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맛 나는 세상
살 맛 나는 세상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89.10.21 00:00
  • 호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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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창 국민들의 과소비와 향락문제로 온통 시끌벅적하다. 어찌되었든지 우리의 생활이 윤택해졌다는 일단의 모습일 테지만 문제는 국민들의 소비풍조라는 현상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우기 한 달에 기껏 실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의 월급봉투만을 받는 봉급쟁이가 1년에 한 번 추수철에나 되어야 돈을 만져볼 수 있는 농민이 그러한 과소비의 주인공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는 그 중요성에 비추어 옛날에 조금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소비수준이란 것과는 별개로 당장 며칠만 굶어도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져 오면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은 놀랄만큼 빠르게 촉진되었다. 그것은 물론 정부의 산업 근대화정책에 따르는 노동력 창출에 부응(?)한 것이기도 하지만 좀더 근본적인 원인은 농촌살림의 어려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더라도 사람이면 누구나 먹고 사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경우 그 위치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이것 저것 하다가 안되니까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나올 수밖에 없을것 아닌가? 밤만되면 도시 번화가의 불빛은 어지럽도록 현란하고 제시간을 만난 듯한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 도대체 어디에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아! 이처럼 젊은 생기가 넘치고 발랄한 것을 왜 진작 느끼지 못했는가」하는 식의 아쉬움이 스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퍼뜩 대비되는 풍경이 있었다. 도시의 밤에 거리에 넘치는 수많은 인파와, 인력난에 허덕이며 「농사는 우리대에서 끝」이라는 어느 육순 할아버지의 체념어린 말이 가지는 엄청난 대조의 풍경이 그것이다. TV에서 보여지는 목가적인 전원풍경은 더이상 우리의 농촌풍경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이렇게 각박한 도시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으니 농촌만이라도 언제까지나 소박하고 꿈있는 향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집단 이기주의적인 사고 앞에 우리 농민의 마음이 결코 편할리는 없다.

농촌에서 일할 젊은이들이 충분하고 농촌을 찾고, 우리 농민들이 경작한 작물만으로 우리나라의 식량을 모두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더이상 풍·흉에 관계없이 농산물가격이 보장되어 가격 걱정없는 세상, 각종 농약공해, 문화적 소외로부터 벗어나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의 모습을 꿈속에서만 볼 수 있다면 정말이지 살 맛 안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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