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71] 이원면 평계리(1) 대밭말
신마을탐방 [171] 이원면 평계리(1) 대밭말
11가구 26명이 옹기종기 `대밭말'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5.07.15 00:00
  • 호수 7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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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밭말의 미래. 학교를 파한 지연이(가운데)와 철수(오른쪽)가 논둑을 걸어왔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네살박이 근역이가 마중을 나온다. 셋은 그렇게 만났다.

‘마을 참 쓸쓸하죠!’ 청년들은 떠나고 빈 집이 무성한 마을을 두고 한 말들이다. 마을 곳곳에 북적이던 그 옛 풍경은 어디가고, 거미줄만 가득한 빈 집만이 덩그러니 있다. 조용한, 너무도 조용한 그 마을, 이원면 평계리(이장 공창식)에도 화려한 과거는 있었다. 마니산 산자락에 자리 잡은 평계리는 그야말로 신선들이 사는 곳인양 탁 트인 경관 때문에 찬사를 듣곤 했던 마을이었다.

군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 마니산 하나를 사이로 영동군 심천면 마곡리와 경계해 있고, 지방도를 따라 양산면 누교리와 맞닿아 있는 마을, 한 때 140여 가구가 살 정도로 번성했었고, 그 때 형성된 자연 마을만 해도 12개 마을이었던 곳, 평계리를 찾았다. 지금은 절반이 뚝 잘려 70여 가구에 지나지 않지만, 마을을 아끼는 마음이야 예전 못지않다.

땅 좋고 물 좋아 평계리 땅은 2배로 가격을 쳐줬다는 그 자부심과 인심 하나는 끝내준다는 그 마음이 여전했다. 평계리의 많은 자연마을을 차례차례 순례하기로 했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그 마을들, 대밭말, 셋집뫼, 도래말, 성적골, 왕재, 군둣말재, 새터, 숯골, 공촌, 양지말, 꺼깟말, 살구정이까지 12마을과 최근 이사와 사람이 사는 다랑개까지 13개 마을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다. 첫 순례지는 대밭말이다.

   
▲ 고향에 찾아온 여심. 공영자씨는 가족들을 이끌고 친정어머니 정대창씨가 사는 대밭말로 나들이를 왔다. 엄마가 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옹기종기
대밭말은 평계리로 들어가자마자, 왼쪽 길로 가야 나온다. 무턱대고 오른 쪽 길로 갔다가는 성적골로 해서 뺑 돌아오기 십상이다.   왼쪽 좁은 길로 도랑을 따라 가보면 집들이 세로로 쭉 늘어서 있다. 마을 맨 초입 황희숙(61)씨의 집부터 맨 끝집 마루산가든 정덕현씨 네 집까지 마을은 길쭉하게 형성돼 있다.

길게 형성된 마을 뒤를 예전에는 대나무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을 이름도 대밭말이다. 지금은 대나무가 거의 베어져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일부 남아있는 대나무의 흔적은 옛날 마을 풍경을 상상하는 단초가 된다.

대밭말에는 모두 11가구 26명이 산다. 마을 규모로 보자면 제일 큰 마을인 성적골(일명 큰동네)과 두 번째 큰 마을인 공촌, 다음으로 세 번째이다. 하지만, 대밭말은 빈 집이 두 채 밖에 되지 않고, 예전 가구 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편이며 연령대로 볼 때도 초고령화된 농촌 여느 마을보다 정상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제일 나이 어린 길연이(3살)와 근역이(4살)부터 제일 나이가 많은 박연심(90)씨까지 초등학생(청수, 지수, 지연이)과 중학생(영관)까지 학생도 많을뿐더러 20대 육근미(이원면 공무원)씨와 40대 육기수씨와 조남일씨(반장), 50대 육학수씨, 60대 강원구씨, 황희숙씨, 서정섭씨, 70대 정대창씨, 80대 차임선씨, 90대 박연심씨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다.

혼자 사는 독거노인은 3명, 정대창씨와 황희숙씨, 차임선씨가 혼자 살지만, 다들 마을 사람들과 같이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관성환경에서 일하는 육길성씨와 이원면 소재지 내 공장에서 일하는 육기수씨, 마루산가든을 운영하는 정덕현씨, 이원 평화교회 장로를 맡고 있는 서정섭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포도농사와 묘목농사, 나락농사를 짓고 있다.

대밭말을 산책하며
강원구(61)씨네 집을 먼저 들렀다. 묘목농사만 2천여 평을 짓는 강원구씨는 오래전부터 평계리 대밭말에 산 토박이이다. 80년대 이장을 지낸 강씨는 옛날 산제 지내던 이야기부터 마을 입구 쌍둥이 버드나무 중 도로 확포장으로 인해 한 그루를 베었던 일 등 착한 대밭말 사람들의 얘기를 해 준다. 

공촌에서 이사왔다는 정대창(70, 여)씨네 집에는 휴일을 맞아 마침 딸네가족이 왔다. 딸 공영자(41)씨는 오래간만에 온 집을 둘러보고 회상에 젖는다.  발걸음을 육학수(55)씨네 집으로 옮겼다. 고향 동갑나기 부인과 결혼한 육학수씨는 포도농사(1천평), 복숭아농사(1천평), 벼농사(3천평)을 지으며 살고 있는 건실한 농부이다. 

