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61] 안내면 율티리
신마을탐방 [161] 안내면 율티리
산제바위의 행운이 다시 오길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04.01 00:00
  • 호수 76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엄태임 할머니와 야채를 씻고 있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한 할머니.

지난 주 `다시쓰는 우리마을'에서 만나보았던 도가실에서 월외리 쪽으로 인접한 첫 마을이 율티리다. 지난 1914년 행정구역 일제조정 후 도가실과 함께 도율리로 통칭되고 있는 밤티마을(율티리)은 36가구 70명의 주민이 모여 살며 몇몇 주민이 벼, 복숭아, 고추, 축산 등으로 소득을 얻고 있으나 그 숫자는 많지 않다. 젊은 층은 옥천읍 등 인접 도시로 출퇴근하며 생활하고, 마을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은 인근 인삼밭 등에 품을 팔며 수입을 올리는 형편이다. 신촌교를 지나 세번째 마을 율티리. 꽃샘추위는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바람이 매섭다. 겨울을 지나면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지만, 그 생명의 순환 가운데 깃든 봄추위의 교훈을 생각한다. 이 찬바람 때문에 올봄 활짝 필 봄꽃은 더 강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길 오른쪽으로 푸릇푸릇 싹을 틔운 호밀밭의 싱그러운 표정에 봄을 실감하며 마을 입구 언저리에서 땅을 밟았다.

■빨래터에 지붕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도 여기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 먹었어.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이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이곳에서 지금처럼 살아 오셨다고 하셔.”

마을입구 반대편 차선 아래 있는 빨래터다. 엄태임(82)할머니는 야채를 씻고 이름 밝히시길 한사코 마다하시는 엄 할머니의 친구 분은 빨래를 하신다.

“비가 올 때는 빨래터에 못 나오잖아. 기자양반, 노인네들이 지붕이라도 좀 올려달란다 그런다고 좀 쓰셔.”
“뭘 쓰라고 그랴. 여기 뚝 공사 끝나고 나면 해준다고 안혔나?”
“어찌될지 모른다던디?”

할머니들한테 참 소중한 공간인 듯 하다. 올 여름엔 할머니들이 시원한 그늘에서 빨래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이름 알려주기 싫다는 할머니 아들이유. 고추밭에 거름 뿌리러 갔다고 했지?”

고추밭을 물어 걸음을 옮기려는데 트럭 한 대가 빨래터에 차를 멈춘다. 이웃마을 사는 주도완(36)씨다. 마침 전재상(48)이장 고추밭쪽으로 가는 길이란다. 주씨의 트럭을 타고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가 나한테 신부 감 구하러 외국 나가자고 하던데 걱정이에요. 그 사람은 농사도 안 짓는데 시골서 사는 것만으로 장가가기가 힘들다니 농민들은 어쩌란 말인지...” 

이야기가 농촌총각 장가드는 어려움에 이르렀을 즈음 전 이장의 축사 앞에 도착했다.

■“봄에는 봄나물이 보약이지!”
고추밭에 뿌릴 퇴비를 경운기에 싣고 있던 전 이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주민대부분이 고령화되어 실제 밤티의 독립자영농은 전 이장을 포함해 서 너 사람 뿐 이라고 한다. 어차피 대부분 주민이 노인층인 현실에서 이장으로서 자신의 활동도 다수주민인 노인들이 좀더 안전하고 불편하지 않게 사는데 맞춰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때 됐으니 식사나 하자고!”

전 이장의 제안에 일행은 전씨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빨래터에서 만난 할머니, 여전히 이름은 비밀이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봄나물이 한 상 그득하다.

“봄에는 봄나물이 보약이지!”

봄 속으로 봄의 기운이 구석구석 퍼지는 듯 상쾌하다. 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구들을 즐기려는 즈음 손님 한 사람이 전 이장을 찾았다.

“경운기로 갈라니께 힘들어서 못하것네. 내 밭 좀 갈아줘.”

도가실에서 온 김유성(49)씨다. 올해는 고추를 좀 많이 심어봐야겠단다. 전 이장이 손에 꼽는 농기계 소유자다 보니 철마다 전씨를 찾는 사람은 많다.

“농기계 부품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몰라요. 지난해 농기계 수리하는 돈만 엄청나게 들었으니까요...일손 없는 사람은 없는 데로 힘들고, 기계가진 사람은 또 기계가진 사람 데로 힘들고...뭐 다들 마찬가지로 겪는 상황이죠.”

식사를 마치고 마을입구로 나왔다. 한 눈에도 좁고 낡아 보이는 노인회관이 초라하다.

“빠르면 올해 상반기에 새 회관공사 착공이 들어 갈 것 같습니다. 터도 더 확보했으니까 넓고 깨끗하게 지어야지요.”

