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는 ‘안전하게’ 울 수 있는 공동체 확인하는 자리
분향소는 ‘안전하게’ 울 수 있는 공동체 확인하는 자리
유가족은 모일 권리 있어, 정부는 피해자 권리 보장해야
‘이태원’ 이라는 장소성 지우면 책임자도 모호해져
‘모든’ 재난을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상설재난조사기구’ 설치 필요
참사는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 법적 잣대만 들이댈 수 없어
사회적 상(喪)의 기간은 길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중요
모든 시민은 목격자, 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 내야해
  • 이현경 기자 lhk@okinews.com
  • 승인 2023.02.24 13:09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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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_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에 재난은 기록해야 한다는 새로운 유산을 남겼다. 기록하겠다는 것은 곧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것이요,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것은 곧 이전 보다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함축된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면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등 기록작업을 진행한 인권기록센터 ‘사이’ 유해정 인권기록활동가는 재난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그 한가운데 있었다. 유해정 인권기록활동가는 10.29 이태원 참사 기록 작업에도 발을 내디뎠다. 이태원 참사라는 재난은 우리사회에 사회적 상(喪)의 기간을 단지 3일, 5일로 묻지 않고 길게 가져가는 변화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모든 재난이 철저하게 조사되는 상설적인 재난조사기구가 있어야 재난을 두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조언도 했다. <옥천신문>은 2월8일 신문사에서 진행한 유해정 인권기록활동가와 나눈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인권기록센터 ‘사이’ 유해정 인권기록활동가

■ 4.16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가 비교된다. ‘분향소’는 대표적인 차이점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옆에서 지켜보니 불면증에 시달리고 약으로 버티다가 겨우 숨이 쉬어지고 사람을 만나는 기간이 최소 3년은 걸리더라. 부재를 받아들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만큼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는 합동분향소가 단원고 인근에 마련됐다. 분향소 옆에 ‘유가족 대기실’이 있었다. 여기서 아이를 잃은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유가족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하고 또 위로를 받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보고 싶으면 영정과 위패가 있는 분향소로 곧장 달려가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구나’ 하며 안심을  하더라. 분향소라는 기점이 있으니 시민들이 끊임없이 분향을 오게 되고 유가족은 그 모습을 또 확인하면서 ‘우리 아이 죽음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죽음이구나’,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구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지지해 주는 이들이 있구나’ 하면서 우군을 발견하게 된다. 

■ 제대로 된 분향소가 없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고립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분향소-대기실 두 공간을 오가며 항시적으로 유가족과 시민을 만나면 결국 울어도 안전하고, 분노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된다. 안전한 공동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소 3년 (세월호 유가족) 커뮤니티가 유지됐다. 분향소를 외곽으로 뺐더니 유가족 중에서도 볼 일이 있는 분들만 방문하게 되고 결국 분향소는 사무적인 공간이 됐다.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구심이 사라진 시점이 분향소가 외곽으로 빠진 시점과 같이 간다. 분향소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 구심점이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세월호와 달리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제대로 된 분향소가 없다는 것은 곧 유가족이 ‘안전하게’ 슬픔과, 고통과, 울분을 터트릴 공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대가 너무나 한정적이다. 만남 자체가 드문 기회다. 그런 관점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훨씬 더 고립돼 있는 상태다.  

■ 세월호 참사와 또 다른 점이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차인 것 같다.

고통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토대가 굉장히 다르다. 중등 교육과정을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학여행에 대한 경험이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학여행은 가는 것이었고 그런 학생들이 희생된 것이 세월호 참사다. 물론 단원고 학생 이외 피해자도 있었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이었다. 배를 탈 수 밖에 없었고, 사고 당시 ‘가만 있으라’는 방송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들이 감정을 밀착했던 존재는 이처럼 학생이라는 존재였다. 세월호 참사는 비극적인 일이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직장에서 “쉬었다 오라”는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6~9개월간 생계비를 보전해 주는 사업장도 있었을 정도다. 이 시간이 굉장히 소중한데 이 시간동안 집중해서 슬픔을 나눌 수 있었고,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을 할 수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보면 희생된 사람들 상당수가 2030 세대다. 그 이야기는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또 다른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고, 현재 사업장이 마지막 직장인 경우가 많아 쉽사리 그만 둘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휴직을 직장에서, 정부에서 배려해 주는 분위기도 아니다 보니 어렵게 유가족 모임이 만들어지고 또 주말에 모여도 회의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회의하러 전국에서 오시니 2~3시간 이야기 하면 또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쓰나미처럼 닥치는 일을 대응하는 것 조차 버거워 마음 깊숙한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 결국 10.29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형국인 것 같다.

