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83] 군북면 자모리(2) - 윗자모리
신마을탐방 [183] 군북면 자모리(2) - 윗자모리
청룡의 몸뚱어리에 기댄 근교농업의 중심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5.12.02 00:00
  • 호수 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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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에 심어 놓은 갓을 수확하는 홍성고씨. 올해 마지막 수확으로 손길이 바쁘다.

4호 국도를 따라 옥천에서 대전을 가다보면 마지막으로 만나는 마을이 군북면 증약리와 함께 자모리다. 군북면 자료에 따르면 자모리는 증약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1908년 자모리로 분구되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자무실’이라고 불렀던 지명을 한자화 하면서 생긴 것으로 군북면은 밝히고 있다. 또 옛날 이 마을에 살았던 충신이 매일 국사봉에 올라가 북쪽을 향하여 나랏님을 사모하였음으로 자모실, 자모곡이라고 하였다가 자모리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연마을로는 윗자모와 아랫자모, 그리고 그 사이에 셋집메로 나뉜다. 이번 호에서는 셋집메에 이어 윗자모리를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셋집메를 지나 마을 끝까지 오른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은 긴 잠에 들어갈 준비로 나른한 한가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자모 사람들이 부추농사 안 지으면 대전에서 부추구경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자모리 부추는 명성이 자자하다. 초록빛 잔디밭을 연상시키던 부추 밭은 이미 겨울색이다. 그냥 저냥 괜찮은 시세를 형성했던 올해 부추농사는 일찌감치 마무리 되었다.

그 이랑에 심어 놓은 갓도 어지간히 수확이 끝났다. 색 바랜 부추와 그 곁에 전혀 다른 모습의 갓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흥미롭다. 손바닥 만한 땅이라도 그냥 노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농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날씨가 추워서 이제 더 수확할 것도 없어요. 오늘만 베면 올해 농사는 끝날 것 같아요. 내년 봄까지는 이제 좀 한가하겠죠.”

홍성고(56)씨는 연신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낫으로 갓을 슥슥 베어낸다. 아내는 집에서 갓을 다듬어 단을 묶고 있어 너른 들판에는 경운기 한 대와 홍씨가 전부였다. 그래도 입가엔 힘들고 지루했던 방학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기분 좋은 웃음이 맴돈다.

“부추농사가 이게 아주 사람 잡는 거예요. 한 번 베기 시작하면 아주 혼을 쏙 빼놔요. 그냥 저냥 시세가 괜찮으면 그나마 할만한데…. 언젠가 한 번은 품삯도 안 나와서 그냥 다 갈아엎은 적도 있어요.”

◆부추로 시작한 농사 갓으로 마무리
대전에서 살다가 윗자모리에 터를 잡은 홍씨는 처음엔 포도가 주품목이었다. 국제기계에 다니다가 포도시세가 괜찮은 것 같아 들어왔다. 서른세 살 때다.

“그 때는 포크레인도 없이 사람 손으로 밭을 일궈서 포도나무 1천300주를 심었죠.”

요즘 말하는 귀농인인 셈이다. 20년 가까이 아이들 가르치고 생활을 하게 했던 그 포도나무는 3∼4년 전에 다 갈아엎었다. 지금 그 밭에도 부추를 심었고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가족들이 자꾸 파헤쳐 놓아 골치다.

부추와 갓은 그 양의 차이가 있을 뿐 윗자모리 거의 모든 집에서 경작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벼농사에만 의존하기에는 농토가 적어 보인다. 주민들이 일찌감치 벼대신 부추와 갓을 선택한 이유도 쉽게 짐작이 간다. 홍씨의 소개로 윗자모리 제일 어른 집을 찾았다.

   
▲ 윗자모리 제일 어른 신기준, 차동월 부부

◆고단한 삶 풀어내던 두메산골
“매년 정월 열나흘에 거리제를 지내는 것 빼고는 뭐 특별한 것은 없어. 저 아래 윗자모리 끝에 청룡끝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거기 당산나무 아래서 지내지. 거리제는 마을마다 따로 지내고 산신제는 자모리 전체가 함께 지내고.”

따뜻한 한낮 햇살이 내리쬐는 마루에서 신기준(80) 할아버지는 화투장을 늘어놓고 운수를 점치다가 손님을 맞았다. 윗자모리 마을은 뒷산능선을 등에 대고 졸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앞에 두고 형성되었다. 큰산에서 흘러내려 마을이 기댈 자락을 만들어 놓은 뒷산이 결국 청룡인 셈이다.

옛날보다 윗자모리의 가구는 늘었다는 것이 신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요즘에도 집을 사기 위해 외지에서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하다.

