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쿠르트 옥천대리점 연난희씨
한국야쿠르트 옥천대리점 연난희씨
함께사는 세상[10]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0.09.30 00:00
  • 호수 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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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과의 약속을 제일로 여기는 그녀는 프로였다
오늘도 눈을 뜬 시간은 새벽 3시50분. 아침준비를 대강 마치고 4시20분쯤 집을 나선다.

깨어있는 사람들보다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시간에 길을 나서는 연난희(53·옥천읍 가화리)씨의 눈에 들어오는 거리 풍경은 항상 비슷하다. 빗자루로 골목길을 쓸고 있는 청소부 아저씨, 집집마다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들, 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 새벽기도를 가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낮 시간이 그렇듯 이른 시간의 거리도 조금 다른 풍경이지만 나름대로의 활기를 갖고 있다. 비슷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이제 낯설지 않아 가벼운 눈인사도 교환한다.

출근 전에 배달을 부탁한 사람들에게 제품을 배달하고 6시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밥상 앞에 앉는다. 아침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나가는 시간은 7시30분. 담당 구역인 금구리, 가화리 등지를 돌며 배달과 판촉활동, 수금 등의 일을 하면 시간은 훌쩍 오후 4∼5시가 된다.

한국야쿠르트 옥천대리점의 `야쿠르트 아줌마' 연난희(53)씨. 물론 공식호칭은 `점주'이지만 우리에게는 짙은 노란 모자를 쓰고 작은 손수레에 `야쿠르트'를 담아 골목골목을 누비는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이 더욱 익숙하고 친숙하다.

▶20년 자부심과 재미로

이제는 결혼을 해 조금 있으면 손주를 안겨 줄 큰아들 한덕수(30)씨와 둘째아들 윤수(27)씨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던 81년 5월 연난희씨는 야쿠르트 배달을 시작했다. "무리해서 집을 지었더니 많이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 진 부채를 갚을 때까지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벌써 20년이 되어가네요."

당시 비만 오면 물을 퍼내야 하는 셋방살이가 너무 힘들어 동생의 결혼자금을 융통해 지은 집 때문에 시작하게된 `야구르트 아줌마' 생활. 처음 5년 정도로 생각했던 일이 어느덧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옥천은 물론이고 충북에서도 연씨보다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50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객을 확장해 나가는 재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연씨의 설명이다. 지금 연씨가 배달하는 양은 하루에 500∼700개, 처음 시작했을 때의 50개에 비하면 10배 이상이나 되는 많은 양이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동이면 우산리나 조령리까지 가서 판촉활동하고 그랬어요.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고 수입도 지금보다 훨씬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사람 사는 정도 많이 느낄수 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해 지금이 활동하기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아파트보다는 주택들이 모여 아침, 저녁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사는 동네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요즘은 판촉을 위해 아파트 벨을 누르면 문전박대를 받거나 곱지 않은 시선을 등으로 느끼며 돌아서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옥각리나 서정리에 들어가 배달을 하면 동네사람들이 `점심때가 다 됐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손을 끄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그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면 `아직도 일을 하고 있냐?'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런 `사람 만나는 재미'도 이 일에서 느끼는 연씨의 보람 중 하나다.

▶그녀는 프로다

"왜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겠어요. 몸이 아플 때는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죠."

감기 몸살이 심하게 걸려 몸이 천근만근이라도 연씨는 고객들과의 약속을 생각하며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일을 한다. 배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약속된 시간에 거르지 않고 정확히 배달해 주는 것이 이 분야에서는 `성공'의 관건이라는 것이 연씨의 생각이다.

"한 번은 넘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어요. 의사선생님이 10일정도 꼼짝하지 말고 병원에 누워있으라고 했는데 새벽마다 몰래 일어나 배달을 하고 다시 병원에 들어가곤 했죠. 갈비뼈가 부러진 것은 내 사정이지 고객들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는 부분이잖아요."

이런 `정확함' 때문에 지금도 연씨를 찾는 고객들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을 `바보'라고 말하는 연난희씨. 하지만 연씨는 지금 똑같은 경우가 생겨도 마찬가지의 행동을 했을 것이다. 이런 연씨의 직업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30주년 기념 전국야쿠르트 대회에서는 `최우수 점주'로 선정돼 상을 받게 되었다. 또 내년에는 회사에서 20년이 되는 `점주'들을 대상으로 보내주는 해외여행도 다녀올 예정이다.

"동생이나 가족들도 이제 그만두고 놀러다니고 좀 그러라고 하죠. 그래도 욕심 때문인지 쉽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야죠." 단순히 생활을 영위할 목적으로 했던 야쿠르트 배달 일이 연씨의 시작이었다면 이날 만난 연씨는 당당한 `프로'였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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