세월호 참사 100일 국면과 이태원 참사는 다르다. (세월호 참사 100일은) 여전히 사람들이 슬퍼해주고 애도해주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도 혐오나 모욕적 발언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물밀 듯 한 저항에 사과를 하거나 해명을 하거나 해야 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작업이 있었던 2014년 동안은 애도와 지지가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는 사고가 나자마자 ‘왜 이태원에 놀러갔니’, ‘놀러 간 사람이 책임이지’ 등 간 사람 자체가 사고 원인 제공자가 돼 이들에게 돌아가는 지원도 아까워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일상도 너무 힘든데 왜 도와야해?’ 이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가도 책임이 있지만 거길 간 사람에게, 그러니까 개인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참사가 났으면 국회나 정부가 진상을 규명할 거야’, ‘(특별법 제정에) 내가 서명하거나 동참하지 않아도 원인 규명 할거야’ 등 어떤 프로세스가 작용할 것이라 보는 것이다. 두 참사는 너무나도 다르다.

■ 참사를 바라보는 시민의 태도 못지 않게 정부의 대응도 사뭇 다르다.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정부보다 소통하지 않는것 같다. 정부도 지난 참사에서 배운 것이 있을 것이다. 관료 입장에서는 거센 요구를 어디까지 열어줘야 하는지 경험을 축적했을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감각이 다른 정부보다 떨어지는 윤석열 정부가 있는 것이고. 전 대통령 이명박, 박근혜는 정치인으로 활동한 시간이 굉장히 길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로만 살아와 정무적 감각, 행정적 감각, 정치적 감각이 없다.

참사를 둘러싸고 나오는 이야기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부터 ‘법적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기존의 정치인과는 다른 문법이 나오는 것이다. 법이라는 것이 ‘현행법’을 적용해서 문제가 되는 점만 골라내 처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참사는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이거나, 관료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복합적인 측면이 있는데 열 가지 원인 중 처벌 가능성이 있는 한 두가지로 좁은 시각으로 사안을 다루게 된다.

법적인 책임이 중요한 정부이다 보니 도의적 책임이나 정치적 책임이 중요하지 않다. 자진해서 물러나거나 권고 사퇴나 이런 결과가 없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유가족을 더욱 고립되게 만든다.

■ 참사를 부를 때 ‘이태원’이라는 장소성을 지워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어떤 참사를 숫자로 부르려고 할 때는 그 날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눈에 띄게 바뀌어야 한다. 9.11 테러를 많이 비교한다. 9.11, 이 날을 기점으로 미국 본토가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관점의 변화와 이슬람과의 대규모 전쟁이 시작되는 등 이전의 미국과 이후의 미국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맨해튼’이 공격 받은 것이 아니라 ‘미국’이 공격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맨해튼 테러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면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숫자로 부르는 것은 이 날을 기점으로 분명한 정치적 지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4.16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참사를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었다. 10.29는 다르다. 이 참사를 기점으로 질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없다. 

■ 참사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2007년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사고’는 사고 발생 후 거의 모든 언론이 ‘태안 기름 유출 사고’라고 보도했다. 삼성이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배를 예인해 오면서, 피하라는 경고도 어긴 상황인데 참사 이름에 삼성이라는 이름이 빠지면서 결국 삼성의 책임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삼성이 언론에 광고를 했다는 음모론이 생긴 것 아니겠나.

연구 결과 ‘태안 기름 유출 사고’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것이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 자연재해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사고’라고 했을 때 삼성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참사의 이름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는 물음의 대답이다. 10.29 참사에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 이태원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가 이번 참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50대 이상 주민에게 이태원은 대규모 미군 부대가 있던 곳으로 2030 세대와 정서가 다르다. 기성세대에게는 클럽이 많고, 마약 검사를 해야 할 만큼 불온한 공간이다. 이태원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혐오에 대해 저항하고, 오명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 것이지 참사 이름에서 장소성을 지울 수는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길거리 압사)매뉴얼이 없어서 대처 못했다”는 말을 했다.

압사는 운동장, 공연장, 경기장 이렇게 출입구가 한정된 곳에서 벌어지는 사고고 당연히 매뉴얼이 있다. ‘거리’에서 압사는 표현이 그렇지만 ‘후진적’ 재난이다. 이 말은 충분히 관리가 가능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태원은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 자택과 용산 대통령실 가운데 있는 공간이다. 경찰 병력이 나눠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장소를 지운다면 책임을 물을 사람이 제거된다.

■ 10.29 이태원 참사를 지켜보면서 ‘애도’는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된다.

