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ây giờ là mấy giờ?”(버이 져↘ 라↘ 머이↗ 져↘?)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베트남에서는 일상적인 표현이다. 이 표현은 “지금 몇 시 입니까?”라는 뜻이다. 그런데 청성초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문장이란다. 매주 수요일마다 방과후에 베트남어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방과후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의 고사리 같은 손이 바빠졌다. 진여정(34, 청성면 도장리) 씨가 칠판에 베트남어를 쓰자 고개를 갸웃대며 노트에 받아 적는다. “선생님 한글 표기가 틀렸는데요.” 아차 싶었던 진여정 씨가 재빨리 손으로 글씨를 지운 뒤에 다시 적는다. “저도 아이들과 함께 배워요”라며 진여정 씨가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누군가는 “선생이 저렇게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는 거야?”라며 핀잔을 날릴지 몰라도 기자의 눈에 진여정 씨는 그야말로 돌봄을 몸소 실천하는 ‘마을교사’의 모습이었다.
■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다녔던 학교…
진여정 씨는 21살에 호치민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왔다. 아이들과 함께 배움을 나눈 게 4년이나 됐다. 처음 그가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지난하기만 했다. 사과농사를 짓는 그에게는 읍에 있는 다문화센터가 멀게만 느껴졌다. 정규수업 시간에 한글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교육이 농번기에 실시되기 때문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청성면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3~40분이나 걸리는 읍내로 나와서 교육을 받고 다시 버스를 기다려서 오는 과정은 농사꾼이었던 그에게는 버겁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그는 다문화센터로 나가서 수업을 듣고, 집에서는 한국드라마를 챙겨보면서 한글을 익혔다.
진여정 씨가 이렇게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호치민에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 등교하려면 2시간에서 3시간을 걸어가야 했고, 자전거로는 1시간 반이 걸렸다. 오전 7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는 탓에 매일 아침 5시 반부터 전쟁을 치러야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공부가 재미있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던 그는 차곡차곡 교사의 꿈을 채워나갔다.
■ “제가 교육자로서 자질이 있을까요?”
교육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사범대를 나온 것도 아니었던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훔친 적도 많았다. 이주민에 불과했던 그의 눈물에는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교사 자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그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베트남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각 주차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그래도 자신의 역량이 닿는 한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며 수업을 이어왔다. 베트남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칠판에 직접 한국어로 발음 표기를 해주며 이해를 도왔고, 문화의 날에는 베트남 복장을 입고 서로의 문화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했다. 이렇게 그는 마을교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 “돌봄, 마을과 학교 사이”
진여정 씨가 4년째 도맡아서 진행 중인 방과후 수업에서는 매주 40분씩 일상적인 베트남어 표현을 배운다. 청성초 방과후교실은 1,2,3학년 학생과 4,5,6학년 2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듣기·쓰기·말하기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베트남어 수업의 주제는 시간표현에서부터 시작해서 인사말, 식사, 예절, 가족, 문화 등 다양한 표현을 담고 있다. 그가 2016년에 청성초에서 학부모회장을 맡았던 것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5년이나 지났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가 청성초 4학년생이 됐고, 청성초 2학년이던 아이가 보은중학교 1학년생이 됐다. 계속해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이유는 본인의 자녀가 초등학교에서 다녀서만은 아니다. 그는 “학생들이 제 자식이라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수업시간에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전학 온 아이들의 이름도 반복해서 되뇐다. 분명 교육학적인 차원에서 ‘질 떨어지는 교육’이라며 제도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마을교사’로서 마을과 학교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아이들이 베트남어 학생이라면 저는 아이들에게 한국어 학생이라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함께 배워야 한다”며 ‘서로 돌봄’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청성초가 2016년부터 방과후 수업교과에 베트남어를 편성한 이유는 다문화 가정이나 다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서였다. 태어날 때부터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다문화 가정이기 때문에 사회적 편견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성초는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의 70% 이상이 다문화 가정이었다.
최근 청성초로 교육이주를 희망하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그 비율이 낮아지긴 했어도 농촌사회에 다문화가정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청성초 유공순 방과후 담당교사는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가정이 다문화 가정이기도 하고 친구의 학부모가 학교에서 와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도 정서적 유대감이 깊다”며, 다문화가정과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비록 베트남어 수업이 정규수업교육과정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 외딴 섬에 떠 있는 방과후 수업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베트남어와 베트남 문화를 접하면서 아이들끼리 상호 이해의 관계망을 형성한다는 점과 마을사회와 학교를 이어주는 마을교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