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241] 옥천읍 신기1리
신마을탐방 [241] 옥천읍 신기1리
해방 후 고향 못간 사람들 품었던 곳
  • 정순영 기자 soon@okinews.com
  • 승인 2008.04.10 15:36
  • 호수 9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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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리(新基里). 예부터 '새로 터 잡은 마을'이라고 해서 '새터'라 부르다 한자로 '신기리'라 이름 붙여졌다.법정마을로는 금구리에 속해 옥천군청 누리집을 통해서는 마을에 대해 알 방법이 없지만 엄연한 하나의 행정마을로 별도의 회관(경로당)과 마을 이장도 있는 마을이다.

신기1리 이장은 바로 마을 입구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여성 이장 이명자(56)씨. 이 이장은 "도시도 농촌도 아닌데다, 369가구 985명이라는 많은 주민이 살고 있어 시골 마을만큼 주민들이 자주 모이거나 하진 않는다"며 "그래도 경로당에 가면 어르신들이 많이 모여 계시니 마을의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귀띔해 준다.


◆병막고개를 거쳐 해방 이후 새 정착촌 돼

어미횟집에서 삼양초 방향으로 300미터 정도 올라가자 베이지색 반달 모양의 2층 건물인 신기1리 마을회관 겸 경로당이 나온다. 15년 전 본지가 처음 신기1리 마을탐방을 했을 당시만 해도 마을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바로 경로당 건립이었는데, 결국 1998년 지금의 경로당이 건립 돼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 했다.

마침 경로당에 나와 있던 주민 안희선(78)씨로부터 마을의 옛 모습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안씨는 신기1리가 고향은 아니지만 14세 되던 해 옥각리에서 신기1리로 이사와 지금은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통하고 있었다.

▲ "일제 시대에는 여기 일대가 다 환자들의 수용시설이었지요." 신기1리 주민 안희선(78)씨가 '병막고개'란 지명의 유래가 된 곳을 가리키며 마을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요 일대(신기1리에서 삼양초등학교와 마암리 넘어가는 고개 부근)가 다 병막고개라 불렸지요. 그 때(일제시대)는 요양시설이랄 것이 없어서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싹 모아다 여기에 수용했어요. 해방되고는 수용소 철거하고 일본 징용 끌려갔다 귀향한 사람들이 고향까지 가질 못하고 여기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정부에서 공동주택 같은 걸 지어서 사람들을 살게 했는데, 워낙 손에 쥔 것 없이 새로 정착한 사람들이 많아 참 가난할 수밖에 없었어요."

새로 터를 잡은 사람들인 만큼 그 사연도 다 제각각이었는데, 현재 신기1리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삼종(81) 회장은 원래 군북면 막지리가 고향이지만 대청댐으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신기1리로 이사 왔고 조령1리가 고향인 박원권(78)씨는 68년 2월, 고향 마을 앞으로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자 1969년 신기1리로 이사 왔다고 전했다.

박씨는 "농사도 지었지만 사방 각처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 젊은 사람들은 노가다(공사현장 노동) 품도 많이 팔았어. 집성촌 이런 건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더러 길가에 모여 사는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경로당 아니면 모이질 않아"라며 이웃 간의 정은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는 심정을 내비쳤다.

▲ 신기1리를 찾은 날, 경로당 1층 할머니 방에 모인 여성 주민들이 간식으로 부침개를 부쳐먹은 뒤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 신기1리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왼쪽부터) 박우진, 김삼종(신기1리 노인회장), 박원권 할아버지.
◆마을 앞 금구천 예전 모습 되찾길

너무 가난하던 시절 새동네가 되었던 탓일까? 신기1리는 '새동네'란 이름과는 달리 유난히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 많았다. 이에 대해 주민 안희선씨는 "집들이 좀 번듯하게 정비되면 좋겠지만 사실 노인들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 굳이 집을 수리하지 않으려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회관 1층 '할머니방'에 모인 여성 주민들은 "그래도 마을 참 좋아졌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온통 논밭에 초가집뿐이고 비만 오면 곳곳이 진흙탕이 되어버렸던 마을이 이젠 "포장도 다 되고 제법 번듯해졌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주민들은 한 가지 바람으로 신기1리 앞을 흐르는 금구천의 정비를 들었다.옥천읍 시가지에서 가까운 금구천 변은 제방 공사도 제대로 해놓고 도심 미관 상 수질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신기1리는 변두리다 보니 정비가 영 안 되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다.

"예전에는 요 앞에서 빨래도 빨고 애들이 목욕도 했는데 지금은 더러워서 암 것도 못해. 딴 건 몰라도 우리 마을 앞 도랑은 정비 좀 해주면 좋겠어."

▲ 반달모양 신기1리 경로당. 햇볕이 너무 잘 드는 탓에 여름에는 경로당을 찜통으로 만드는 것이 흠이라면 흠인 마을의 사랑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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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2008-04-17 10:27:11
신기리에서 이곳(캐나다, 캘거리)으로 두 달 전에 이민 온 후배와 지난 토요일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새터 얘기 많이 했다. 기사 속의 안희선씨는 나의 친척이다. 나는 금구리에서 태어 났지만 선친은 물론 옥각리 태생이셨다. 이곳에 새터에서 약 5 년 전에 이민 온 사람이 또 한 명 있으니 나를 포함하여 세 사람이나 된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