애도는 기본적으로 돌아가신 분과 이별하는 과정이다. 그 사람과 내가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보내드리는 과정이다. 이 사람의 삶을 기리는 것은 남겨준 유산, 사회적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면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자고 추모하는 것이다. 애도의 과정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친했던 친구와 갑자기 이별했는데 하루, 이틀 문상 갔다왔다고 해서 친구야 잘가 하고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하물며 (10.29 이태원 참사는)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고 심지어 ‘고마웠어’, ‘잘 가’, ‘미안해’ 라는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난 것이다. 사회적으로 관리가 잘 됐다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는 억울함과 분함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왜 죽었는지 밝히고 싶은 것은 사람이 가지는 기본적인 감정이다. 누가 팔 부러져서 다쳤으면 즉각적으로 나오는 질문이 ‘어떻게 다쳤는데’인데, 하물며 사람이 죽었는데 어쩌다가 죽었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이게 있어야 떠나 보내는 과정이 받아들여진다. 부모는 이 과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다. 

■ ‘국가애도기간’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상(喪)의 과정이 3일, 5일이면 끝난다고 받아들이는 사회다. 빈소 차리고 문상하는 장례 과정 3일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합동분향소 5일 동안 문상했으니 애도도 끝났고, 추모도 끝났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적 상(喪)은 유가족의 상(喪)과 전혀 다르다. 애도와 추모는 누구를 중심으로 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서 추모를 하는가. 유가족을 중심에 두고 애도와 추모를 해야 한다. 일단 사회적 상(喪)의 과정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3년 상을 치른다는 마음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고, 이 법에 근거해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진상이 규명되는 시간 동안 합동분향소를 운영하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난 뒤에 철시하는 것 그것이 사회적 상(喪)이다.

왜 이 참사만 이렇게 추모해야 하냐는 질문도 있다. 밀양세종병원 화재 참사,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등 다른 재난은 이렇게 애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공평하다는 반응도 있다. 너무나 이해가 간다. 수도권에서 발생한 참사라 사회적 관심을 더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실도, 국회도, 그리고 시민사회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일수록 시민사회가 애도와 추모에 동력을 갖추기가 싶지 않다. 여기서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재난을 사회적 상(喪)으로 다뤄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유산이라고 하면 재난이라는 것은 빨리 털고, 딛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에서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것이고, 기록해야 하는 것이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고 바뀐것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사회적 상(喪)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불평등, 불공정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상설적 재난조사기구를 두고 모든 재난을 사회적 상(喪)으로 다뤄야 한다.

■ 현 시점에서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도 ‘독립적’인 재난조사기구를 설치해서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굉장히 전문적인 그러니까 사안도 잘 알고, 법도 잘 알고, 제도도 잘 아는 사람이 독립적으로 지휘관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월호는 너무나 특별해서 특조위가 꾸려졌지만 나머지 재난은 그렇지 못했다. 상설적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어 일상의 모든 사회적 재난을 투명하게 다뤄야 한다. 유가족들이 결과를 믿지 않는 이유는 조사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이 투명하지 않으면 당연히 결과를 믿을 수 없다. 재난조사기구를 운영할 때는 극도의 보안 사안이 아니면 공개해야 한다. 유가족의 참여 역시 중요하다. 어떤 부분의 조사가 필요한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유가족이 가지고 있는 의문으로부터 조사의 목록을 만들어 그 질문을 해소해 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투명성과 참여성이 중요하다. 이게 돼야 결론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수용이 가능하다. 

■ ‘피해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도 여러차례 강조해 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이후 유가족을 집단적으로 만나 본 적이 없다. 행정부 고위 관료가 집단적으로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지 들은 적이 없다. 유가족이 모일 수 있고, 연락처를 확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할 두 번째 일은 유가족을 논의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세 번째 일은 혐오의 발언, 조롱과 비하의 발언에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게, 물류창고 화재로 돌아가신 노동자에게 쏟아진 혐오 댓글에 경찰은 이례적으로 수사를 하면서 대처했다. 비판과 혐오는 차원이 다르다. 초반부터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와 근거 없이 희생자를 비하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나.

사회적 상(喪)을 기다려 줘야 한다. 재난이라는 측면에서 왜 죽었고, 누가 책임이 있고, 이 과정을 밝히는 시간을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목격자다. 가만히 두고만 보면 안 된다. 가해자가 하는 행위를 묵인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신호이기 때문에 목격자인 시민은 적극적인 사인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가해자는 멈칫하게 되는 것이고, 피해자는 지지를 얻어 우리의 주장이 않았음을 확신하게 된다.

누구의 편을 드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얼마나 위험을 방치해 불안전한 상태였는지를 묻는 것이고, 이것은 죽은 사람이 불쌍해서 무언가를 해준다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서 내가 안전하기 위해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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