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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을탐방 [172] 이원면 평계리(2) 평촌 - 셋집뫼·도래말·성적골·새터
신마을탐방 [172] 이원면 평계리(2) 평촌 - 셋집뫼·도래말·성적골·새터
  • 황민호 기자
  • 승인 2005.07.22 00:00
  • 호수 7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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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성이 감싼 포근한 평촌마을
▲ 평계리의 한가로운 오후. 혼자사는 김점례(가운데) 할머니의 집에 이웃 할머니들이 놀러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원면 평계리, 영동과 바로 인접해 있는 옥천의 남쪽의 맨 끄트머리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참 얽힌 이야기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150여 가구 12개의 자연마을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2개의 자연마을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몇 가지 마을 명칭은 사람들마다 각기 달랐다. 그래도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 발췌한 마을을 분석해 보면 이렇다. 평계리는 크게 평촌과 계촌으로 나뉜다. 평촌은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큰 중심 마을이다. 산 아래로 포근하게 옹기종기 스며들어 있는 마을이 바로 평촌이다.

평촌에는 좌측부터 대밭말(11가구)과 셋집뫼(2가구), 도래말(6가구) 성적골(30가구), 새터(3가구) 마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각기 독립된 자연마을이 아니라 얼키설키 가깝게 붙어있다. 큰 공간의 지형 상 나누면서 부르기 쉽게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계촌은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의 통칭이다. 계촌에도 다섯 개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계촌의 5개의 마을 중 상골과 양짓말은 이미 마을이 사라졌고, 현재 남아있는 마을은 공촌(15가구), 꺼깟말(5가구), 살구정이(4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그럼, 모두 합해 10개 마을 밖에 되지 않는데 왜 12개 마을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수묵리의 두 개 자연마을 수영골과 먹뱅이를 포함시켜 12개 마을이라고 했단다. 그 옛날에는 수묵리와 평계리를 같이 일컬어 ‘시실’이라고 했단다.

왜 ‘시실’이라고 했는지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고령의 노인들은 아직 평계리라는 말보다는 ‘시실’이라는 말에 더 친근감이 가고 잘 알아듣는단다. ‘시실’에 살던 사람들은 큰 전란이 일어났을 때도 한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지내 복받은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여러 정황으로 추측해볼 때, 바로 ‘시실’이란 마을 명칭은 시대와 무관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아기자기한 보금자리를 꾸려가는 평계리와 수묵리를 보면서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란 명칭에서 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시실의 마을명칭 유래와 시실 12개 마을을 어디인가는 아직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평계리의 큰 두 축, 평촌과 계촌
평촌과 계촌은 각기 독립된 큰 마을로서 옛날에는 이장도 서로 달랐단다. 지금 계속 유지되고 있는 계도 평촌계와 계촌계가 따로 있다. 지금은 그 풍습이 사라졌지만, 정월대보름 산제를 지낼 때도 그 날짜를 달리 하였으며 모시는 산제와 내려와서 돌장승에게 지내는 제사도 달랐다.

일반적으로 선돌이라 칭하는 돌장승은 평촌에는 마을 입구 큰 버드나무 주변에 두 개가 있었으나 도로 확포장 공사로 인해 모두 없어졌고, 계촌에는 아직 두 개의 돌장승이 남아 있다. 평촌과 계촌은 지리적인 위치도 틀릴뿐더러 명칭상 한 마을이지 왕래가 잦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 6년 전부터 마을의 단합을 위해 평촌과 계촌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상조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쓸쓸한 빈집, 허름한 마을회관
평계리에는 유독 빈집이 많았다. 그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빈집이 있는가 하면, 대나무 숲에 쌓여, 나무에 가려 집터인 지도 분간 못할 정도로 쇠락한 집도 여럿 있었다. 마을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참 쓸쓸한 동네지!’라는 말들은 다 이러한 연유에서 나온 것이었다.

농촌 여느 마을이 다 그렇겠지만, 평계리의 빈집은 그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허름한 마을회관도 마을 사람들의 기를 꺾어놓는 하나였다. 10여 년 전에 지었지만, 마을회관은 이미 삭을 대로 삭아있었다. 문을 열자, 곰팡이가 여기저기서 핀 흔적들이 그대로 관찰됐으며, 눅눅한 기운이 맴돌았다.

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마을회관 출입이 어렵다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을회관 재건립은 평계리의 시급한 숙원사업이다. 그것은 모든 마을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다.

공창식 이장은 “마을회관이 변변치 못해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라며 “행정기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남아있는 시골인심
무턱대고 찾아간 마을이었고, 낯선 손님이었지만, 두 팔을 벌려 오랜만에 만난 손주처럼 반겨준다. 동태찌개를 끓여 나눠먹던 할머니들, 김점례(83) 할머니네 집에 모인 김점례(77·동명이인), 임옹년(76)씨가 모여 반갑게 맞아준다.

