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물음을 던져 의미에 다가서다
사물에 물음을 던져 의미에 다가서다
지난 2월 교동갤러리카페서 서상숙 작가 사진전 열려
주제는 ‘오브제(objet)’···일상에서 만난 사물의 가치 부여
사진카페 2월 운영 및 ‘동그라미’ 모임서 사진 수업 중
  • 윤종훈 기자 yoonjh2377@gmail.com
  • 승인 2023.03.3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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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똑같은 일상은 없다. 사물도 그렇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사물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자태를 드러낸다. 관심을 두지 않아 모를 뿐이다. 보는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인다. 정지된 시간의 기록을 남기고 들여다보길 반복한다. 사물의 본질과 존재를 묻고 가치를 찾는다.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때론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이 그대로 멈춘 사진 속에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한 줌 먼지와도 같다. 싱싱한 야채든, 시든 야채든 존재의 가치를 주고 싶었다. 익을 대로 익어 나무에 걸려있던 석류. 잠깐 보거나 먹고 끝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속이 알알이 나온 석류를 보며 여성, 태아 그리고 자궁을 떠올렸다. 모과, 레몬, 피망, 토마토···. 가만 놔두면 점점 익어간다. 꺼뭇꺼뭇 곰팡이가 끼거나 말라비틀어지기도 한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너무 헛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시선과 인식은 그렇게 확장한다.

옥천사람 서상숙(53) 작가가 지난 2월 한 달간 옥천에서 세 번째 사진전을 구읍 교동갤러리카페에서 열었다. 옥천교육도서관 맞은편에 ‘사진카페 2월’을 운영하는 서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과일, 꽃, 유리병 등을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 사진 작품 50여점을 내걸었다. 전시 주제는 ‘오브제(Objet)’. 오브제는 물건이나 사물을 뜻하지만, 사진으로 남겼을 때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회화적 언어이기도 하다.

■ ‘허투루 말고 자세히 바라보세요’

“사진은 눈으로 보고 마음이 움직여 머리로 찍는 행위예요. 머리는 프레임(Frame, 대상을 바라보는 틀)으로 어디를 넣고 뺄 건가를 판단하는 거고요. 눈에 들어왔을 때 찍을까 말까 결정하는 건 내 마음이 울려야 하는 일이죠. 저는 멋진 풍경이 아니어도 휴대폰으로 매일 찍어요. 아침에 집에서 도립대를 지나 사진카페 2월에 오잖아요. 이 골목에 들어오는 시간이 10시10분, 10시5분, 10시15분 조금씩 다르거든요.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림자 위치나 풍경이 달라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죠.”

서상숙 작가는 지난 2월 한달간 구읍 교동갤러리카페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 주제는 '오브제(objet)'. 서 작가가 운영하는 사진카페 2월에서 그를 만나 전시 이야기와 어렸을 적 카메라를 접한 과정을 들었다. 
서상숙 작가는 지난 2월 한달간 구읍 교동갤러리카페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 주제는 '오브제(objet)'. 서 작가가 운영하는 사진카페 2월에서 그를 만나 전시 이야기와 어렸을 적 카메라를 접한 과정을 들었다. 

서상숙 작가는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포토아카데미 ‘동그라미’에서 수강료 없이 사진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을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동그라미’ 회원 중에는 철학을 전공하거나 공업 디자인에 일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다. 서 작가는 모임 때마다 기술적인 면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차원에서 과제를 내주고 있다. ‘허투루 보지 마세요, 자세히 바라보세요.’ 그가 회원들에게 강조하는 메시지다.

처음 사진을 접한 계기는 우연이었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농 위에 필름 카메라를 발견하면서부터다. 그때 농 위를 왜 뒤졌을까. 그 카메라를 못 봤다면 사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 이게 뭐야?’ 물어보니 부산 이모가 줬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도, 그 이전에 할아버지도 젊었을 때 카메라를 만졌다는 걸 고모에게 전해 들었다. 대학 전공으로 사진 한다고 했을 때 할머니 말씀하시길. ‘저 상숙이 저거 차~암 피는 못 속이네.’

필름현상 같은 개념도 몰랐다. 그땐 설렘 하나였다. 옥천여중 인근에 있던 사진관에 들락날락하며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했다. 중학교 때부터 사진을 취미로 삼았다. 무용하는 친구 데리고 학교 강당에서 찍어도 보고, 이론 책도 찾아봤다. 고3이 되자 유아교육, 사진 중 후자로 마음이 기울었다. 무작정 들이댔다. 지망하는 대학교 사진학과 사무실에 편지를 보냈다. 고3 여름방학 때 대학교 조교를 만나 재학생 언니를 소개받고 입시 준비하는 꿀팁을 들었다. 결국, 재수를 선택했지만.

집 근처 나무에서 열린 석류를 보며 서 작가는 여성, 태아, 자궁을 떠올렸다.
집 근처 나무에서 열린 석류를 보며 서 작가는 여성, 태아, 자궁을 떠올렸다.
싹이 난 감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람 얼굴이 보인다는데..
싹이 난 감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람 얼굴이 보인다는데..
곰팡이가 피고, 말라 비틀어졌다 할지라도..
곰팡이가 피고, 말라 비틀어졌다 할지라도..

