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차마 오늘처럼 비참하진 않겠지. 그래도 꿈은 있고 희망은 있겠지」 저녁일이 끝나면 잠을 청하며 새벽이면 떠오를 밝은 태양도 짐스러웠을 것이다. 그날도 시지프스 신화의 주인공처럼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며 두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면 소재지를 다녀오고는 말이 없었다.
놉을 얻어 피살이를 다녀온 아내는 술취한 남편을 보고 그저 그러려니 여겼을 것이다. 「나 농약 먹었어」라는 이야기에 이웃의 친구들도 농담으로만 여겼을 것이다. 그저 술취한 사람마냥 온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이 지나고 다음날 뜨는 해를 그는 보지 못하고 말았다. 나이 채 40을 넘기기도 전에 아내와 사랑스런 자녀를 버리고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살충제 지오릭스유제가 한 생명을 앗아가는 독극물로 사용되고 말았으니….
단 한 번도 호강 시켜주지 못한 나이드신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어린 자식을 남겨둔 선량한 농군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무엇일까? 한 농민의 어두운 죽음을 그저 흐름속에 묻어 버리기에는 너무나 이 사회가 병들어 있다. 어두운 구석, 그물처럼 다가서는 죽음의 유혹, 희망없는 내일. 그렇다 그는 타살이다.
이 사회는 그의 죽음에 대하여 뼈아프게 슬퍼해야 한다. 눈물이 마르도록 울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또 하나의 시각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만물을 다스리는 인간은 그 천부적 권능을 부여받은 만큼 우주의 법칙에 대하여도 책임질 줄 알아야겠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처한 위치 이것은 스스로 지켜야 할 권리인 동시에 의무인 것이다.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용기 또한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여우 목도리와 담비 코트는 걸칠 수 없다 하더라도 오늘 저녁 한끼의 식사를 마련하였다면 수고하고 짐진자들과 함께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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