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87] 옥천읍 교동리(2)-교동마을(향교리)
신마을탐방 [187] 옥천읍 교동리(2)-교동마을(향교리)
`쿵쿵꽝꽝' 교동리는 리모델링 중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6.01.20 00:00
  • 호수 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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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면 향교리와 고수동리가 합하면서 교동리가 되었다. 지금의 지명은 조선 태조 때에 지방의 영재를 기르기 위해 향교를 세워 ‘향교리’라 부르던 것이 ‘교동’이라 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동리 자연마을로는 교동, 섯바탱이, 고수골이 있었다. 지금 교동저수지 자리에 있던 고수골 원 마을은 없어지고 교동과 섯바탱이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교동마을은 수북리 쪽으로 가다보면 왼편으로 한눈에 펼쳐져 있다. 교동리 1반과 2반인 이곳에는 약 60여호가 거주하고 있다. - 편집자주

섯바탱이(교동리 3반)를 다녀온 후 교동리 본 마을이라 할 수 있는 교동리 1·2반을 찾았다. 수북리로 들어가는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다가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은 겉보기엔 평온하다. 평온한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멈춰있는 듯 고요하기까지 하다. 겨울이 돼 텅빈 마을 앞 문전옥답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가 더욱 힘든 것일 게다.

하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 마을을 훑어보면 곳곳이 꿈틀꿈틀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동리에 있는 향교와 육영수 생가는 보수와 복원으로 공사현장을 방불케 하고 아늑한 뒷동산에 기대어서는 새로운 주택이 꽤 들어서 있고 주택지의 터 닦기 공사 흔적도 역력하다.

◆옥천향교 대성전 전면 해체
마을의 이름이 유래한 향교는 대성전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얼기설기 엮은 철제 구조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세월의 흐름에 삭는 건축물을 어찌할 수 없다지만 오랜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있던 대성전의 본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영 맘이 개운치 않다.

▲ 옥천향교 대성전이 전면 해체됐다. 기둥의 부식이 심해서다. 올해까지 재건축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건축된 옥천향교는 임진왜란 시기(1592년)에 불탄 것을 다시 중수한 것인데 이번에 대성전을 모두 해체하게 된 것이다.

군에 따르면 부분공사만 할 요량으로 1억5천만원의 사업비를 받아 지난해 12월까지 시행하려고 했다. 뜯어낼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부를 뜯고 보니 기둥의 부식이 심각한 지경으로 자칫 무너질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도 문화재위원들의 전면 해체 결정에 따라 지난해 9월 1억2천400만원의 예산을 추가로 배정받아 총 2억7천4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대성전 전면해체 재건축 공사와 동문 지붕보수 공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해체한 후 쓸만한 목재는 다시 재활용할 계획이라고 하니 옛 향취는 새것에 숨어들어간 본래의 목재에서 간신히 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올 3월에 설계변경을 해 공사에 들어가면 올해 안에는 새로 올린 대성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휑하니 겨울바람이 채워진 대성전 자리를 본 후 돌아본 부속건물들도 힘겹게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쓰럽다. 대성전 외 남아있는 부속건물들은 전면해체까지 가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옥천향교는 1981년 충북유형문화재 제 97호로 지정되었으며 성균관의 하급 관학으로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여 종6품의 교수와 정9품의 훈도를 두었던 지방교육기관이다.

◆생가복원 후 복잡할까? 좋을까?
육영수 생가 터에서는 당장 망치질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높이 솟아 오른 철제 구조물에 짙은 색 포장을 둘러친 모습에 무엇인가 꽤 큰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 육영수 생가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넓게 둘러친 포장이 무엇인가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18일 안채 상량식을 가진 육영수 생가는 내년까지 총 90억원을 들여 안채를 비롯해 위채, 사랑채, 아래채, 사당, 대문채, 창고, 중문채, 곳간과 연못·정자 등을 다시 지을 계획이다.

육영수 생가 공사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공사비를 들이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말도 많다. 육씨 집안을 비롯해 남편인 박정희 등 주변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도로 엇갈리니 당연한 일이다.  그 와중에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에게서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복원되면 좋지, 사람들도 많이 올 것 아니여? 그러면 그 사람들 상대로 호박잎이라도 쪄서 팔아야지. 작년에 고치지도 않았는데 소문 듣고 관광차가 꽤 들어오던데 다 짓고 나면 오죽 많이 들어 오겄어?”

