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하로 넘던 다래비재엔 길이 있을까”
“계하로 넘던 다래비재엔 길이 있을까”
[내고향 옥천] 청성면 무회리 점동 출신 이용해 재경청우회장·서울탑항공 대표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07.06.28 14:45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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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해
새벽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밥을 먹기 바빴다. 괘종시계가 있었지만 시계보다는 매일, 매일 일어나고 밥 먹고 하는 감각에 의해 학교로 내달렸다.  점동 앞 거포천을 건너면 동광 마을이 있었고, 동광 마을에서는 산 속으로 들어가야 길이 있었다. 구리광산이 있어 동광 마을이었던 마을에서 학교를 가려면 산을 하나 넘는 고갯길로 달렸다. 다래비재라고 그는 기억했다.
 
그 길이 지름길이었다. 산길로 가도 8km 길. 초등학생에겐 멀고도 먼 길이었다.  뛰어가야 학교에 지각을 하지 않았기에 어린 마음에 형들 뒤를 열심히 따랐다. 고무신 신고 책보는 울러 메고, 다녀야 했으니 눈이 올 때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슬 때문에 바짓가랑이는 날마다 젖었다.  장마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 가지 못했던 날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달리기 선수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길을 달려야 했으니 지금도 그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 때 달리기를 잘했다고 기억한다. 달리기를 하면 항상 1등이었고, 이어달리기 선수는 맡아 놨다.  그때도 어린이회장을 직접 투표로 뽑았다고 했다. “이왕이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학생회장을 지냈다. 욕심이 있어서였단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그는 꽈배기를 사줘서 주위 친구들을 자신의 도우미로 만들었다고 했다. 불법 선거운동?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지금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그래서 밝히는 거다.
 
지금으로 봐서는 별로 믿기지 않는 얘기 한 가지.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는 인근 마을인 구음리에서 추석 콩쿨대회를 연다. 옥천읍에 나와 전파사에서 확성기와 마이크도 빌렸다. 집에서 쌀을 내다 팔아 양은솥 같은 상품을 마련하기도 했고, 어른들이 상품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콩쿨대회는 대성공이었다. 구음리, 무회리는 물론 화성리에서까지 사람들이 참여했다.
 
“뭘 알아서 사회까지 보았나 모른다”는 그의 말을 빌면, 우선 먹고 사는 것이 급했던 당시, 그는 조금 일찍 세상을 알았던 것은 아닐까?
 
이용해.  지금 우리 나이로 58세이고, 청산중학교 제19회 졸업생이다.  청성면 무회리 점동 출신인 그는 지금 서울탑항공 대표이사다. 국내 유수의 여행사인 탑항공사와는 별도 법인체이다. 탑항공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3년 전인 1984년. 군 수사관 모집시험에 합격해 수사기관에 근무하던 그는 12년의 군 생활을 접고, 탑항공에 입사했다. 그가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35세.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들보다 먼저 나와 사무실을 정리하고 1시간 일찍 근무한다는 생각은 그를 고속승진의 길로 이끌었다. 1991년 탑항공 대표는 이용해씨에게 공로주를 주어 서울탑항공이란 별도 법인을 설립했고, 1992년 그는 서울탑항공 대표로 취임했다.
 
처음 그가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 그의 책상 앞에는 ‘세계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자’는 구호가 붙었다. 그 구호는 여전히 지금도 그의 책상에 있단다.  그가 탑항공 최고의 세일즈맨에 이어 젊은 나이에 서울탑항공 대표로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성실성과 근면함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아직까지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 골프를 치면 4명 정도와 함께 라운딩하면서 만날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남보다 1시간만 더 일한다는 각오로 한다면 그 어떤 것이든 따라잡고 앞질러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 5월25에 있었던 재경청우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에게 재경청우회의 활성화를 위한 책임이 또 하나 주어진 셈이다.
 
청산, 청성 사람들의 출향인 모임인 청우회에 가입한 지 20년만의 일이며 재경옥천향우회 활동도 15년간이나 했다.  그래서 그에게 고향은 좋은 곳이다. 지금 고향엔 임상철 이장을 비롯한 몇몇 어른들만 있을 뿐이지만 고향에 대한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옛날엔 점동 정말로 좋았지요. 마을 사람들과 강변에서 놀고 자고, 봄만 되면 인근에서 처녀들이 다 와서 다슬기도 엄청 잡았던 곳이지요. 그래서 고향은 추억도 좋은 모양입니다. 계하로 넘어 다녔던 다래비재엔 지금도 넘어가던 길이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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