걷기 위해 뭉친 동창들에게, 멀리서 고향을 찾은 자매들에게, 우리고장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발을 뗀 주민들에게 옛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가뭄에 열린 옛길

네 번째 탐사를 위해 동이면 석탄리 안터마을로 향하는 버스는 만원이다. 삼양초등학교 27회 동창들, 우리고장 출신 몸짱 할머니로 유명한 권팔순(64)씨와 자매들, 인터넷 안팎에서 우리고장 홍보에 나서고 있는 투어토커 등 다양한 주민들이 걷기에 나섰다.

안내면 장계리로 향하는 옛 국도는 길이 열려 있다. 올해 유난히 가물었던 탓인지 예년 같으면 물에 잠겨 통행이 어려울 옥천읍 수북리-안내면 장계리간 옛 37호 국도는 사람도, 차도 다니기 어렵지 않아 낚시꾼들로 붐빈다. 삼양초 동창들과 길을 나선 이영희(52, 안터마을)씨는 마을 바로 앞에 놓인 길이지만 이맘 때 걸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물이 부족하다니 걱정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더 많이 닿을수록 강의 시름은 커지는가. 강물 위에는 노란 띠가 100미터는 족히 둘러쳐져 있다. 낚시 쓰레기가 부유물질로 떠있고, 낚시꾼들 주변에서도 역시 널려 있는 쓰레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안타깝다.
 

▲ 옥천읍 수북리 일대는 몰려든 낚시꾼에 몸살을 앓는다. 낚시에 쓰인 미끼 등 각종 쓰레기에 강물은 각종 부유물로 뒤덮여 있다.

강길을 걷다보니 귀리를 심은 들판 위쪽으로 며느리재 가는 길이 나타난다. 며느리재는 차량통행이 어려울 때부터 사람들이 국원리 늘티마을에서 안내면으로 통해 걸어서 넘던 고개다. 이 고개에는 전해내려오는 설화가 있는데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고개를 넘던 중 비가 내리자 여자의 젖은 몸을 보며 시아버지가 욕심을 품자 며느리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다.

탐사단은 이곳에서 팀을 나누기로 한다. 일부는 고개에 올라 이슬봉을 거쳐 장계리로 향하고 일부는 강길을 따라 장계리 주막말, 욱계, 개경주를 지나 장계관광지로 향한다. 새길이 나기 전 옥천읍과 안내면, 보은을 잇던 강길, 그 길이 나기도 전 사람들이 올랐던 산길, 두 가지 옛길을 걸으며 탐사단은 옛 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장계리 백사장 향해 질주하던 그길

지난해 진행한 샛강탐사부터 금강천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이근생(옥천읍 문정리), 홍영화씨에게도 오늘의 길은 특별하다. 수북리 '꾀꼬리'는 이씨의 고향이다. 수북리는 동정리와 화계리를 합해 부르는 이름인데 마을 어르신들은 화계리를 꾀꼬리라고 부른다. 화계리에서도 산에 근접한 마을인 웃골에서 복숭아꽃, 배꽃이 떨어져 실개천을 타고 내려왔는데 그 운치에 맞춰 마을을 꽃계리라고 부르던 것이 발음하기 쉬운 꾀꼬리로 변한 것이다. 이씨가 떠올리는 꽃이 흐르는 고향 꾀꼬리는 아름답기만 하다.

"지금은 사라진 군동국민학교(98년 폐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마을에 학교도 있고 이발소도 있어서 제법 큰 마을이었어요. 친구들하고 국도를 뛰어서 장계리 수영장에 돌다가 다시 집에 돌아올 때면 다시 땀에 흠뻑 젖었는데 그래도 좋았어요."

수몰의 역사는 우리고장의 가장 아름다운 비경도 빼앗아 갔다. 장계리 수영장은 장계리 개경주에서 장계리까지 4킬로미터에 걸쳐 조성된 백사장으로 그 경관이 아름다워 장계6경의 하나로 꼽혔다. 이제는 이씨처럼 주민들의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길을 걸으며 가장 시끌벅적한 무리는 역시 삼양초 27회 동창들이다. '나 다리 아프다. 좀 업어주라'며 어린애처럼 보채면 '무거워서 안 된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걸친 짐을 대신 들어 준다. 이제는 모두 50대 중반을 향하지만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치다 보면 어느새 40년 전 60여명의 친구들로 복작거리던 교실로 돌아간다.

산행 대장으로 불리는 육종석(52, 대전)씨는 내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하고 고불고불한 고향길, 물길을 걷는데 꿈길 같죠. 정지용 선생 말처럼 그 추억들이 꿈엔들 잊히겠어요."

