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226] 안남면 지수2리 수동
신마을탐방 [226] 안남면 지수2리 수동
인정 넘쳐나는 안남의 끝자락
  • 정순영 기자 soon@okinews.com
  • 승인 2007.06.28 15:09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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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다리 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면 수동 마을이 있다. 옹기종기 모인 집들과 넘실대는 보리밭, 커다란 감나무들이 정겹게 자리잡고 있는 수동.
옥천읍에서 안남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창밖 구경만으로도 심심할 일이 없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과 금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자연에 취해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달려 안남면 소재지에서 5분 정도 더 가다 보면 큰 고갯길이 하나 나온다. 버스가 고개를 넘을 즈음, 창밖으로는 두 개의 마주보는 산 가운데에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수동 마을이 나온다. 버스의 종점, 다음 차 시간이 될 때까지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쉬어 갈 수 있는 곳, 수동을 만나보자.

◆‘구비’와 ‘평촌’이 펼쳐지는 수동마을
안남면의 가장 끝에 자리한 지수2리는 잔다리와 수동, 수동이 다시 구비와 평촌으로 나뉘어, 총 3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곳이다. 잔다리에서 높은 고갯길을 막 넘었을 때 만나게 되는 곳이 구비이고 고갯길을 내려가면 있는 곳이 평촌.
 
현재는 마을 주민들도 구비와 평촌을 거의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수동’이라는 한 마을로 부르며 지내고 있다. 지수리(池水里)란 명칭은 바로 현재 지수1리로 불리는 지내리(池內里)의 ‘지’와 수동리(水洞里)의 ‘수’가 합쳐진 말이다.
 
‘수동’이라는 이름은 이 마을이 물가(금강)에 위치하고 있어 ‘물골’이라 했던 것에 유래한다. 이름 덕인지 예부터 다른 마을에 가뭄이 들어도 이 마을의 물 사정은 좋았다고 전해진다.

◆큰물이 들면 마을이 잠기기도
“예전에 홍수가 나면 저 구비 아래까지 물이 차올랐다니까.”
잔다리에 살면서 수동에서 농사짓는다는 정구성(79)씨가 가던 길을 멈추고 산을 가리키며 말을 꺼낸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마을에 큰물이 져, 마을 뒤를 지키고 있던 국사봉 아래까지 물이 차올랐다는 것.

그 물길을 따라 돛대가 산을 넘어 다녔다는 전설이 있다는 정씨의 이야기에서 예부터 물이 풍부했던 ‘수동’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었다. 마을에서 8대째 살고 있다는 이기동(68)씨로부터 전해내려 오는 전설 몇 가지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저 능선 보이슈?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마을 뒷산 저 줄기를 옛 어르신들은 ‘말잔등’이라 불렀다더라고. 말이 뛰어 놀아 그리 불렀다는데, 본 사람이 없으니 모르지 뭐, 허허”
 
또 산 어딘가에 ‘청돌’(새파란 돌)이라는 큰 돌이 있었는데 거기 새겨진 커다란 사람 발자국이 장수의 발자국이라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한다. 전설 속의 말이나 돌을 지금에 와서 확인할 순 없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지냈다는 ‘산신제’의 전통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동 마을은 예부터 음력 정월 초삼일이 되면 집안에 우환이 없는 남성들이 산에 올라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산신제가 있는 날이면 마을의 여성들은 부정탈까봐 집 밖에도 못나왔다고. 남성들이 산신제를 다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 그때서야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형식을 그대로 따르진 않지만 최근까지도 수동, 잔다리 주민들은 정월 대보름이면 뒷산 성지봉에 올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달맞이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 1980년 1월. 마을에 큰 잔치가 있어 주민 모두가 한 집에 모여 음식을 마련하던 모습.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동 마을 주민들은 이웃의 일을 내집 일처럼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사진제공: 김용남 이장
▲ 1980년 1월. 마을에 큰 잔치가 있어 주민 모두가 한 집에 모여 음식을 마련하던 모습.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동 마을 주민들은 이웃의 일을 내집 일처럼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사진제공: 김용남 이장
◆여전히 눈 오면 오갈 길 막혀 
“도시 사람들 보기엔 여전히 벽촌 같겠지만, 나 시집 왔을 때 비하면 완전 서울이지, 나 젊었을 적엔 열 식구가 목화를 따서 무명실로 옷을 해 입었다니까.”
 
집 뒤 텃밭에서 김을 매고 있던 주옥자(74·수동)씨는 그래도 살기가 많이 편해졌다며 마을의 옛 모습을 들려줬다.  수동은 옥천에서도 늦게 도로가 정비되고 교통 환경이 개선된 지역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간 흙먼지 날리던 길이 2차선 도로로 말끔히 포장되고 하루 세 번 밖에 다니지 않던 시내버스도 하루 여섯 번으로 늘어났다. 버스는 늘었지만 눈이 많이 오는 겨울철에는 버스가 높은 고개를 넘지 못해 여전히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

◆마을에는 ‘김 이장’이 있다
겨울철, 야속한 눈이 마을 주민들의 발을 묶을 때마다 그 발길을 뚫어주던 젊은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수동에서 나고 자라 현재 지수2리 이장을 맡고 있는 김용남(52)씨다. 안남면 소재지에서 지수리로 오는 길은 중간 중간 고개가 있어 눈이 많이 오면 꼼짝없이 고립되는 지역이었다.
 
