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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을탐방 [165] 안남면 도덕1리 서당골
신마을탐방 [165] 안남면 도덕1리 서당골
  • 백정현 기자
  • 승인 2005.05.27 00:00
  • 호수 7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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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 선돌이 지켜주는 서당골
▲ 노인의 봄은 고단하기만 하다. 이기순씨가 모내기를 앞둔 논에 혼자 비료를 뿌리고 있다.

옥천읍에서 37호선 국도를 타고 안남으로 들어가는 길 대신 동이 쪽으로 길을 잡는다. 동이에서 볼 일이 있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금강이 보고 싶어서다. 포장이 안된 길을 작은 차로 한참 지나야 하는 불편은 따르지만 금요일 오전 보석처럼 쏟아지는 햇살과 어우러진 금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 불편이야 기꺼이 감수할 만 하다.

청마리를 지나고 가덕을 지나 안남에 가까워지는 동안 강가에 보이는 강태공들의 모습은 끊이지 않는다. 여울의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낚시대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오래전 보았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중에 나오는 플라잉 낚시라도 하는 듯 하다.

차를 멈추고 기자의 일상에서 강태공의 일상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무슨 고기를 얼마나 잡았는지, 낚시대를 던지는 요령은 어떤 것인지….오늘 같은 평일 오전 금강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들 곁을 지난 것만으로 만족하자. 비포장도로가 거의 끝나나 싶더니 벌써 안남 수동이다. 지수리를 지나 연주리를 향하는 중간쯤 ‘서당골’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마을비석을 만났다. 거대한 팽나무와 버스정류장, 그리고 길게 뻗은 마을 진입로가 서당골의 첫 인상이다. 팽나무 언저리에 차를 멈추고 걷기 시작한다.

■암·수 선돌이 지키고 있다
팽나무의 넉넉한 그늘이 벌써 시원한 것이 여름이 가까워 오나보다. 정오를 넘어가는 태양이 만만치 않게 뜨겁지만 2백년이상 그늘을 거느려온 팽나무 아래 있으니 올해도 이 그늘은 늘 그랬던 것처럼 더위에 제 몫을 단단히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팽나무 옆 정자에 앉아 지나가는 서당골 사람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모내기철 이다보니 지나다니는 이들을 찾기가 힘들다. 정자에 앉아 물끄러미 눈앞에 펼쳐진 서당골의 뜰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평범한 돌인데 새끼를 두른 모습이 심상치 않다. 

‘도덕리 서당골 2호 선돌, 정북향, 사모관대를 쓰고 있는 모습….’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작은 안내판도 서있다. 이 선돌의 성별이 남성이라는 내용도 친절히 기록돼 있다. 2호가 있으면, 아니 남성이 있으면 여성 선돌이 없을 리 없다. 찾을 것도 없이 바로 뒤 작은 언덕에 새끼가 둘러진 돌이 있다. 남성 선돌 바로 맞은편이다. ‘서당골 1호 선돌, 길이 147, 폭 90, 두께 30센티…. 성별 ♀, 판자꼴, 매년 마을에서 동제를 지냄….’

마치 한 쌍의 장승처럼 나란히는 아니지만 마주보고 선돌이 서 있었다. 특히 1호 선돌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1호 선돌에 나 있는 구멍 때문이다. 3분의1 지점마다 구멍이 하나 씩 뚫려 있는데 제일 위에 난 구멍은 이 돌이 왜 여성을 부여받았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여성의 성기모양을 본 딴 구멍이 돌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2호 선돌의 윗부분, 즉 안내판에 적힌 사모관대를 쓰고 있다는 그 모습도 어쩌면 남성의 상징을 달리 표현한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조선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오늘날에도 누가 마을 입구에 남성과 여성의 심볼을 본뜬 조형물을 설치하고자 한다면 아마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비난을 떠나더라도 서당골의 선돌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왜 돌에 구멍을 뚫어가며 성의 상징을 부여하고 음양을 갖춰두려고 했을까. 그것도 마을 입구에 이런 상징물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낸 이유가 무엇일까? 다산을 기원하고 풍요를 기원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왜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희망하는 오늘날에는 그 과거의 상징들이 낯부끄럽게 느껴지는 걸까? 우리는 도대체 우리민족의 원형(原型)에서 얼마나 이탈한 것일까? 