한 아주머니가 호박잎 팔아서 돈 좀 벌어보겠다고 농반 진반으로 말을 던지자 다른 주민이 툭 내뱉는 말에서 주민들의 다른 분위기도 감지할 수 있었다.

“아이구 모르지. 복원이 되어서 마을이 발전되는데 도움이 될지. 아니면 그냥 동네만 시끄럽고 복잡할 지. 나도 궁금하네.”

육영수 생가 복원은 주민들에게 기대 반, 우려 반인 듯싶다. 그래도 교동리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어버린 마당에 낡고 무너져 내리던 모습의 기존 주택보다는 제대로 복원된 1천800년대의 고건축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는 차이가 없었다.

◆새로운 주거지 건설 활발
옥천읍 상계리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흐르듯 뻗어 있는 교동리는 마을길을 따라 전면에 비슷비슷한 건축양식을 선보이는 주택들이 고만고만 늘어서 있다. 60∼70년대 근대화 바람이 한참 불 때 기본적인 건축설계가 약간의 변형을 거쳐 카피된 결과로 보인다.

▲ 마을 안쪽으로 형성된 신주택지. 전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단층도 있고 2층 주택도 있지만 밋밋한 시멘트벽에 연한 색의 페인트를 칠한 것이나 삼각지붕을 갖춘 모습이 형제처럼 닮았다. 그 덕분에 시대성이 드러나야 할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해도 좋을 만큼 마을의 전면은 과거 어느 시점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멈춰선 듯 하다.

그러나, 마을의 뒷골목을 좀 돌아다녀 보면 마을의 전면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육영수 생가 옆쪽으로 택지가 개발되면서 새로운 주택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흰색 페인트를 산뜻하게 칠하고 같은 모양의 날씬한 철제 울타리가 집의 경계를 구별하고 있으며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국적인 우편함도 하나씩 갖추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지루한 느낌을 주다가도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한눈에 잡아보면 제법 그럴듯하다. 이런 변화는 마을 구성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결국 마을 전체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뒤쪽으로 새로운 집이 다섯 채 정도 들어섰죠. 육영수 생가복원 공사도 한창이구요. 변화가 일고 있지요.”

조용길 이장은 크고 작은 변화가 일지만 당분간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향교와 육영수 생가와 같이 눈에 보이는 역사 뿐만이 아니라 고운 심성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마을의 정신적 유산도 함께 남기를 기대해 본다.

“복원하는 거 보니 맘이 좋네”
[인터뷰] 육영수 생가 재산관리인 육남수씨

   
▲ 육남수씨
육남수(83)씨는 오랫동안 관리해오던 육영수 생가 복원현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었다. 추위가 한풀 꺾여 바람을 덜어낸 햇볕이 제법 따사롭게 비추던 날 마당의자에 육 옹과 마주 앉았다.

“허물어져 가는 집을 보고 있는 것이 영 맘에 안 좋았는데 이렇게 복원이 되니까 참 좋아요. 반갑고. 가진 게 없는 탓에 몸은 고단해도 저렇게 공사하는 걸 보니 기분은 좋네요.”

전라북도 남원이 원 고향인 육남수씨는 젊은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된 육인수씨의 서울 필운동 집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일을 보다가 ‘옥천에 있는 재산을 관리하라’고 해서 옥천으로 내려온다.

38년 전 일이다. 그때부터 내내 옥천에 있는 육씨 집안의 재산관리를 맡아 했다.

“교동리가 참 좋은 동네예요. 돈 많은 사람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이 많지 않아도 사람들 모두 온유하고 다정다감하고 서로 챙겨주는 그런 곳이에요.”

육씨는 교동리에서 노인회장 일도 보았고 명절에 주민들이 부탁을 하면 꽹과리나 장구도 신명나게 쳤다. 또 육자배기도 한 번 부르면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을 자아낼 만큼 그리 잘 불렀다고 한다.

사실, 육자배기 한 자락 듣고 싶어 육 옹을 찾은 것이었는데 앞 소절 잠깐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혹시 육영수 생가 복원공사가 끝난 후 마당에서 신명나게 쇠를 치고 육자배기를 부르는 육씨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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