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대지가 하루가 다르게 초록 물결을 이룬다. 바라보는 눈길이 마냥 정겹기만 하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요, 예수님의 복음이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시절 인연이 찬란한 빛을 발하니 일일이 시호일이다. ‘뜻 밖의 재앙,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지만 우리는 전 세계가 주시하듯 선제적 대응과 성숙한 시민의식의 결집으로 국난극복의 험로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수많은 왜란과 호란을 극복하고, 불굴의 의지력으로 다른 나라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과정을 100년이라는 짧은 과정에서 보라는 듯이 성숙시킨 민족이 아니던가. 그 뒷받침을 누가 했던가. 위정자들은 혼돈과 권력 암투로 일관했지만, 민초들은 우직스럽게 고난과 좌절을 불굴의 정신으로 국정의 동력을 추동했던 민족이다.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도 70여 성상을 넘겼다. 뒤돌아보면 가슴 시린 통사(痛史)요, 피로 쓴 혈사라 아니할 수 없다. 국민은 주인이 아닌, 죽지 못해 삶을 연명한, 질긴 목숨의 수난사였다. 친일 매국노들은 시대를 도용할 줄 아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달인들이었다. 그들은 호의호식으로 영달을 누렸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멸족의 비운을 맞이한 것이 우리 민족 현대사의 민낯이다. 그 뒤집힌 현실이 우리 민족 현대사의 출발점이었다.
타의에 의한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 이승만 정권의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된 현대사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4.19정신’을 도화선으로 하여 민중의 횃불에 자극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승만 정권의 태동은 출발부터가 비극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될 인물이었다.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에 의해 탄핵을 당했던, 미국을 향해서 “조선인은 자치를 할 수 있는 민족역량이 부족하기에, 미국의 지배 하에서 신탁통치를 받아야만 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시대의 ‘독버섯’같은 존재였다. 강대국엔 비굴하리만치 아부를 하면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른 인물이다. 친일 매국노들을 전방위로 포섭을 해 정권의 방위망을 구축한 비열한 ‘패륜의 정치인’이다. 그런 위인을 ‘국부’라 칭하는 썩어빠진 위정자들이 현재도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승만이 있었기에 박정희가 총부리로 5.16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고, 전두환의 칼끝이 국민을 유린한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옹벽이었고, 친일매국노들의 죄과를 방어하기 위한 ‘분신’에 불과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던가. 정치도 예외일 수는 없다. 권력의 맛을 본 자가 이성을 잃으면 자신은 물론이요,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 있을 수가 없다. 그 실례를 이승만이 여실히 입증한 것이다. 권력의 마(魔)는 마실수록 취하고, 취할수록 빨려 들어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맛에 취하기 시작하면 헌정 유린은 서막에 불과할 뿐이다.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선거는 이승만의 무덤을 자초했다. 정권이 유린한 부정선거는 결국 4월 혁명에 도화선이 됐다. 칼로 주인을 협박하고 짓밟는 정부는 가장 비열한, 앞날이 예고된 미친 패륜 집단이다. 가녀린 학생들의 가슴에 총구멍을 들이대는 정부와, 일만 터지면 돌려치기 전법을 앞세워 공산주의로 몰아가는 이승만 정권의 행태에 탄핵은 이미 예고된 밥상이었다. 57년 뒤 박근혜 정권이 이 바통을 이어받았듯이.
민중은 ‘맹물이며, 풀’과 같다. 맹물은 만물을 먹여 살리면서도 말이 없다. 민초들의 삶과 흡사하다. 물은 결코 자신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 이 정신이 시대를 초월한 인류구원의 마지막 보루다. ‘아상(我相)’이 없다. 둥근 그릇 모난 그릇 고집하지 않는다. 막히면 돌아서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번 뒤틀리면 잡을 수 없는 둑이 터진다.
바람은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연약하고 힘없는 풀을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풀은 결코 절망할 줄 모른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것은 가볍지 않은 진리다. 1960년 4월 19일의 혁명은, 동학혁명 숨결의 연장이며, 3.1 운동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우리 민족의 면면한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5천년 역사의 유구한 흐름 속에서, 피지배 민중이 지배자를 타도한 최초의 성공한 혁명이다.
김삼웅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황토현에서 찢기고 처참하게 짓밟힌 민주의 혼이, 탑골 공원에서 발화된 독립 의지가 4.19에 접목되어 벽혈(碧血)로 발휘된, 선조들의 불멸의 정신이다.”
4.19 정신은 반공정신으로 투철하게 무장된 기백으로, 남북대화의 물결을 주도하는 민족통일 정신의 숨결이다. 면면히 계승된, 오늘의 우리가 잊어서는 결코 아니 될 민족 대단결의 정신이며 세계 일등 민주복지국가로 향하는 첩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