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문학포럼, 문화적·언어적 능력 끌어올린 지용
지용문학포럼, 문화적·언어적 능력 끌어올린 지용
정지용 시인의 번역 연구 등 새로운 연구과제 제시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5.05.20 00:00
  • 호수 7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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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충북과학대 강당에서 진행된 '문학포럼'은 지용시 연구와 번역연구 등 새로운 연구과제들이 제시돼 관심을 모았다.

지난 15일, 충북과학대 강당에서 진행된 ‘문학포럼’은 정지용 시인의 문학사적 위상정립이라는 기존의 개념에서 벗어나 지용시 연구와 번역 연구 등 새로운 연구과제들이 제시돼 관심을 모았다. 이날 포럼에는 방송통신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지용의 문학을 좋아하는 400여명의 문학도들이 자리를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이날 포럼에는 한국방송통신대 박태상 교수의 사회로 최동호 고려대 교수의 [소묘된 풍경과 여백의 미학], 중국 길림대 윤해연 교수의 [정지용 시의 ‘나비’에 관한 종합적 고찰], 성균관대 허윤회 강사의 [정지용과 번역], 동국대 윤재웅 교수가 [1941년, 정지용과 서정주, 그리고 재능의 교체]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논문들을 요약한 내용이다.

◆여백에 담긴 지용시의 매력
먼저, 고려대 최동호 교수는 “한 편의 시 읽기는 그 사회가 축적하고 있는 문화·언어적 향유 능력과 밀접한 상관성을 지닌다”며 “정지용 시인은 이러한 문화·언어적 능력을 동세대의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시 읽기를 전제로 최 교수는 권영민 교수의 ‘지용시 [비] 읽기’에 대해 세 가지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했다.

우선, 1941년 1월 ‘문장’지에 발표된 [비]의 배경은 가을이 아닌, 봄 이라는 사실과 비가 내린 시점, `돋는'과 `듣는'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최 교수는 “시의 계절적 배경을 가을이 아닌 봄으로 바꿔놓고 본다면 시의 해석은 아주 달라질 수 있다”며 “2연의 소소리 바람을 이른 봄에 산 속으로 기어드는 듯이 맵고 찬 바람으로 본다면 작품 전체의 구도는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의 배경을 봄으로 본다는 가정 하에 최 교수는 ‘수척한 흰 물살’에 대해서도 봄눈이 녹고 난 다음의 메마른 산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7연의 ‘돋는’에 대한 해석도 최 교수는 “빗방울 하나하나를 소묘하기 위한 의도적 어법이며, 의도적인 시어선택”이라며 “빗방울이 떨어질 때 그 하나하나 물방울로서 ‘붉은 닢’에 맺히는 시각적 효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된 용어”라고 밝혔다.

또 ‘7연과 8연에서야 비가 내린다’는 권영민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3연의 ‘앞섯거니 하야/꼬리 치날이여 세우고’에서 이미 후드득거리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이 시가 제대로 읽힌다”고 주장했다.

◆자주 등장하는 ‘나비’
중국 길림대학 윤해연 교수는 지용 시 연구에 있어 ‘나비’와 관련된 시편을 연구해 관심을 모았다. 윤 교수는 “정지용의 시에는 새와 말과 나비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며 “그 가운데 나비는 무려 15번이나 등장해 시인의 정신세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지용 시인은 나비를 획일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시의 적재적소에서 다양한 변용을 선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시적인 소재, 분위기, 정신적 자세 등도 정지용의 후기 시 변화도 나비를 통해 구별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윤 교수는 “종전의 시편들은 ‘나비’를 자연의 생물 그 자체 혹은 일상적인 비유적 표현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지만 ‘호랑나’에서는 영혼이 깃들어 있는 대상적 존재로 승격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정지용의 후기 시의 변모 양상과도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윤 교수는 “`호랑나'가 영혼을 간직한 대상적 존재였다면 유리창의 ‘나비’는 시적 자아의 한 분신으로서 주체적 시선을 안팎으로 전환하기 위한 소통수단으로 표현했다”며 “정지용의 초기 시는 ‘나비’의 일상적인 의미로 씌였다면 후기 시에서는 정신적인 의미를 가미하여 시적 자아의 혼란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하의 어지러운 사회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지용의 번역시 연구
“정지용 시인이 영문학도로서 영시의 영향을 받았을 테지만 지금까지 그의 영시 번역 연구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를 맡은 박태상 교수의 얘기처럼 성균관대 허윤회 강사의 [정지용과 번역]에 대한 연구는 포럼에 참가한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먼저 허 강사는 “정지용 전집에 나타난 번역시들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5편과 윌트 휘트먼의 시 12편”이라며 “정지용의 번역시 활동은 블레이크의 시를 소개하고 있는 1930년과 윌트 휘트먼의 시를 소개하고 있는 1938년 무렵, 해방이후의 시기 등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시대의 김억, 박용철 등과 비교해 활발한 번역활동을 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허 강사는 “그의 번역시는 대단히 서정적인 작품만을 번역했다는 점을 볼 때 그의 초기 시 작품세계처럼 퇴폐적인 시를 배제하고 골라서 발표하는 등 한 편의 번역에도 시어 선택 등 많은 노력을 한 이유였을 것”이라며 “정지용의 번역활동이 활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을 전공한 정지용에게 서구시의 영향은 전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41년, 정지용과 서정주
1941년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의미 깊은 해이다. 한국 시문학을 대표하게 되는 정지용과 서정주에 있어 1941년은 종결의 의미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1941년 ‘백록담’ 출간을 마지막으로 시인 정지용은 일제 강점하에서 사실상 시인으로서의 작업을 종결하지만 ‘화사집’을 출간하며 새롭게 등장한 신진 시인 서정주는 정치적 판단 미숙으로 친일작품을 여기저기에 발표하는 필생의 오점을 남기게 된다. 동국대 윤재웅 교수는 [1941년, 정지용과 서정주, 그리고 재능의 교체]란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윤 교수는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1941년 정지용과 서정주 등 두 재능을 비교, 검토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며 “회화적인 정지용과 음악적인 서정주 등 극명하게 대비되는 미학적 특성으로 인해 상호 비교는 오히려 개별적 특성이 더 잘 드러나는 성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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