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받았던 어르신, 저를 기억해줘 감사해요”
“빵을 받았던 어르신, 저를 기억해줘 감사해요”
지난 2월 옥천다드림봉사단 창립한 이경자 회장
대전다드림봉사단서 8년간 빵 만들기 봉사 참여
어르신 생활관리사, 전통발효식품 강사로도 활동
  • 윤종훈 기자 yoonjh2377@gmail.com
  • 승인 2023.03.2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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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봉사하는 날이 기다려졌다. 지인들과 어디 놀러가는 일정도 뒤로 미뤘다. 내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지만 기꺼이 썼다. 언제부턴가 봉사가 삶의 큰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정성껏 만든 빵을 드렸을 때 행복한 미소를 짓는 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덩달아 좋았다.

시설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대뜸 빵이라고 불렀다. ‘선생님, 왜 빵이라 부르세요?’ 물어보면 ‘선생님, 빵 만들어줬잖아. 그래서 빵이라 하는 거야’ 그러신다. 그분 얼굴을 기억도 못 하는데 그분은 날 기억하고 있었다.

원생들은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에 만났던 사람을 기억한다고 한다.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같이 있어준 사람으로 남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봉사를 하면 행복하다.

지난 9일 동이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옥천다드림봉사단 이경자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우리고장에서 전통발효식품 강사, 어르신 생활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9일 동이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옥천다드림봉사단 이경자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우리고장에서 전통발효식품 강사, 어르신 생활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다드림봉사단 팀장으로 활동했던 이경자(54, 동이면 적하리) 회장이 지난 2월부터 ‘옥천다드림’이라는 이름의 봉사단체를 만들어 힘찬 도약을 했다. 봉사단에서 8년간 활동한 이 회장은 옥천과 대전에 있는 장애인 시설, 요양원 등 어려운 이웃에게 찾아가 빵 만들기 봉사에 참여했다.

■ ‘봉사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어요’

“옥천다드림봉사단을 만든 이유는 옥천 분들에게 빵을 더 드리고 싶어서예요. 2년 전 옥천에 수해가 났을 때 저희 봉사단이 빵을 3천개 만들어서 수해지역 이웃들에게 무료로 드렸어요. 정말 좋아하셨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옥천 봉사단이 아니기 때문에 회원이 더 안 들어오더라고요.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번에 옥천군자원봉사센터에 가입해서 옥천다드림이라는 분점을 낸 거죠.”

이경자 회장은 3개월에 한 번씩 영실애육원, 청산원, 영생원, 부활원, 요양원 등에 찾아가 빵을 전달했다. 대전에 세 번 봉사하면 옥천에 한 번 봉사를 나갔다. 그만큼 봉사단에 옥천 회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옥천에 자주 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아쉬워한 이 회장이 이번에 옥천다드림을 만든 것이다. 매달 회비 1만원을 걷어 운영하는 다드림봉사단은 옥천 회원이 기존 4명에서 현재 20명으로 늘었다.

“회원이 더 늘면 옥천에서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겠죠. 처음엔 지인 소개로 참여해서 요양원에 갔었거든요. 너무 좋더라고요. 나도 빵을 만들고 봉사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옥천 분들은 같이 가자고 해도 대전이 멀어서 안 가시더라고요. 보통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마다 장애인 시설에 빵을 드렸거든요. 예전에 제가 장애인분들 데리고 여행 가는 봉사도 했는데요. 예전에 봉사했던 그 시설에 빵을 만들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기억이 좋아서 계속 다녔죠.”

다드림봉사단 활동에 참여한 이경자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빵을 만들고 있다.
다드림봉사단 활동에 참여한 이경자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빵을 만들고 있다.

■ 복지와 음식의 관심이 배움의 열정으로

보은군 장안면이 고향인 이경자 회장은 속리초등학교, 보덕중학교를 졸업한 뒤 의정부에서 산업체부설학교를 나왔다. 친오빠를 고등학교 보내겠다는 집안 결정 때문이었다. 그가 옥천에 정착한 지는 30년. 의정부에 살던 중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홀로 사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고향에 돌아가 어머님을 모시겠다고 하면서 옥천에 오게 됐다.