주민의 불편을 걱정한 김 이장은 눈이 많이 올 때마다 자신의 트랙터를 몰고 나와 제설 작업을 벌였다. 특히 지난 2004년 지역에 폭설이 내렸을 때, 자신의 인삼밭도 1천여 평의 차광막이 망가지는 등의 피해를 봤지만 주민들의 통행을 먼저 걱정하며 새벽부터 제설 작업에 나섰다. 올해 1월 지수2리 이장을 맡게 되면서 한층 더 바빠진 김용남씨.
 
마을의 뿌리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지수2리 탑신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이장은 “우리 마을이 대청댐 상수구역이라 이런 저런 규제로 주민들이 겪고 있는 불편이 많다”며 “그래도 작년에 건강관리실이 생겨 마을 주민들이 조금이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마을 찜질방 보셨수? 
수동 마을회관은 특별나다. 겉만 봐서는 여느 농촌의 마을 회관과 다를 바가 없지만 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갈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찜질방과 목욕실 때문. 지난해 9월, 5개월여 간의 공사기간 끝에 수동 마을회관에 ‘농업인 건강관리실’이 생겼다.
 
농업기술센터의 ‘농업인건강관리실 설치사업’에 선정돼 5천만원의 지원금과 금강수계 주민지원사업비 600만원으로 주민 건강을 지키는 멋진 시설이 마련된 것이다.  회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10여 가지가 넘는 운동 기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러닝머신부터 근력운동기계까지, 웬만한 운동은 다 할 수 있는 규모다.
 
또한 방 한켠에 마련된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아늑한 찜질방과 널찍한 목욕탕은  수동의 커다란 자랑거리이다. 지금은 여름철이고 농번기라 잠시 이용을 하고 있지 않지만 겨울이 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이 곳, 건강관리실에 모인다고.  건강관리실은 금강수계 주민지원사업비와 주민 1인당 1년에 만원씩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 안남 지수2리 수동
◆쉬어갈 수 있는 곳, 수동
수동 마을회관 앞에서 손녀 수은이의 재롱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던 현재홍(73), 장은옥(66)씨 부부와 친구 김응복(66), 염성심씨(63)씨 부부에게 말을 건네 본다. 현재홍씨와 김응복씨 모두 수동이 고향으로, 평생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단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지만 사실 우리 마을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그냥 살기가 좀 편해진 것뿐이지. 지금은 잔다리, 수동으로 나눠 부르지만 어린 시절에는 다 한 마을이었지 뭐. 변한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세 마을 합쳐 100호가 넘게 살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지.”
 
현재 수동 마을에는 35호, 1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떠나는 인연이 있으면 새로운 인연도 있는 법. 계절마다 빠짐없이 농활을 오는 학생들과 1사1촌 결연을 맺은 삼성화재 직원들은 바쁜 농번기에 힘을 보태주는 고마운 인연이다.
 
김용남 이장이 보여 준 27년 전 사진에는 다함께 마을잔치를 준비하던 주민들의 정겨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로 돕고 나누는 주민들의 끈끈한 정이 바로 수동을 지키는 든든한 힘이 아닐까.        

“저희도 공부하고 싶어요!”
손녀 수은이의 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현재홍씨 댁


▲ 수동마을에서 아들 내외, 손녀들과 함께 살고 있는 현재홍(오른쪽), 장은옥 부부와 큰손녀 수은이.
현재홍씨 댁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고향에서 손녀 둘의 재롱을 보며 늙어갈 수 있다는 것에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요즘 현재홍씨 댁에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다름 아닌 큰 손녀 수은(4)이의 교육 문제가 그것. 베트남에서 시집 온 며느리가 아이에게 한글 등을 가르치는 데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놀이방을 알아봤지만 기름값을 더 주겠다고 해도 수동까지는 어떤 놀이방 차도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아이를 데려다 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 수은이는 하루 종일 혼자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수은이 엄마는 다들 읍이나 도시로 나간다 해도 시부모님이 평생을 살아오신 마을을 함께 지키며 살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마음대로 안 되는 현실이 너무 야속하게 느껴진다고.
 
현재 마을에는 수은이를 비롯해 5살, 7살 남자아이가 있는데 놀이방이나 유치원을 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옥천읍에 있는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방문하기 힘든 외국인 주부들의 경우, 본인에게 필요한 지원은 둘째치고라도 아이 양육에 필요한 도움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가족지원센터에서 이동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지원 대상자도 한정돼 있다. 군이 면 단위에 공동보육센터 등을 설치해 어린이들이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원대책이 절실한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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