구수한 농담으로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고, 주름진 손으로 점심식사를 건네는 그 마음에는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다. 흙과 같이 살아온 수십 년간의 녹록치 않은 세월을 견디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병든 몸만 남아있는 쓸쓸함 속에서도, 할머니들은 그 포근함은 잃지 않으셨다. 얼큰한 동태찌개와 막걸리로 막사발을 돌린다.

김점례(83)씨의 집안에는 누렇게 뜬 도배지 위로 아들, 손주와 같이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할머니들 한마디씩 거든다.

“이 할머니 집의 도배, 장판 좀 새로 해달라고 좀 전해줘요. 어렵게 사는 노인양반인데, 봉사하는 사람들 보고, 그런 것 좀 해달라고 부탁좀 해요. 요새 그런 것 많이 하데?”

덩그러니 혼자 사는 집에서 있는 설움을 할머니들은 그렇게 나눠지고 있었다. 그것은 또 우리가 나눠져야 할 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집뫼는 이제 두 집만
이름도 기막히다. 셋집이 산다고 해서 셋집뫼라고 했단다. 하지만, 이 이름도 이제 고쳐야 할 듯 싶다. 한 집이 부산으로 이사를 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셋집뫼에는 이제 김종만(73)씨와 현정용(63)씨네 만 거주한다.

김종만씨네는 오래된 집을 허물고 아들네의 도움으로 새 집을 지었다. 하지만, 김종만씨가 50년 전부터 숨이 가쁘고 잦은 병치레가 많아 동이면 평산리서 시집 온 이교분(73)씨는 맘고생이 참 심했다.

지금 이교분씨의 바람은 남편이 빨리 낫는 것과 새로 지은 집과 큰 길 사이에 놓여있는 논둑 포장이다. 이래저래 집안에 무얼 들어놓으려면 뺑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힘들단다. 옆집에 사는 현정용씨는 20살이 되기 전에 조실부모하고,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서 형제들을 키웠다.

무거운 지게질 때문인지 얼마 전에는 허리에 이상이 생겨 인조뼈를 박았고, 몸도 불편한 상태이다. 사연 많은 셋집뫼 사람들,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고생담을 쓰라면 트럭으로 몇 트럭은 된다며 어려웠던 옛날을 다시 떠올렸다.

◆돌아가는 도래말
도래말은 셋집뫼에서 마을 어귀를 돌아가면 도래말이 나온다. 도래말 두 번째 집인 육종철(57)씨를 만났다. 그가 평계리 마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마을회관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인다. 재건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당뇨를 앓고 있어 몸도 성치못한 육종철씨는 다시 마을 공동체가 복원되길 강하게 희망했다. 조금 걷다보니 유공자의 집이란 팻말이 붙은 집이 있다. 김석환(78)씨 집이다.

2사단 17연대 보병을 6·25에 참전해 19살 백마고지 전투에서 포탄을 맞아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젊은 나이에 다리를 잃고 살아온 사연이야 어찌 많지 않겠는가? 그는 그 사연을 접어두고 이원의 대표적인 묘목상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아들 김철기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꼬댕가리(작은 막대기, 곧 묘목) 장사를 한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운가 보다.

◆‘왕재는 청와대보다 더 좋다!’
마니산 올라가는 초입 작은 언덕에 위치한 아담한 집을 찾아갔다. ‘왕재’라 불리는 곳이다. 거칠면서도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임옹년(76)씨의 집이다. 더운 여름에도 바람 솔솔 불고, 전망도 좋은 우리 집이 청와대보다 더 좋다고 할머니가 자랑을 한다. 이 집에서 7남매를 키워냈단다.

평계리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딸 육영애씨와 자주 들러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동네에도 꾸준히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아들 육종덕씨가 할머니의 자신감이었다.

아들, 딸들이 아무리 도시로 나오라고 해도 여기 청와대 남부럽지 않은 왕재의 대저택(?)이 좋다고 할머니는 거듭 말을 했다.

◆대성초 총동문회에서
지난 16일 열린 대성초 총동문회, 평계리 출신 14기 조성기, 18기 공창식씨, 22기 육종덕씨가 만났다. 만나자 마자 마을 이야기다. 육종덕씨가 제안을 한다.

“형님! 우리 옛날에는 명절마다 크게 노래자랑하고, 걸판지게 놀지 않았소. 우리도 이번에는 옛날처럼 한 번 멋지게 해보자구요.”

공이장과 조성기씨가 맞장구를 친다.

“그래, 옛날에는 참 멋지게 놀았는데 말야. 이번에 한번 해보자.”

그들이 그린 평계리의 옛날 풍경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사람들이 북적였고, 그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만든 재미있는 공동체 놀이문화가 있었다. 그 옛날 평계리의 모습이 지금은 다 어디 갔을까? 쓸쓸함이 묻어난다는 평계리는 그 옛날 과거를 눈물나게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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