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7] 군북면 국원리-안말, 새말
신마을탐방[7] 군북면 국원리-안말, 새말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0.11.11 00:00
  • 호수 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늘티, 안말, 새말 등 3개의 자연마을에 살고 있는 국원리 본동 안말(위). 옥천장을 다녀오는 소정리, 석호리, 막지리, 용호리 마을주민의 휴게소 역할을 담당했던 주막거리가 있다
국원리 본동 '안말'
늘티, 안말, 새말 등 3개의 자연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국원리의 본동은 안말이다. 지금은 26가구에 대부분의 주민이 고령화되었지만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40여 호가 거주하는 국원리의 중심이었다. 26가구 중 5가구에서 포도농사, 3가구가 복숭아 농사를 짓고 4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구가 조금씩 벼농사를 짓고 있다.

"과거에는 늘티마을의 땅까지 이곳 안말에서 일구었었지. 하지만 지금은 마을에 노인들만 남아 조그만 땅에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형편이야"

마을 주민 박희석씨의 얘기 속에서 안말마을의 영락과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6가구 중 5가구에서 포도농사, 3가구가 복숭아 농사를 짓고 4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구가 조금씩 벼농사를 짓고, 벼농사를 비롯해 3천평의 땅에 포도도 함께 재배하고 있는 태봉석씨만이 과거 안말마을이 번성하였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경주이씨, 12대째 이곳에 거주 마을을 형성한 문중은 김해김씨
이 마을의 가장 오래된 문중은 경주이씨다. 경주이씨는 현재 12대째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경주이씨가 이 마을에 가장 먼저 정착한 것은 아니다. 경주이씨가 이곳으로 이주하기 전에 이미 김해김씨가 이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마을의 형성을 주도했던 김해김씨가 이 마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만대영화(萬代榮華)터와 당대발복(當代發福)터
김씨성을 가진 주민이 안말에서 할미성으로 통하는 꽃밭재에서 밭을 매고 있었다. 한참을 밭을 매던 중 이곳을 지나는 스님 한 분이 식사를 청하게 된다. 마침 식사 때가 되었던 참이라 이 주민은 아무 거리낌없이 스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였다. 식사를 대접받은 스님은 보답을 하기 위해 주민에게 "불편한 점은 없냐"고 물었고 그 주민은 큰 어려움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그 스님은 "그럼 묘 자리나 봐 주고 가겠다"며 만대 영화자리와 당대 발복자리 중 한 곳을 택하라고 말했다. 그 주민은 당장 먹고살기 힘든 형편이라며 당대 발복자리를 선택했고 그 스님은 꽃밭재에 터를 정해 주었다. 그 곳에 묘를 쓴 그 주민은 금새 부자가 돼 꽃밭재를 말을 타고 넘을 정도의 부를 축적하게 된다.  하지만 자식을 얻지 못했던 그 문중은 이 마을에서 손이 끊어지게 된다. 그 문중이 바로 김해김씨로 현재 안말에서는 김해김씨 성을 쓰는 주민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만대 영화자리는 늘티마을 아래 야산 경주이씨 문중에서 묘로 사용
위의 전설에서 만대 영화자리는 늘티마을 아래 야산을 가르킨다고 전해진다. 김해김씨 문중에서 당대 발복자리를 정해 손이 끊어 졌다는 전설을 믿고 경주이씨 문중에서는 만대 영화자리라고 알려진 늘티마을 아래 야산을 문중의 묘로 쓰고 있다. 경주이씨 문중은 현재 300여 년을 이곳 마을에서 살아가며 많은 자손을 두고 있어 옛 전설의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다. 이같은 전설을 뒷받침하듯 안말에는 경주이씨 사당이 자리잡고 있어 해마다 문중의 번성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주막거리 '새말'
옥천장 오가는 사람들의 휴게소
현재 새말이라 불리는 곳은 과거 주막거리라 불리며 단 3가구가 거주하던 작은 마을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이 마을에 처음 이주한 사람은 박봉수씨로 주막거리가 아닌 지금의 새말에 처음 집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해 지금은 그의 손자인 박찬흠(52)씨가 거주하고 있다.

이 후 마을이 새로이 형성되면서 지금은 27가구로 늘어난 상태다. 새말이 형성되기 전 주막거리는 옥천장을 다녀오는 소정리, 석호리, 막지리, 용호리 마을 주민의 휴게소 역할을 담당하며 큰 번성을 이루었다. 하지만 79년 이후 대청호 담수로 인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주막거리는 사라지고 작은 마을로 전락하게 된다.

주막 위치 해 주민성격 드세
이곳의 주막은 10년 전까지도 운영이 되었다. 국원리 주민은 물론 주위 6개 마을사람의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는 이 주막으로 인해 국원리 사람들의 성격이 드세졌다는 평가다.

"옥천장날만 되면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모두가 이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씩 걸치고 나섰지. 술이 들어가다 보니 사람들이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고 마을의 안정을 위해 국원리 주민들은 모두 드셀 수밖에 없었어" 안말 마을 최고령자인 이영록(90)씨가 전하는 국원리 주민의 성격이다.

"어떻게 보면 텃세 부린다고도 할 수 있지. 쌈도 많이 했지만 마을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드세질 수밖에 없었어"
이렇듯 주민의 성격까지도 형성할 만큼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주막은 아직까지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이종성씨의 아버지 이교삼씨가 마지막으로 운영하였고 건물은 올해 초에 헐려 지금은 윤건종씨가 새로 집을 짓고 거주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