■ 세 딸을 키우면서 놓지 않았던 꿈

재수할 때가 되어서야 대전에 사진학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았지만 그땐 간절했다. 옥천과 대전을 오가며 한 달 15만원 사진 강의를 들었다. 딱 한 달 수강료만 내고 학원 조교로 있으면서 잔심부름하며 입시반 수업을 들었다. 취미 사진과 입시를 목표로 한 사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학 때보다 재수할 때 더 많이 찍었을 정도였다. 현상과 인화의 과정이 늘 기다려졌다. 그만큼 절실했다. 경일대 사진학과에 합격했다.

광고기획사에 가고 싶었지만 인연이 닿진 않았다. 대학 졸업하고 재수할 때 다녔던 사진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그리고 서울에 한 홍보대행사에 다녔는데 그때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고향 옥천에 돌아왔다. 큰애가 7살, 둘째가 6살 때 막내가 태어났다. 셋째를 가졌을 때 여자의 삶이 이대로 끝나나 싶었다.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고, 유아교육도 해보고 싶었다. 보육교사 1년 공부한 게 자산이 됐다. 당시 문정아파트 1층 두 개 방을 얻어 살림집을 오가며 어린이집을 8년 했다.

몇 년간 사진의 공백이 생겼다. 다시 카메라를 잡은 건 어린이집 그만두고 카페 ‘카푸치노’를 할 무렵이었다. 옥천군영상미디어센터에서 사진 강사로 3~4년 일하고, 문화예술교육사 공부를 병행했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원 없이 했다. 그만큼 갈등이 따라왔다. 그동안 잘 챙겨주지 못 한 남편이 눈에 밟혔다. 미안한 마음이 불어났다. 끼니도 챙길 겸 남편 사무실 옆에 ‘샘쓰키친’ 가게를 차려 도시락을 팔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다시 갈증이 생겼다. 사진 작업실을 해보고 싶었다.

유리병 표면에 묻은 물기까지 담아냈다.
유리병 표면에 묻은 물기까지 담아냈다.
유리병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유리병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사진 수업만으로는 타산이 안 맞으니 카페를 같이 생각했다. 마침 시내 한자리에 임대가 붙어 있었다. 오랜 시간 비어 있던 공간인데 그날따라 달리 보였다. 그날 저녁 전화해서 다음 날 공간을 둘러봤다. 여기는 암실, 저기는 이야기 나눌 공간, 여기는 교육하는 공간. 그림이 딱딱 그려졌다. 계약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2020년 2월 ‘사진카페 2월’이 열렸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 사진 전공하는 막내딸과 함께

사진카페 2월도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 흑백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작업을 하려고 들어왔건만 첫해만 잠깐 했다. 갈증이 생기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걸 이제는 안다. 현상한 작품을 얼마나 흔드느냐, 약품을 어떤 배율로 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농도, 깊이가 달라진다. 그 손맛을 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흑백 작업을 향한 갈망은 남아있지만 지금도 좋다.

“손님들이 계속 오는 게 고맙죠. 학생들이 가끔 ‘사장님, 여기 오래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하니까 감사하고요. 근데 우리 딸들이 그래요. 오는 학생들한테 제발 말 좀 걸지 말래요(웃음). 애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요. 근데 학생들이 너무 대견하고 예쁜 거예요. 쉬는 날에 공부하러 오면 계란 삶은 거나 빵 하나라도 주거든요. 저라면 공부 안 하고 누워서 TV 보고 있을 텐데 말이죠. 학생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가 저한테는 보약이 되더라고요.”

큰딸, 둘째 딸, 막내딸, 원투쓰리는 다 개성이 뚜렷하다. 그중 막내(옥유경 씨)가 성격 면에서 빼닮았다. 돌아보면 나도 남편도 맞벌이 하는 상황에서 막내딸을 잘 보살피진 못 했다. 물질적인 건 부족함 없이 챙기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진에 관심을 둔 막내에게 카메라를 주고 마음껏 찍게 했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자기가 필름 카메라에 컬러필름 끼우고 사진 스캔도 알아서 척척 했다. 내심 내가 못다 한 꿈을 이뤄주길 바랐다. 막내도 같은 대학 사진영상학과에 다니고 있다. 지난해 11월 옥천에 열린 시니어모델 패션쇼 ‘농촌 속 오래된 미래’에 막내와 사진 촬영을 같이했다.

“이날 샌드위치랑 샐러드 단체 예약이 있었는데 그걸 다 취소하고 딸이랑 같이 갔죠. 언젠가 딸이랑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게 꿈이었거든요. 주문한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날 몇 십만원 어치 매출을 포기했죠. 근데 사진을 고를 때 딸이랑 관점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같이 사진을 해도 서로 다르게 보는 거죠. 포토샵으로 보정하는데 ‘엄마, 반반 하자?’ 이러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딸이랑 사진 작업을 같이 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존재와 시간을 사진에 담아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서상숙 작가. 그는 일상의 흔한 대상, 하찮은 사물에도 관심을 두고 사물의 본질과 존재에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지난 2월에 열린 사진전은 이미 끝났지만, 서 작가는 오는 10월 포항에서 사진전을 계획 중이다. 또한, ‘동그라미’ 회원들과 함께 조만간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옥천에 정 붙이며 사는 그의 사진을 향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전시 포스터는 경산에 있는 학교에서 사진 전공을 하는 서 작가의 막내딸이 제작했다.
이번 전시 포스터는 경산에 있는 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서상숙 작가의 막내딸이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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