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량위기' … 유기농업으로 극복
[기획] `식량위기' … 유기농업으로 극복
생명의 시대, 우리는 친환경으로 간다 (6) … 유기농 혁명, 나라를 살리다(쿠바 현지르포 1)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11.04 00:00
  • 호수 7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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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글싣는 순서

    1회:친환경만이 대안이다
    2회:옥천의 친환경농업, 그 실태와 문제점
    3회:친환경농엽, 자치단체의 경쟁력
    4회:대한민국 유기농 1번지, 문당리의 교훈
    5회:지역순환형 농업운동, 아산 생산자 연합회
▶6회:유기농 혁명, 나라를 살리다(쿠바현지르포-1)
    7회:행복한 농사, 건강한 사람들(쿠바현지르포-2)
    8회:‘유기농 옥천, 어떻게 가꿀 것인가?’

‘생명의시대, 우리는 친환경으로 간다’는 주제로 전국의 주요 환경농업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례로 들었던 나라가 바로 쿠바,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이다.

11만860제곱킬로미터의 섬나라 쿠바는 한반도 전체면적(약22만 평방킬로미터)의 절반, 우리나라와 비슷한 크기이며 2005년 현재 약 1천134만여 명의 인구를 보유, 대한민국의 1/4 수준이다.

▲ 쿠바 위치도
현재 한국과는 외교관계 조차 없으며 올해 10월에 가서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수도 아바나에 사무소를 열 수 있었던 먼 나라 쿠바. 최고수준의 공공의료시스템으로 영·유아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고, 쌀과 감자 등 주식 류 일부를 제외한 국내 소비식량의 대부분을 자급하는 저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쿠바는 최근 몇 년간 한국의 환경농업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졌다.

특히 2003년 5월21일부터 6월1일까지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제5회 세계유기농대회’는 큰 계기가 된다. 이런 쿠바 유기농업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기 위해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찾았다.

◆‘특별시기’를 아시나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전망 200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약 25.3%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가축을 모두 10 이라고 한다면 약 2.5명 정도만이 우리 영토 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식량자급률 산출 기준 중 절대량을 차지하는 쌀을 제외하면 나머지 곡물의 자급률은 2.6%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명의 비율은 수입곡물로 식량과 사료를 충당하지 못할 경우가 절대로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을 우리는 ‘식량주권의 위기’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말이 좋아 위기지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곡물의 흐름이 상당기간 ‘정지’될 경우 이 위기는 ‘죽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위기가 닥친 경우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사료급여가 중단된 가축들이 때죽음을 당할 것이고 사람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생지옥’을 연출할 것이다.

1991년 9월 쿠바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사회주의국가 쿠바에서 반정부시위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1961년 미국의 쿠바침공 사건인 ‘피그만 침공’때 처럼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경제봉쇄와 사회주의 국가의 대 몰락이 앞서 언급한 ‘죽음’과 다름없는 ‘위기’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91년 당시 쿠바의 식량자급률은 약 40% 이하였던 것이다.

◆“그냥 거의 매일 굶고 살았죠”
“우리는 그 시기를 특별시기라고 부릅니다. 당시 우리는 소련과 마찬가지로 대규모협농농장식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기름과 화학비료는 충분했고 농약도 풍족했습니다. 당시 쿠바는 경작면적비율로 세계에서 트랙터가 제일 많은 나라로 불릴 만큼 앞선 대규모 과학영농에 의한 식량생산 국가였죠.”

▲ 아바나시 농업부에서 만난 모링냐씨가 쿠바 유기농업의 현황을 설명하는 모습
아바나시 농업부 전략비축물자협회장 모링냐(59)씨는 국가비상사태 선포 당시 쿠바의 농업을 회상하며 고개를 저었다. 미국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는 카스트로 정권 초기부터 일관된 정책이었지만 소련의 붕괴 후(소련붕괴 이전까지 미국은 자국 국민들에게 대 쿠바 경제봉쇄의 이유를 소련의 전진기지인 쿠바의 위협으로 설명했지만, 소련이 사라져 버리자 쿠바의 인권탄압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극단적으로 강화된 봉쇄는 쿠바에게 재앙으로 다가 온 것이다.