새마을지도자 박구봉씨. 밤티의 궂은일은 도맡아 처리하는 박씨에 대한 평판은 마을전체에 자자하다. 최근 박씨는 마을에 할당된 비료를 직접 경운기에 싣고 마을 노인들의 집에 일일이 옮겨주기도 했다. 마을회관에서 박씨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 중간 몸을 움츠리는 일이 있었는데 용촌 쪽에서 달려오는 대형 트럭들 때문이다. 마을입구와 바로 맞닿아 있는 도로로 대형트럭들이 질주를 한다. 과속방지턱이든 도로의 안전 공간 확보든 당장 적절한 안전시설이 필요하다.

■제주 없어 중단된 ‘산제’
작은 하우스를 꼼꼼히 살피는 노인이 있다. 하우스 안은 파릇파릇한 고추 묘가 차가운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밤티 박병권(74) 노인회장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제사를 모셨었지. 언제부터 시작 됐었는지는 아무도 몰러. 아무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골에서 제를 모셨는데 제주를 할 사람이 없어서 중단되고 말았어.”

산제가 힘들어서, 그 의미가 퇴색돼서 중단된 것이 아니다. 생기복덕을 보아 제주를 꼽는데 산제를 주관한 제주를 할 자원이 없어 진 것이다.

“마을 주민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마땅한 사람도 점점 찾기 힘들어 지는 것이지.”

박 노인회장을 따라 동골로 가보기로 했다. 마을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는 믿음을 받으며 오랜 옛날부터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지던 동골은 마을에서 생각보다 가까웠다. 얼었던 산이 녹으면서 흐르는 계곡물을 따라 조금을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산제바위다.

“이 산제바위 앞에 고인 물로 제주는 목욕을 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여. 한 겨울이나 아무리 가물어도 샘이 마르는 법이 없거든.”

산제바위 밑에는 3년전까지 사용했던 제기들이며 시루가 그대로 놓여져 있다. 주민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표정이다.

“바위 윗부분을 잘 보라고. 보이지? 저게 뭣 같은가?”

나뭇가지를 꺽어 산제바위의 윗부분을 가리킨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주 동그란 구멍이 바위에 나 있다.

“여자들이 머리에 물건을 질 때 쓰는 또아리 자국이여.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 한 여자 장사가 산제바위를 머리에 이고 이 자리에 옮길 때 바위에 생긴 흔적이라고 하지.”

거대한 바위가 여장부의 머리위에 올려진 그림을 그려본다. 산제바위에 얽힌 전설, 판타지가 참 재미있다. 예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티라고 불리던 율티마을, 나날이 줄고 있는 마을에 그 옛날 산제바위를 이고 마을에 옮겨 둔 여장부가 다시 한번 큰 행운을 이고 찾아오길 기원하며 마을을 나왔다.

[새이장 전재상씨] 살기 좋은 밤티로 가꾸렵니다

무슨 서류가 그렇게나 많은지, 밤티마을의 새 이장 전재상(48)씨는 지난 1월 이후 정신 차릴 여유가 없었다. 농사일이 산더미 같지만 뻔한 마을사정에 피할 수만은 없었던 이장 자리였다. 당장 이장 직 변경을 면에 알리고부터 전 이장은 온갖 생소한 서류작성에 낫 대신 펜을 드는 날이 많았다고.

“마을에서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요. 그러니 바빠서 이장을 못 맡겠다는 말이 안 통하죠. 당장 맡고 보니 작성해야 할 서류가 어찌나 많은지….”

이장 맡았다고 만들 서류가 뭐 있겠나 싶은 마음에 무슨 서류로 그렇게 바빴는지 물었다.

“아시겠지만, 우리 마을은 여름에 조금만 큰 비가와도 아주 큰 홍역을 치릅니다. 그게 다 식품공장 근처에 있는 잘못된 교량 때문이에요. 올 여름이 오기 전에 그 교량부터 구조변경을 시켜야 하고요, 마을 앞 도로도 큰 문제에요. 도로포장이 되고나서 내가 기억하는 사고만 해도 일곱 건을 넘으니까요.”

전 이장이 든 펜은 결국 자발적인 것이었다. 올 여름에는 교량 하나 때문에 마을의 농경지가 침수돼서는 안된다는 것, 마을과 지나치게 인접한 도로 때문에 교통사고가 나서도 안된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전씨가 이장이 된 만큼 절대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봄 농번기가 오기 전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 갔다. 마을을 위해 누구보다 바쁜 겨울을 지낸 그였지만 농사준비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잠시 짬을 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의 손은 일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바빠 죽겠다’는 말이 꾀병으로 들리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일 것이다.

“임기도 없는 이장 자리라 딱 2년만 하겠다고 마을회의 때 주민들에게 말씀드렸더니 최소한 3년은 해야 한다고들 하시네요. 뭐 2년을 하던 3년을 하던 밤티가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세  요.”

전씨가 이장에 취임하면서 밤티에는 ‘밤티청년회’라는 향우회가 생겼다. 마을의 청·장년층과 옥천에 사는 출향인 등 회원은 10여명, 벌써 모임도 두 번 이나 가졌다고 한다. 젊은 이장과 함께 새 봄을 맞는 밤티마을, 올해 밤티의 봄은 유난히 싱싱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