◆며느리재 정상엔 주막이 펼쳐지고

금강 길을 걷는 탐사단의 발길은 두 갈래. 한 갈래는 길따라, 또 한 갈래는 산따라다. 며느리재를 앞두고 신재생에너지포럼의 문재종 위원과 금강천리길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 탐사객 송종환씨의 제안으로 팀을 둘로 나누기로 한다.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이야 며느리재를 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이제는 넘는 이가 거의 없는 길.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끄는 길이다. 며느리재로부터 내려오며 고개를 답사를 했던지라 반대로 오르려니 길 찾기조차 쉽지 않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탓이다. 열 명이 넘는 일행이 가는 길은 대청호 조망 산행이다. 우리가 올라왔던 며느리재 초입이 귀리가 자란 초록빛 들판으로 덮였고, 물길은 등반객들의 눈을 끈다. 이슬봉에서 기념사진 한 판. 왜 이슬봉일까? 옛날 온 세상이 홍수로 온통 잠겼을 때 이슬만큼 봉우리가 남았다 해서 이슬봉이라 했다는 주민들의 말을 전하며, 곳곳에 남아 있는 홍수 전설이 참말처럼 느껴진다.
 

▲ 이번 금강천리는 길이 나누어졌다. 일부는 옥천읍 수북리 강변을 따라 옛 37호 국도를 걸었고 일부는 군북면 국원리로 향하는 며느리재로 올라 이슬봉을 거쳐 장계리에 도착했다. 이슬봉에 오른 탐사단의 모습


물기과 산길로 갈라졌던 탐사단이 다시 만난 곳은 안내면 장계관광지. 멋진신세계는 그야말로 정지용 시인의 향취와 문향 옥천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곳이다. 정지용 문학상을 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시인들의 시비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행운과 함께 정지용 시인의 시어에서 따온 모단스쿨을 비롯한 볼거리들이 많다. 여기에 향토전시관 이수암 관장의 열정어린 우리 민속, 역사 얘기는 시간이 모자라 아쉬움을 준다.

대청댐이 생기고 커다란 인공호수에 마을과 옛길이 잠겼지만 가끔 옛 고향길은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 길을 걸으며 단숨에 장계리 백사장까지 뛰어가 물놀이를 즐기고, 보은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을 거슬러 읍으로 향하던 추억은 길 위에서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옛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 일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박진희 ojp@okinews,com, 이안재 ajlee@okinews.com
 

 "금강천리 쫓아 서울에서 왔어요" <안내면 출신 권팔순씨 네 자매>

▲ 이번 금강천리에는 우리고장 출신 '몸짱할머니' 권팔순씨 자매들이 참여했다. 장계관광지 내 멋진신세계에서 권씨가 멀리 보이는 고향 군북면(당시 안내면) 막지리를 가리키고 있다.

이번 금강천리에는 서울에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았다. 안내면 출신 '몸짱 할머니' 권팔순(64, 서울)씨와 둘째동생 권영자(56), 다섯째 권영옥(51), 여섯째 권영미(49, 옥천읍 금구리)씨는 하루 전 만나 이번 탐사를 준비했다.

권씨의 고향 사랑은 남다르다. 안내면 감자와 옥수수의 만남 축제도 매년 찾고 있는데 이미 서울 관악구에서 푸른솔봉사단을 구성할 때부터 고향와 인연을 맺고 도농교류를 해왔다. 특별한 이유란 없다. 그저 '고향이기 때문'이다. 맏이인 권씨와 동생들은 나이 차이 때문에 추억하는 것도 다르다. 막지리가 군북면이 아니라 안내면에 속해 있던 시절, 그때의 마을을 기억하는 사람은 권팔순씨 밖에 없다.

"우리 마을에 정확하게 108세대가 살았어요. 군북국민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를 가려면 배를 타야 해서 배삯으로 보리 한 말, 쌀 한 말씩 주고는 했어요. 옥천읍으로 이사를 가면서 동생들은 모두 거기서 자라, 막지리는 나 밖에 몰라요. 수몰 전에는 나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하고 차가 이 길로 다녔어요. 거의 50년 만에 다시 옛길을 걸어보게 되네요."

둘째 권영자씨의 고향사랑도 언니 못지않다. 최근들어 방송에서 부쩍 고향소식을 많이 들어 기쁘다며 고향 관련 프로그램을 꼭 챙겨본다고 한다.

"드라마 촬영도 하고 자전거길도 소개되고, 최근에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막지리가 소개돼서 꼼꼼히 챙겨보고 있어요. 서울에서도 옥천신문으로 소식을 듣고 있는데 이렇게 지역 주민들이 함께 옥천의 물길, 산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도 나누는 뜻 깊은 행사가 있다고 해서 당장 참여하자고 했죠. 가족과 함꼐 고향의 옛길을 걷게 되다니 그저 즐거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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