“다른 분야보다 농업생산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대량으로 사육하던 소, 양 들이 손써 볼 틈도 없이 굶어죽기 시작했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공급받지 못한 농민들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시민들, 공무원들, 농민들 할 것 없이 거의 굶고 살았습니다.”

당시 국내에도 자주 소개됐던 외신을 살펴보면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탈출하는 보트피플에 대한 기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살기위해 쿠바를 떠나야했다. 봉쇄의 주인공 미국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불과 18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웃’에 있었고 카스트로 정권은 탈출하는 난민들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특별시기를 정확히 기억한다는 한 쿠바인의 말을 들어보자.

“특별시기가 닥치자 국가도 그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카스트로가 이때 말레꼰 해안에서 직접 확성기를 들고 ‘떠날 자는 쿠바를 떠나라’고 했던 사실은 유명합니다.”

◆유일한 선택은 시스템의 ‘대전환’
경작면적 당 최다 트랙터 보유국이었던 쿠바의 그 많은 농기계들은 일순간 고철덩어리가 돼 버렸다. 트랙터를 돌릴 기름 따위는 구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버스가 멈췄고 중국에서 긴급하게 수입한 자전거 100만대가 시민의 발이 되었다.

▲ 시내 곳곳에 설치된 식량 배급소. 주민들은 이곳에서 쌀, 감자, 육류 등 기본적인 식량을 배급받는다.
농약도, 비료도, 사료도 한 순간에 사라진 사회가 식량을 얻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유기농업’이었다. 아바나시 농업부 모링야씨다.

“쿠바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이 특별시기는 아닙니다. 특별시기에 국가전체로 확산된 것이죠. 1987년부터 정부는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유기농업을 연구해 왔습니다. 일반농가가 아닌 군부대농장에서 시작된 유기농업 연구는 92년부터 수확이 가장 빠른 채소를 중심으로 각 농장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특별시기 이전 쿠바인의 주식은 다른 서구인들과 마찬가지로 육류와 쌀, 감자 중심의 식단이었다. 그들은 채소를 즐기지 않았고, 먹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식생활은 변해야 했다.

90년대 초반 닥친 ‘식량재앙’은 정권의 몰락과 엄청난 아사사태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쿠바에게 ‘도전’으로 덮쳐 왔지만 쿠바의 ‘응전’은 유기농업을 무기로 인류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1992년 미국 스텐포드대학의 연구팀은 쿠바의 이러한 움직임을 ‘인류역사 최대의 실험’이라며 주목했고 쿠바는 97년부터 농업생산량의 증가를 기록, 2005년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유기농대국으로 성장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쿠바가 완전한 식량자급을 달성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쿠바 제일의 관광 명소인 말레꼰 해변. 한때 식량을 찾아 수많은 쿠바인들이 조국을 등졌던 이곳을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현재 쿠바는 주식으로 소비하는 쌀의 경우 소비량의 2∼30%를 중국과 베트남을 통해 수입하고 있으며 콩, 팥, 해바라기 기름 등 일부 품목 역시 국내생산으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일정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작물이 유기농업으로 제배되는 것은 아니다. 쿠바의 주산물인 사탕수수와 수요가 상당한 감자의 경우 유기농이 아닌 화학비료로 생산되는 비율도 상당하다는 것이 농업부 관계자의 말이다.

아바나시 농업부 관계자는 “일부 사탕수수농장과 감자농장에서는 아직 화학비료가 투입되고 있다”며 “감자의 경우 고랭지 재배가 필수적이지만 쿠바의 지형 상 그것은 불가능하고 사탕수수역시 유기농연구를 상당 수준 진척시켰지만 아직 완전한 유기농정착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의 식량위기를 유기농업으로 극복한 쿠바인들의 얼굴에는 경제봉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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