경찰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대성초 2학년 때 부산으로 내려간  그는 고향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 농사를 지었고 93년에는 마을 이장을 보기도 했다. 지금은 2남1녀 중 이원면 공무원인 딸 육근미씨와 함께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육씨는 도시에 가지 않고 고향에 다시 내려와 착실하게 일을 하는 딸에게 고마울 뿐이다.  평계리 인심은 끼니때를 넘어서 들린 나그네에게도 사려가 참 깊다. 따뜻한 환대를 하며 내어 온 따끈한 팥죽과 인심만큼 두둑히 쌓인 고봉밥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바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 윗집에서 차임선(84)씨가 백발을 휘날리며 집을 나선다.  마실간다는 차임선씨는, 마침 우중 산책을 하고 있는 박연심(90)씨와 그의 며느리 김옥란(66)씨와 꼬맹이 근역(4살)이와 만난다.

휘날리는 비를 피해서 대문 처마에 서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마을 반장인 조남일(48)씨는 비바람에 넘어진 고추 지주대를 다시 세우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흙 범벅이 된 맨 발로 모시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자식같은 고추모를 보살핀다.

그런 조남일씨에게도 아픔이 있다. 바로 뇌수막염을 앓고 있는 세 살 박이 아들 길연이다. 고생 끝에 낳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뇌수막염을 앓아 많이 아팠던 길연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휑하다.  그의 일상에는 지난해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랠 겨를조차 없다. 

어머니가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길연이를 봐줄 수도 없게 되자, 그는 군내 무궁화어린이집에 맡겨 주말마다 길연이를 보고 있다. 길연이의 누나인 지현(대성초3)이는 그래서 간호원이 되고 싶다. 간호원이 되어 동생 길연이를 낳게 하고, 아픈 할머니의 병도 고쳐주고 싶은 것이 지현이의 마음이었다.

대말의 제일 끝집 마루산가든에 다다르자, 정덕현씨가 막 떠나려 한다.  이미 옥천여중 재학시절 도내 대표적인 투포환 선수로 이름을 떨친 딸 진영(충북체고2)이를 배웅하러 가는 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걱정이다. 왜냐면 딸이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아직 정상적인 운동 활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딸의 어깨를 감싼 아버지의 손은 믿음으로 가득하다.

대밭말의 이름난 명물 - 황희숙, 박연심씨

   
▲ 황희숙씨

대밭말에는 이름 난 두 명물이 있다. 그 사람하면 마을 사람 입에 회자될 정도로 독특한 사람들이다. 먼저 황희숙(61)씨다. 황희숙씨는 좀처럼 마을에서 보기가 어렵다. 그의 성실함은 마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밭, 저 밭을 종횡 무진하여, 같은 마을 사람들도 황씨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강원구씨는 황씨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얼굴도 여간해서 못 봐! 완전히 올빼미지. 밤낮없이 논매고 밭 매는 사람이야, 대밭말 명물이지”
  40 되기 전에 남편을 잃고 혼자 됐지만 4남매를 성실하게 키워낸 황씨의 ‘휴먼다큐’는 마을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그이 젊었을 때 대전역에 가서 생선을 뗘와 이원면에서 내려서 마을마다 들리면서 생선을 팔고 평계리까지 왔지. 참 대단했어. 그 무거운 생선들을 머리에 이고 하루 왠 종일 생선을 팔고 밤늦게 되어서야 도착했어요. 그러니까 4남매 대학 다 보내고, 좋은 집까지 사주면서 살게 하죠. 그런데 본인은 돈을 하나도 안 써요. 아들네가 와서 허름한 집 고쳐준다고 무릎 꿇고 빌기까지 했는데, 엄한데 돈 쓴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지 뭡니까”

얼굴보기 어렵다는 그녀를 만나러 몇 번이고 기다리다 못 찾고 13일에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다 스러져가는 허름한 흙집에서 그녀의 일상을 읽어낼 수 있었다. 

   
▲ 박연심씨

또, 한 명의 명물은 바로 평계리 최고령자인 박연심(90)씨이다. 요새 드물게 4대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안이기도 하다. 박연심 할머니의 장기는 바로 산책과 기억력이다. 틈만 나면 마을 산책을 나선다. 마을 입구부터 맨 끝자락까지 몇 번이고 왕복을 하면서 멈추고 서기를 반복하며 하루 일과를 보낸다.

“나 집에서 가만있으면 심심해서 죽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려” 비오는 날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천천히 마을 산책을 한다.  이런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소중한 이야깃 동무이다. 세상사는 이야기 물어보면서 남의 집 제삿날까지 또박또박 기억하는 할머니는 마을에서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주름살 만큼 쌓인 세월이지만 세상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만큼은 막지 못한 듯 했다.  대밭말에서 아주 느릿하게, 또 우아하게 산책을 하는 백발이 성성한 박연심씨를 만난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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