“옛날에야 신작로에서 여기 들어오려면 좁은 길을 따라 한참 들어왔어야 했지. 그나마 새마을사업하면서 저 길이 넓어진 거야. 얼마 전에 새로 놓은 저 도로도 다 밭이었구.”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새로 포장한 널찍한 도로 대신 예전에 이용했던 시냇물 옆 오솔길만을 남겨 놓으니 꽤 깊은 산골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 고향이 보은군 저 산골인데 어려서부터 시골로는 시집 안간다고 그랬거든. 근데 겨우 여기로 왔잖아. 그 때 가마타고 오는데 큰 오빠가 뒤따라오면서 그러더라구. 으이그 시골로는 시집 안 간다고 그러더니 결국 여기냐?”

어여쁜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 오빠의 마음이 더해졌겠지만 차월동(74)씨의 얘기를 들으니 당시 자모리의 모습이 짐작간다.

“그래도 저 사람이 내가 처음 처가를 갔는데 기차가 뭐냐고 물었다니까. 여기는 기차도 있지. 신작로도 있지. 자동차도 볼 수 있지. 저 사람 고향에 비하면 도시지.”

할머니 말끝에 할아버지가 밉지 않은 퉁을 놓는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하는 그 기차도 당시엔 고단한 삶에 얹혀 신비롭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버들강아지로 배 채우던 시절
“동네 아낙들이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나물을 뜯어다가 대전에 나가 팔았지. 그땐 이백리에 간이역이 있었거든. 그것만 하나 팔뚝만 하게 나무를 잘라 잘 말려가지고 그걸 이고 저 장고개랑 소금고개 넘어서 대전으로 나가 팔았다니까. 곤로도 나무를 연료로 썼던 시대였으니까.”

말끝에 ‘으이그 징그러∼’가 잘 어울리는 추임새로 곁들여진다. 농토도 넓지 않고 그나마 경지정리도 되지 않아 다랑이 논이었다. 뚜렷한 소득 작물이 없었던 당시 윗자모리 주민들의 삶도 팍팍했다. 할머니의 고생담에 할아버지도 거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죽 쑤어가지고 한 술 뜨고는 온 산을 헤집고 다니는 거야. 대전 동구 인동 근처에 가져다 팔아 좁쌀이라도 한 되 가져왔어야 하니까. 점심이 어디 있어. 그냥 산에서 버들강아지나 진달래를 뜯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지.”

옛 추억 속으로 한참 빠져 들어가던 신씨 할아버지는 논둑에 감나무도 참 많았던 사실을 떠올린다. 지금처럼 경지정리가 되기 전 얘기다.

“가을에 빨갛게 익어 가면 보기도 괜찮았는데 지금처럼 한가해지면 사랑방에 모여서 노는 것도 재밌었고.”

그때 할아버지는 동네 청년들과 사랑방에 모여 성냥치기를 했단다. 그때만 해도 성냥이 무척 귀할 때여서 황을 사다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쓸 정도였다고 한다. 목침을 비스듬히 세워놓고 차례대로 성냥개비를 굴려서 앞에 것에 닿으면 가져가는 놀이방법을 열심히 설명하는 할아버지는 그 당시 청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 청룡의 몸뚱어리에 기대어 평화롭게 숨쉬고 있는 윗자모리 이곳저곳에 다시 감나무를 심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옛날이 지금보다 더 재밌었어”
자모리에서 만난 사람, 노명호씨

   
▲ 마당에서 우족을 고아내고 있는 노명호 할머니는 숯에 구운 감자를 건넨다.
마당 한 쪽에 마련해 놓은 야외 부뚜막 검은 가마솥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부지깽이 손에 쥔 노명호(74) 할머니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눈을 찡그리며 불땀이 좋도록 이리저리 불붙은 장작을 뒤적인다. 할머니의 남편은 두 번째 이장을 맡아 보고 있는 방용복(74)씨다.

“딸이 고와 먹으라고 우족을 가져왔어요. 양은솥에 고면 얇아서 너무 빨리 쫄거든요. 이렇게 무쇠가마솥에 푹 여러 번 고와야 제대로 우러나죠.”

인천에서 살고 있는 딸은 어머니가 담가 놓은 김장김치를 가져가기 위해 고향에 들러 우족을 놓고 갔다.

“아, 이 동네야 인심이 무척 좋죠. 우리도 여기 산지 40년이 됐지만 처음부터 타관도 안탔고….”

요즘엔 부추나 갓 농사 때문에 먹고 살만 하지만 재미는 예전만 못하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이웃들이 그만큼 바빠졌기 때문이다. 부추를 수확해야 할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서로 얼굴보기도 힘들 정도다. 하루 종일 밭일에 매달리다가 대전 공판장이 쉬는 날에는 밀린 집안일 하느라 정신없다.

“옛날에 젊은 새댁들끼리 집집마다 모여서 놀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는데.”

할머니는 시커멓고 동글동글한 것들을 부지깽이로 아궁이에서 끄집어내더니 건넨다. 감자다. 할머니 옆에 주저앉아 손과 입에 검댕을 묻히며 껍질을 벗겨 먹으니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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