서당골 입구에서 만난 두 개의 선돌이 잠깐 동안 수많은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린다. 여기에 선돌을 세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에게 성(性)은 무엇이었을까?

■혼자 농사짓는 할머니들
선돌을 뒤로하고 마을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곧 진입로 확·포장 공사가 있을 모양이다. 농지에도 빨간 깃발이 쭉 꽂혀있다. 서당골은 아래서당, 윗서당으로 나뉜다. 아래서당이 마을 입구 쪽이고 윗서당에 마을회관이 있다. 

윗마을 아랫마을을 나누는 길이 지수리쪽으로는 덕실이(도덕2리)로 넘고 연주리 쪽으로는 도근리로 향한다. 덕실이 쪽에서 마을로 넘어오시는 할머니가 한 분 보인다. 정복예(68) 할머니, 덕실이 마을에 있는 논에 물을 대고 오는 길이다. 

“꾸부라진 늙은이 사진은 머할라고 찍어!” 괭이를 지팡이 삼아 가파른 비탈길에 의지하고 내려오신다.  “혼자 하지 누구랑 같이 햐? 그나저나 어제 어질어질해서 병원을 다녀왔더니 오늘 많이 대근하네.”

정 할머니는 8년 전부터 혼자 농사를 짓고 있다. 어차피 흙에서 나오는 돈이라야 뻔한 것이니 이것을 들여 일손을 살 형편은 더더욱 못된다. 땅이 할머니가 감당할 수 없는 노동을 요구할 땐 그저 마을인심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힘들다고 안하나? 이거라도 안하면 뭐하게?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지….” 정씨 할머니와 회관 앞에서 헤어졌다. 이번에는 한쪽 옆구리에 비료가방을 둘러메고 논바닥에 계속 뭔가를 뿌리는 할머니가 보인다.

“왜 혼자 일하세요?” “혼자 사니까 혼자 일하지요. 논에 물대기 전에 비료 좀 뿌리고 있어요.”
이기순(69)할머니다. 방금 만난 정씨 할머니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연주리 중간말에서 살다 수몰당하는 바람에 서당골로 왔는데 같이 온 할아버지는 먼저 가시고 혼자 남아 땅을 일구고 있다.

“그나저나 매상(벼 정부수매)이 없어진다니 눈앞이 캄캄해요. 그거라도 있어야 늙은이들이 돈이나 겨우 만져보는데….” 내년부턴 뭘 갖고 쓰냐는 할머니에게 달리 다른 질문을 할 용기가 서질 않는다.

이기순 할머니와 작별하고 이상용(58)씨 땅가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노지에서 들깻잎을 심으려고 트랙터로 땅을 가는 중이다. 아내 전복자(54)씨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도 같이 밭에 나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지나가던 서순임(64)씨가 한 마디 한다. “끼니는 먹고 돌아다녀야지!” 국수나 한 그릇 같이 하자는 서씨의 제의에 집으로 따라 나섰다.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 서씨의 손가락이 발아래를 가리킨다.

“여기가 바로 웃서당 사람들이 전부 길어먹던 우물자리여. 지금은 이렇게 철판으로 덮어 놨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 물이 마르면 아랫서당이나 도근리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지. 해마다 여름에 가물라치면 동네 사내들이 둘씩 짝을 지어 이웃마을에서 물을 길러오곤 하는 모습을 늘 봤었어. 스물둘에 시집와서 42년을 살았는데 물 편하게 쓰면서 살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와서야. 몇 년 안됐어.”

자꾸 옛날이야기를 보채는 기자에게 겨우 건넨 이야기가 물 이야기다. 없이 살던 시절 물까지 넉넉지 않던 그때가 서씨에겐 잊기 힘든 기억인 모양이다. 가족들 이야기, 농사이야기로 점심식사를 마칠 즈음 안남농협에 볼일을 마치고 그의 남편이 돌아왔다. 마을이장 주재규(64)씨다.

