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친환경농업 메카를 꿈꾸는 '곡성'의 도전
[기획] 친환경농업 메카를 꿈꾸는 '곡성'의 도전
생명의 시대, 우리는 친환경으로 간다 (3) … 친환경농엽, 자치단체의 경쟁력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10.14 00:00
  • 호수 7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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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산물정보시스템(www.enviagro.go.kr)이라는 제목의 홈페이지가 있다. 농수산물품질관리원이 운영하는 이 홈페이지에서 사용자는 원하는 지역만 입력하면 그 지역에서 친환경인증을 획득한 농가를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다. 

이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전남 곡성을 검색해 보자. 결과는 의외다. 친환경농업마을 문당리로 유명한 홍성군의 경우 유기농인증(친환경농업의 최고단계)농가 현황만 40페이지를 넘어가는데 곡성은 의외로 단 한 농가만이 전환기유기인증을 획득한 것으로 표시 될 뿐이다. 

우리지역이 유기농인증 1농가에 전환기유기인증을 획득한 농가가 6농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연 우리가 곡성에서 배울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사람의 유기인증농가도 배출하지 못한, 그러면서도 당당히 환경농업 1번지를 자신하는 전남 곡성, 그 내막은 무엇일까? 산골짜기 마을 곡성군의 사례를 통해 자치단체가 가져야 할 친환경마인드를 조명한다.

[기획취재] 글싣는 순서

1회:친환경만이 대안이다
2회:옥천의 친환경농업, 그 실태와 문제점
▶3회:친환경농엽, 자치단체의 경쟁력
4회:대한민국 유기농 1번지, 문당리의 교훈
5회:지역순환형 농업운동, 아산 생산자공동체
6회:유기농 혁명, 나라를 살리다(쿠바현지르포-1)
7회:행복한 농사, 건강한 사람들(쿠바현지르포-2)
8회:‘유기농 옥천, 어떻게 가꿀 것인가?’
◆곡성군에는 농정과가 없다?
곡성(谷城). 군 전체 면적의 73%를 임야가 차지하고 있는 지명 그대로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1만3천850가구 3만4천396명의 주민이 거주(2005년 5월 기준)하는 소규모 농촌자치단체, 곡성은 옥천에서 두 시간 반쯤 떨어져 있다.

남원을 지나 곡성에 도착했고 군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옥천군청의 절반이나 될까?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청사. 가장먼저 농정과를 들러보기로 했다. 1층 지역진흥과, 2층 군수실. 현관로비에 걸려있는 청사안내를 아무리 읽어봐도 ‘농정과’ 세 글자를 발견할 수 없다.  “농정과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난감해진 기자는 옆에 서있는 공무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군에는 농정과가 없습니다. 농업기술센터로 가셔야죠.”

▲ 전남 곡성군 친환경농업의 산실인 곡성군 농업기술센터 환경농업과. 환경농업과에서는 16명의 행정직 및 농업직직원들이 친환경농업지원을 위한 업무를 원스톱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곡성군청에서 농정과가 없어진 것은 지난해 9월의 일이다. 농림과와 농업기술센터를 통합, 농정효율의 극대화를 꾀한 것이다. 현재 곡성군의 농업정책을 총괄하는 부서는 농업기술센터내의 환경농업과다. 김종현 환경농업과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기존의 농정과를 중심으로 한 행정기능과 농업기술센터의 기능지원의 이분화는 행정의 효율에 있어 문제가 많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현재는 통합된 환경농업과에서 농림직 공무원들과 농업지도사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원-스톱 서비스의 개념으로 농업인들의 민원과 친환경지원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환경농업과의 인력은 과장을 포함해 총 16명, 환경농업과를 중심으로 농업정책과 등 지원부서가 환경농업과의 업무에 힘을 싣고 있다.

◆“친환경으로 결심만 해 주십시오.”
곡성군은 2005년을 친환경농업 생명식품생산 5개년 계획의 원년으로 책정하고 실질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그 구체적인 예로 전체농업예산의 43%에 이르는 79억5천200만원을 순수 친환경농업분야 지원예산으로 책정해 친환경 농가를 지원키로 했다. 다시 김종현 환경농업 과장의 말이다. 

“일단 선도 농가를 중심으로 친환경자재에 대한 검증작업을 오랫동안 진행해 왔습니다. 벼농사만 보더라도 우렁이, 쌀겨, 오리, 참게 등 다양한 농법들이 있고 이 가운데서 곡성의 토양에 가장 적합한 농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특정지역을 제외하고는 우렁이의 효과가 크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농가에게 필요한 것은 결심이었다. 농가가 의지를 가져 준다면 기존의 화학농법에 드는 비용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친환경농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었다. 

“농가가 분명한 의지만 자치단체에 전해주시면 벼농사의 경우 환경농업으로 전환에 필요한 친환경자재를 포함한 비용의 100%, 고소득 작목의 경우는 80%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농약에 의존하는 화학농법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농가가 없다는 것, 농민이 붕괴하는 농촌자치단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곡성의 선택이었다.

▲ 폐도 및 폐선활용의 우수사례로 꼽히는 곡성 기차마을의 풍경. 기차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늘 끊이지 않는다.
◆자운영단지, 객토를 통한 흙 살리기도
곡성의 이러한 친환경농업제일주의는 단지 예산이라는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곡성은 임야가 많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경관이 좋은 구역을 중심으로 녹비작물 자운영을 대규모로 파종했다. 