당시 옥천은 길 포장도 안 돼 있어 흙길을 다녀야 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도 아침, 점심, 저녁 때 뿐이었다. 택시비 아낀다고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몇 시간 기다리는 경우가 예삿일이었다. 아들 유치원 다닐 때 집이 물에 잠겼던 일을 떠오르면 지금 옥천은 도시나 다름없다. 

“옥천에 살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죠. 지금도 만나는 아기 엄마들이 학교에서 뵀던 분들이에요. 지금 동이에서 탁구동호회로 만나는 분들 보면 다 귀농하고 귀촌하신 분들이거든요. 예전부터 살던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지난달 11일 다드림봉사단이 우리고장 내 장애인·요양 시설에 빵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달 11일 다드림봉사단이 우리고장 내 장애인·요양 시설에 빵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보건소에서 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 일하며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는 이경자 회장. 2018년 충북도립대에 입학해 사회복지학, 식품학을 전공하며 배움을 찾았다. 그때 같이 다녔던 동문들과 함께 노래봉사, 빵 만들기 봉사에 참여하곤 했다. 이 회장은 전통발효식품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발효식품을 배운 지는 2년 됐어요. 된장, 고추장, 수제청, 막걸리, 김치 등 발효식품 관련된 건 다 해요. 어른들이 만든 된장을 먹어보면 너무 짠 거예요. 조금 덜 짜게 만드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학교 들어가서 배우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죠. 학교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전통발효식품 학원에 다니면서 관련 자격증도 다 땄어요.”

■ 봉사는 돈보다 사람으로 채우는 일

이 회장은 지난해 죽향유치원 원생들에게 메주를 보여주며 전통발효식품의 가치를 알렸다. 메주 냄새를 맡아본 아이들은 똥 아니냐고 천진하게 물어봤다. ‘아니야, 이게 맛있는 된장이 되는 건데 냄새는 똥 같아도 나중 되면 맛있는 음식이 되니까 다 만들고 냄새 맡아보자.’ 처음에는 믿지 않는 반응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 맛있다, 맛없다며 표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발효식품에 관심이 있는 이경자 회장이 직접 담은 된장을 보여줬다. 그는 향후 청성면에 전통발효식품 교육장을 세울 계획이다. 
발효식품에 관심이 있는 이경자 회장이 직접 담은 된장을 보여줬다. 그는 향후 청성면에 전통발효식품 교육장을 세울 계획이다. 

청성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된장, 고추장 만드는 수업도 했었다. 아이들이 참 똑똑했다. 호기심이 많은지 깊숙한 걸 물어봤다. 수업 때 모든 과정을 하긴 어려워 50일이 지나 장을 담을 때쯤 다시 문자를 줬다. 메주하고 숯을 택배로 보내 만드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줬다. 이 회장은 향후 청성면에 전통발효식품 교육장을 세울 계획이다.

“전통식품은 살아있는 음식이라 곰팡이가 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저어야 하거든요. 하얀 곰팡이가 났을 땐 먹어도 돼요. 그런데 새카만 곰팡이가 나면 버려야 해요. 새카만 곰팡이가 난다는 건 그 사람이 게으르다는 거예요. 얘를 안 쳐다봤다는 거예요. 옛날 어른들이 항아리를 닦아주잖아요. 그냥 닦아주는 게 아니라 얘가 잘 있나 바라보는 거죠. 시중에 있는 된장, 고추장은 상하지 않거든요. 앞으로는 살아있는 걸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경자(오른쪽)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만든 빵들을 어떻게 배분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경자(오른쪽)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만든 빵들을 어떻게 배분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봉사단 활동부터 어르신 말벗을 해드리는 생활관리사 그리고 전통발효식품 강사까지 다방면으로 지역을 누비고 있는 이경자 회장.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두루 사람들을 만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

“봉사는요. 돈만 있어도 되지 않고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회원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봉사를 해준다고 해도 빵을 못 만든 날이 있었거든요. 그땐 정말 아쉬웠어요. 이렇게 좋고 맛있는 빵을 옥천 분들에게 많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옥천다드림을 만든 거고요. 제 직업이 어르신들 돌보는 일이잖아요. 제가 더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옥천에 많은 분이 옥천다드림에 오셔서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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