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차 운전자 최하천씨
견인차 운전자 최하천씨
함께사는 세상[4]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0.08.05 00:00
  • 호수 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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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렌의 요란한 질주속에서도 강한 삶의 의지를 보이는 견인차 운전자 최하천씨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긴장한 운전자들은 차량에 붙어 있는 모든 거울을 통해 사태를 파악한다. 사이렌의 주인공은 소방차일 수도 있고 구급차이거나 경찰차량 일 수도 있다.

사태파악이 끝나면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긴급차량에 관대함을 보이며 진로를 확보해 주지만 이러한 긴급차량들과는 조금 다른 대우를 받는 차량이 있다.

육중한 몸을 가지고 이리 저리 곡예운전을 하고 있는 견인차량(일명 레커차). 우선 보기에도 묵직하고 위협적인 견인차량이 곡예운전을 하며 자신의 차량 옆으로 지나가거나 도로 위에서 경쟁적으로 추격전(?)을 벌이기라도 하면 이쯤에서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혀를 차기 시작한다.

▶강물에 빠져 지푸라기 잡는 심정
동이면 소도리에 살고 있는 최하천(29)씨도 매일 2.5톤 견인차량의 핸들을 쥐고 한없는 기다림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일명 레커맨이다. "집에서 어제 나왔어요. 옷 갈아 입으러 한 번 들어가야 하는데... 곧 들어가야지요." 언제 그리고 어디서 발생할 지 모르는 사고를 기다리며 견인차량 운전자들은 강물에 빠져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일을 하는 스타일도 다양하다.

핸드폰 충전 상태만 확인하고 한 곳에서 머물며 전화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무작정 고속도로나 국도를 계속 돌면서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사람.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고 다발 지역에 견인차를 주차시켜 놓고 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등<&28137> 그러나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한다.

현재 옥천에는 모두 25대 가량의 견인차량이 운행을 하고 있다. 그중 고정된 월급을 받는 운전자는 2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좋은 말로 프리랜서다. 공업사에서 차량만 임대해 기름 값이며 타이어 교체비 등을 운전자들이 부담해 가면서 견인료를 수입으로 챙기고 차량을 해당 공업사에 맡긴다는 조건이다.

결국 운전자는 견인료와 작업비를 갖고 공업사에서는 차량 수리비용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거다. 그렇다보니 하루에 몇 대의 차량을 견인하느냐는 곧 생계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개중에는 자신이 차량을 구입해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역시 비슷하다. "사람들은 견인차량들이 너무 무자비하게 운전한다고 얘기하죠. 그렇지만 막상 그 일이 생계인 사람들에게는 어쩔수 없는 `삶'이에요."

▶상황에 따라 구조대원 역할까지
"사람들은 우리가 돈에 혈안이 돼 다른 차량이야 어떻게 되든 위험하게 운전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경찰차가 빨리 도착하고 구급차가 빨리 도착한다 해도 우리가 늦으면 도로가 복구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잖아요."

최씨는 도로 한 가운데서 위험을 무릅쓰고 차량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빨리 차량을 끌어내려 노력하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나름대로 일의 보람도 느낀다고 얘기한다. 또 사고 현장에서의 인명 구조나 시신 수습 과정에서도 견인차량 운전자들은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아무도 손대기 싫어하는 피투성이의 환자나 이미 목숨을 잃은 시신을 수습해 구급차에 옮기면 가족들이나 동승자들이 고마워 어쩔 줄 몰라해요. 그때 듣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큰 보람을 느끼죠."

견인차량들은 일단 사고 현장까지는 경쟁적으로 도착하지만 도착순서가 정해지면 불문율처럼 작업도 도와주고 필요에 따라 인명구조나 사고 차량 정리 등에도 손길을 모은다. 일반인들은 경쟁적으로 출동하는 견인차량들을 보면서 서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실제로는 가끔 모여 축구도 하면서 친목을 다질정도로 사이가 각별하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 틀리고 나올 때 틀리다
지난달 23일 쏟아진 비로 옥천읍 하상 주차장의 물이 불었을 때 최하천씨가 끌어낸 차량은 모두 4대다. 물이 불어 작업자가 몸에 밧줄을 묶고 물살을 헤치며 들어가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운전자와 작업비, 견인료에 대한 얘기를 끝내고 물 속으로 들어가 차를 끌어냈지만 비용을 지불할 때 차량 소유자의 반응을 제각각이었다는 것.

"비용 상관 말고 빨리 꺼내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막상 차를 끄집어 내 놓으면 무슨 얘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때로는 짜증나고 화도 나요. 물론, 흔쾌히 고맙다며 비용을 건네는 손님도 있지만요." 그냥 시비정도는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작업비와 견인료를 한 푼도 못 받고 떼인 적도 많기 때문이다.

"외지 차량의 경우 작업을 마치면 `이런 직업에 있는 사람인데 왜 안 믿어주냐'며 돈을 꼭 입금시키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곤 통장번호 적어서 견인해 준 차량을 타고 가버리죠. 그러나 그 중에 태반은 통장에 돈을 입금시키지 않아요" 옆에 앉아 맛깔나는 훈수를 집어넣던 한 견인 차량 운전자의 얘기다. 최씨는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하고 그렇게 틀린가 보다"며 허허롭게 웃는다.

▶차량 구석에 놓인 두 아들의 사진
최하천씨는 견인차량 운전이 전업은 아니다. 고향인 동이면 소도리에서 4대가 함께 살며 140마지기 가까운 벼농사도 짓고, 조그만 포도밭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1년에 몇 달씩은 농사일을 위해 잠시 견인차의 핸들을 놓기도 한다.

그때가 유일하게 아내 신인영(28)씨와 민수, 민석 형제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기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씨는 아무리 견인차량 운전이 부업이라도 본업만큼이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히려 본업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비가 내리면 새벽에라도 뛰어나와야 해요. 그만큼 사고 위험이 높잖아요. 마치 사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현실이니까요." 휴일이나 명절, 휴가철, 비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견인차량 운전자들은 모두 비상근무다. 차를 달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간혹 스스로 생각해도 아찔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항상 아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죠." 최하천씨는 삶의 모습을 얘기하며 견인차량 한 곳에 조심스럽게 꽂아 놓은 씩씩한 두 형제의 사진을 보여 준다. 아찔한 순간이 지나면 그 형제들의 사진이라도 들여다보며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는 것.

오늘도 견인차량을 끌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달리고, 좁은 견인차량 안에서 모기약에 의존하며 불편한 잠을 청해야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삶이기에 최하천씨는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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