■수매 중단은 서당골의 큰 걱정
“마을에 주 수입원이 쌀농사인데 당장 쌀 수매가 없어진다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상서당, 하서당 마흔여섯 가구 대부분이 벼농사를 하고 있고 또 벼농사가 주 소득원인 농가가 상당한데 이제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주 이장의 걱정은 들에서 만난 서당골 사람들의 걱정과 일치했다.  배를 재배하는 안계수씨나 복숭아를 재배하는 안순복, 정구열, 주대종씨 등 나름대로 소득 작목을 운영해 온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대다수의 주민들은 소규모 벼농사에 대부분의 소득을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서당골은 안남에서 논이 제일 많은 마을이에요. 그러니 걱정이 클 수밖에요. 농촌에 살아봐야 매년 걱정만 늘어가니 누가 농촌에 들어오려고 한답니까. 이게 농촌의 현실이에요. 대부분 못나가서 머무는 곳이 농촌이라는 현실이 우리 마을이라고 다를 것은 없어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날로 쇠약해 가는 농촌이지만 아직은 버티고 있다고 했다. 매년 정월 초사흘이면 서당골 마흔여섯 가구가 마을입구에 모여 기원도 모를 만큼 오랜 동제를 거행한다.   그나마 제수용 막걸리가 얼어붙을 만큼 추운 새벽에 하던 동제가 다음날 아침 시간으로 늦춰진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어쨌거나 아직 중요한 것을 잊고 살만큼 여유가 없지는 않다는 말도 했다.

주 이장과 대화를 끝내고 마을을 나왔다. 마을을 떠나는 길, 마을자랑비가 바지가랑이를 잡았다.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이 자리에 다시 설 때 자랑스런 조상을 숭경의 마음으로 추모할 때를 기약하며 이 비를 세우노라…. 95년8월’

10년 전에 서당골 주민들이 기약한 먼 훗날이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아래서당에 있었다는 서당 터에서 글공부하는 아이들의 낭낭한 목소리가 들리던 오랜 옛날이 10년 뒤 다시 미래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찾길 기원하며 차에 올랐다.

``농촌의 현실은 참담합니다'' - - - 안남면 이장협의회장 주재규 이장

 8년 전부터 도덕1리의 이장을 맡아왔던 주 이장에게 2년 전부터는 안남면 이장협의회장이라는 역할이 또 더해졌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본업이 농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몇일 전부터 그를 다시 바쁘게 만들고 있는 안남농협 선거관리위원장이라는 역할은 안남이라는 지역사회에서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짐작케 한다.

땅을 일구는 농민으로, 또 이장으로 , 이장 협의회장으로 다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24시간을 잘게 쪼개어 쓰고 있는 주재규씨다. “한창 바쁜 철인데 여러 가지 일이 겹치네요.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누군가 해야될 일인데요.” 대화를 지켜보는 아내 서순임(64)씨가 더 답답한 모양이다. 

“아이구 우리 할 일은 산더민데, 여기서 오라 저기서 와 달라, 아주 정신이 없어요. 남의 속도 모르고 다들 아쉽다는 소리죠.” 그렇게 바쁘게 농촌을 지키고 있는 그이지만 그에게서 농촌의 희망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농촌은 벼랑 끝으로만 몰리는 암담함 그 자체였다. “윗서당만 해도 28가구 중에 13가구가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에요. 아랫서당 도근리, 도덕1리의 자연마을 모두 비슷한 상황이고요. 이분들이 농사를 지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아주 처참해요. 2∼300만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1년을 사는 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도시에 나간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자식교육비다 뭐다 해서 빠듯하게들 사니까 농촌을 떠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농촌에 남아서 뼈가 빠지게 일을 해 봐야 겨우 연명이나 하는 수준이니...”

주 이장은 누가 시골로 들어오겠다면 자신부터 말리고 싶다고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아니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 농촌에 무슨 희망을 찾아 돌아올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런 그에게 오는 30일로 예정된 안남농협조합장 선거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당장 조합장이 안남의 농촌경제를 살리기는 힘들겠죠. 조합장 하나 바뀐다고 당장 큰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번에 출마한 두 분 중 누가되던 일년 열두 달 하루도 다리 뻗고 잠들지 못하는 농민들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단 최선을 다하면 바뀌는 것이 있겠죠.”

정당하고 공정한 선거,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는 선거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는 주씨의 뒷모습에는 그가 하지 않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서당골과 안남의 희망을 향한 그의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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