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핀스 밴드’에서 ‘꽃보다 Bic밴드’로
“새야 날마저 기우는데 / 새야 아픈 맘 어이 하나” 힘찬 노랫소리가 음악학원 연습실 밖으로 새어나왔다. 비좁은 연습실에는 7명이 저마다의 악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막내 45세, 연장자 75세, 평균 60대 멤버들로 구성된 시니어 밴드 ‘꽃보다 Bic 밴드’다. 지금까지 합을 맞춘 곡만 해도 30~40곡. 곡 장르는 7080부터 트로트, 폴카, 디스코 등 다양하다.
“학원에 갔더니 사람들이 다 착하더라고요. 이 사람들과 같이 밴드 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옥천에서 사귄 첫 친구들인 셈이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한 지 2년, 전혜숙(75, 이원면 장찬리) 회장은 멤버들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한얼재즈음악학원 전 원장이자 밴드 단장이기도 한 김욱성(54, 읍 가화리)씨가 학원 수강생들을 모아 밴드를 만들었다. 2019년 10월, 그렇게 ‘돌핀스 밴드’가 탄생했다.
처음에는 멤버들 가운데 이원면 장찬리 고래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많아 이같이 불렀다가, 1년 뒤 지금의 이름을 찾았다. “김욱성 원장님이 지어줬어요. <꽃보다 할배>라는 방송 있었잖아요. 거기는 나이가 있어도 해외여행을 다녔지만 우리는 밴드를 한다는 의미로요.” ‘Bic 밴드’는 밴드가 확장되길 바라는 김욱성 원장의 바람을 담았다. 빅 밴드란 피아노, 드럼, 베이스, 색소폰, 트럼펫 등으로 구성된 10인조 이상의 악단을 의미한다. 이름 따라 간다고 5명으로 시작했던 밴드가 지금은 13명으로 늘었다. 보컬, 드럼,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 키보드, 색소폰 등 악기도 다양해졌다. 겹치는 포지션이 있지만 곡과 스케줄에 따라 모이는 멤버는 유동적으로 바뀐다. 올해는 군 평생학습원의 동아리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 나이 일흔셋에 첫 악기 경험
악기를 다루는 실력은 인내심과 애정에 비례한다. 처음부터 프로가 될 수는 없다. 특히 나이를 먹고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생각보다 어렵고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아프고. 틀리면 원장님한테 한소리 듣지. 내가 이 나이 먹고 뭐 하나 그랬다니까요.” 일렉 기타를 맡고 있는 정찬분(65, 읍 금구리)씨는 피아노를 배운 경험은 있었지만 기타는 처음인지라 애를 먹었다. 2년만 채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다 보니 어느덧 2년이 됐고, 이제는 욕심이 생겨 계속 이어가고 있다.
드러머 권선자(63, 읍 죽향리) 부회장은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밴드 결성 이전부터 드럼을 쳤다. “남편이 색소폰을 시작하면서 같이 연주하려고 드럼을 배웠어요. 저도 색소폰을 다룰 줄 알고요.”
반면, 음악이라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게 전부였던 전혜숙 회장은 나이 일흔셋에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게 됐다. “베이스 기타가 뭔지도 모르고 아는 사람의 권유로 그냥 시작하게 됐어요.” 그럼에도 베이스 기타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 응원하는 베이시스트도 생겼다. “JTBC에서 하는 <슈퍼밴드> 봤어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문자 투표도 하고. ‘시네마’의 변정호가 베이스 기타를 하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나도 일찍 했더라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밴드가 결성된 지 6개월이 되던 때, 이들은 공연장에 내던져졌다. 김욱성 단장의 이유 있는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어도 공연을 해봐야 동기 부여가 된다는 이유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공연 경험으로 활력이 생긴다며 김욱성 단장이 밀어붙였다. “첫 공연이요? 하긴 했지만 엉망이었죠, 뭐.” 멤버들은 첫 공연이 엉망이었다면서도 주눅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들은 무대에 섰다. 최근에는 지난달 있었던 ‘금강휴게소 이웃돕기 주말공연’에도 참가해 5곡 넘게 연주했다.
■ 매니저는 가족이, 멤버들은 가족 같은 친구로
김욱성 단장의 역할은 지대하다. “연습실 밖에 있다가도 틀린 건 귀신 같이 듣고 혼낸다니까요.” 단장으로서 밴드를 지도하고, 결석한 멤버의 자리를 메우는가 하면 악기 세팅부터 편곡도 한다. 문화적 봉사를 한다는 차원으로 연습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인재를 찾아내는 것도 김욱성 단장 몫이다. 5개월 전에는 신옥숙(45, 읍 가화리)씨를 보컬로 영입했다. “원장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제가 매년 마을 축제에 나가 노래를 하고 1등을 했었거든요. 그걸 원장님이 알고 계시다가 기존 보컬 자리가 비자 함께 하자고 연락을 하셨어요.”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다 보니 이제는 연말연초도 같이 보내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자기자랑보다는 멤버들 자랑을 늘어놓는다. “우리 드러머 부회장님이 색소폰도 잘 하거든요. 저번에 버스킹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또 해달라고 섭외 들어왔대요. 영상 좀 보여드려봐.”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있는 신옥숙씨는 밴드 모임으로 숨이 트인다. “병원 일이 스트레스가 많아요. 또 제가 부산에서 왔는데 친구들도 다 고향에 있어 여기서는 얘기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밴드 하면서는 외롭지 않죠. 다 엄마 같고 편해요.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고 싶어요.” 화합의 비결은 ‘무작정 보듬기’다. “연주하면서 누가 실수해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요. 어차피 피드백은 원장님이 해주시니까요.”
봉사라는 공통점으로 통하기도 한다. “저희가 다 자원봉사센터 회원이에요. 단장님도 음악 봉사를 오래 했어요. 지적장애가 있는 분을 제자로 가르치기도 하고요. 그 제자들 중 두 명이 지금 우리 밴드에도 있어요.”
가족들은 팬이자 매니저가 돼준다. 신옥숙씨의 중학생 딸은 엄마 공연을 따라다니며 매니저 역할을 한다. “땀 닦아주고 메이크업 수정해주고 그래요.” 정찬분씨는 캐나다에 있는 딸과 사위가 열렬한 팬이다. “딸 부부가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못 오니까 엄마 공연 좀 보여달라고, 멋지다고 응원해줘요. 공연 영상을 유튜브로도 챙겨보고.” 전혜숙 회장은 남편이 매니저다. 매니저 일이 여간 쉽지 않다고 멤버들이 증언을 한다. “언제는 회장님이 기타를 집에 놓고 온 적이 있는데 매니저가 안 챙겼다고 혼을 내더라고요. 기타는 회장님이 챙겨야지(웃음).”
이들은 다음달 18일 첫 정기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간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인 만큼 정기공연을 할 때가 왔다.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 정기공연으로 관객을 만날 계획이다. 멤버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큰 무대보다는 봉사로써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코로나19 때문에 무대 봉사를 못 했어요. 특별히 어느 무대에 서고 싶다는 건 없고 봉사를 하고 싶어요.” 김욱성 단장의 목표는 분명하다.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는 거죠. 군 대표 시니어 밴드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