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 굴리던 고향의 논둑 길”
“굴렁쇠 굴리던 고향의 논둑 길”
[내고향 옥천] 동이면 용운리 천수동 출신 이석주 대전 대신고 교장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07.07.12 17:41
  • 호수 88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석주
그를 만나러 간 길. 방문이 열려 있다. 차라리 문이 닫혀 있으면 인기척을 하기도 더 쉬운 법인데, 그가 있는 방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서 사람들과 무언가를 열심히 논의하고 있었다. 시간약속이 돼 있었기에 협의를 하는 도중임에도 인기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시 서구 오량1길. 옛 주소로 따지자면 복수동에 있는 대전 대신고등학교 교장실의 문을 그렇게 들어섰다.  그곳에서 만난 고향 사람. 이석주(동이면 용운리 천수동 출신, 대전시 서구 갈마동 거주)씨다. 이석주씨를 만난 것은 재경 옥천중총동문회 회장이자, 재경 동이면향우회 전인기 회장의 소개에 의해서다.

전인기 회장과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같은 용운리에 살았던 한 마을 사람이고 옥천중학교도 제13회로 함께 졸업했다. 그가 대전 대신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한 지는 이제 2년이 넘어섰다. 충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교사의 길로 들어선 때는 72년 3월이었다. 같은 재단이긴 하지만 대신중학교에 먼저 발길을 들여놓은 그는 1987년 3월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중학교를 포함해 교직 생활만 지금까지 35년이다.
 
교장실 문이 항상 열려 있는 지 궁금했다. 
“가끔 학생들이 제 방에 들어와요. ‘교장 선생님, 더운데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럼 봐라, 교장실에 에어컨 틀었니? 하고 묻지요. 물론 한 교실에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으니 에어컨은 당연히 틀어야지요. 그래도 그렇게 서로 얘기하고 그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 학생은 물론 교사들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이 교장실이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교장실을 자유롭게(?) 들락거렸다.  그리고 또 다른 사례 하나.

“교문 앞에 꼬치 집이 있어요. 퇴근하다 보니 언젠가 애들이 ‘교장 선생님’ 하고 불러요. 그러더니 ‘여기 꼬치 집 있는 데요’ 그래요. 그래서 그럼 너희들이 꼬치 하나 사줄래? 물었죠. 그랬더니 그 녀석이 ‘선생님께서 사주세요’ 그래요. 그래 사주마 그랬죠. 집이 어딘가를 물으니 방향이 거의 같아요. 그래서 그럼 꼬치 먹고 같이 걸어가자고 해서 같이 걷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그의 집까지 1시간10분은 넘게 걸어야 갈 수 있는 길. 그는 자주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 다니곤 한단다. 무작정 좋은 게 좋기만 한 교장 선생님은 당연히 아니다.  대신고등학교는 그의 방침대로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찾을 수 없는 학교다. 이제 정착이 됐단다. 학교에 들어서면 지금은 시내에서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띄는 것이 우연한 일은 아닌 듯 싶었다.

대신 전화가 필요한 학생은 언제든 교무실이나 교장실, 행정실 등에서 전화를 쓸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제 그런 방침은 대전시 교장단회의 때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자고 결의하도록 이끌었단다. 두발도 윗머리만 5cm일 뿐, 옆머리와 뒷머리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협의에 의해 자율화했다가 너무 무질서해지자 학생들에게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게 지켜지지 않자 다시 환원시킬 정도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학교폭력 없는 학교’는 학교 내에서 시행하고 있는 ‘학급가족 만들기’ 등의 인성교육 프로그램 덕분이다. 이런 교육철학은 대신고를 대전의 명문사학으로 지속시키는데 큰 동력이 되고 있다.  그에게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고향 가는 길은 저녁에 걸어가도 돌부리에 채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대전으로 나와 생활했던 그이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기억들이 많지 않을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굴렁쇠 갖고 세산, 평산리 마을길은 물론이고, 논둑길까지 굴리며 돌아 다녔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는데 초등학교 때에는 음악 선생님이 좋아서 음악선생님, 중학교 때는 영어 선생님, 고등학교 때는 역사·지리선생님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영어 선생님으로서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중학교 시절 수학 임순재, 국어 윤길원, 미술 천충실, 물상 육종기 선생님 등 은사들의 이름을 하나같이 기억하고 있는 그는 기억력이 원래 좋단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제자들의 이름은 물론 번호까지 기억하고 있는 그였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오갑식 전 군의원, 전장한 전 의보 부장, 임원호씨, 중학교 동창으로 김비룡 오창고 교장, 한명교씨, 오병두씨 등이 소중한 친구들이다.  교직에서 정년을 하면 그는 고향에 돌아가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문화해설사나 국어·한문 등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곳도 고향이 일순위다. 고향에 돌아가는 일이 여의치 않으면 대전에서 활동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현직에 있어서도, 퇴직을 해서도 멋있는 인생을 살 준비가 돼 있는 사람, 이석주 교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