2천642ha의 면적에 걸친 자운영단지는 화학비료의 의존을 끊는 기능 외에도 꿀벌의 밀원제공은 물론 개화기를 맞춰 도시소비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올해 자운영의 파종면적은 4천700ha. 감히 다른 자치단체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전국최고의 수준이다. 

병든 흙이 좋은 농산물을 키울 수 없는 법. 곡성군은 토양에 대한 정밀진단을 마쳤고 문제가 심각한 40여 ha의 토지에 대한 객토작업에 조만간 착수할 예정이라고. 곡성군 환경농업과장과 담당공무원들의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이런 자치단체의 막대한 투자로 인해 생산될 친환경농산물의 판로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자치단체의 미래를 환경농업에 거는 정책은 판로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는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농업의 승부처, ‘곡성군청 서울사무소’
친환경농업을 위한 소규모 자치단체의 막대한 예산집중, 이에 따른 지역 농가의 급속한 친환경전환은 당장 닥쳐올 수확기의 판로확보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 자치단체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옥천의 경우처럼 대도시를 10여분 거리에 두고 있는 천혜의 조건과는 ‘완전히’거리가 먼 곡성군. 더구나 곡성을 둘러싼 모든 자치단체가 ‘친환경’과 ‘소비자유캄를 외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주자 곡성의 고민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엄청난 숙제를 마주한 곡성의 대안은 무엇일까? 고현석(62) 곡성군수에게 직접 들어보자. 

“서울 관악구 봉천동은 곡성 재경향우회 회장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봉천동을 실질적인 서울지역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곡성군청서울사무소를 설치하고 공무원을 상주시켰습니다.” 

곡성군은 53만 인구의 관악구를 겨냥하고 있었다. 친환경도매상을 통한 일반적인 판로 외에 공무원을 서울사무소에 상주시켜 대규모 아파트단지 부녀회를 비롯한 실질적 소비자집단을 목표로 끊임없는 판촉활동과 지역농산물 소개를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는 것. 

“의미 없는 일회성 홍보이벤트는 안합니다. 사주길 기다리면서 판로를 기대할 수 없어요. 직접 소비자를 찾아가 몇 번이고 설득하고 충분히 곡성의 농산물을 먹어보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해 신뢰를 쌓지 않고는 판로가 안나와요.” 

마찬가지 취지로 곡성인근 88고속도로 휴게소에는 100% 곡성농산물로 꾸려진 곡성농산물직판장이 군 직영으로 운영되며 소비자들을 찾고 있다. 곡성의 환경농업 1번지를 위한 노력들은 지금까지 소개한 것 들 외에도 다양했다. 우리 옥천의 환경적 요소들과 비교할 때 어느 하나 유리할 것이 없어 보이는 곡성.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자원을 남김없이 환경농업 메카 ‘곡성’을 위해 활용하고 있었다. 

"곡성으로 오세요" - 고현석 곡성군수

▲ 고현석 군수는 43년생으로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농업중앙회 조사부장을 거쳐 98년 민선2기로 곡성군수에 당선됐다.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김화중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와의 사이에 네딸을 두고 있다.
고현석 곡성군수는 기자가 들고 있는 신문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건강한 지역신문이야 말로 자치단체 경쟁력의 큰 축이라는 격려와 함께 신문을 꼼꼼히 넘겨본 군수는 지철규 박사와 이종학 옹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안부를 물었다. 

“주민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곡성에서 펼치고 싶었습니다. 대안에너지 정책도 물론이고요. 하지만 그것은 최종적으로 우리 군민들이 완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군수가 튀어서 끌고 가버리면 당장은 몰라도 결국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요.” 

고 군수의 이 말 속에는 곡성을 방문하기에 앞서 가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도 들어 있다. 고 군수는 민선2기 단체장으로 선출된 98년, 당시 자치단체장으로는 드물게 친환경농업에 막대한 행정력을 쏟아 붇는다. 

“군수에 당선되던 해 김성훈 장관이 이끌던 농림부가 친환경농업의 원년을 선포했습니다. 같은 해 곡성군 환경농업 보급 확산을 위해 친환경농업 태스크포스팀을 구축해가며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결과는 이제 나오기 시작하네요.” 98년 당시 공직사회와 곡성의 농업현장은 그의 의지를 뒷받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치단체 정책의 성패는 결국 정책에 대한 공무원조직의 이해와 군민의 공감대에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올해부터 친환경경작면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놀라고 있으니까요. 제가 지난 시간동안 친환경농업보급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위안도 드는 한편으로 농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도 공감하게 됩니다.”

고 군수가 친환경농업과 함께, 아니 농업분야보다 더 공을 들이는 분야가 있다. 바로 농촌교육이다. 

“군 교육청은 말할 것도 없고, 도교육청 역시 현재의 농촌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미 이 문제는 국가적인 문제로 거대해 졌는데 자치조직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더 좋은 교육서비스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을 구경만 하는 자치단체에 남은 일은 ‘폐업’밖에 없다는 것을 군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교육부와 담판을 벌였고, 농촌교육 경쟁력강화의 실험을 위한 중앙정부예산 600억원을 끌어와 곡성관내 초·중·고등학교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로 대도시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실내수영장이 시골학교에 지어 지는가 하면 최고의 실력을 갖춘 교사들이 곡성군에 정착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교육청과는 무관하게 자치단체가 국가에 사업을 제안해 얻어 낸 결과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가진 학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 하는 자치단체, 곡성으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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