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줄 줄 알았던 사랑스러운 청년 고(故) 진세은씨
사랑을 줄 줄 알았던 사랑스러운 청년 고(故) 진세은씨
할머니·외할머니 주겠다며 고구마무스 샐러드, 계란장 담아 옥천행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했던, 고민 많았던 20대 청년
  • 이현경 기자 lhk@okinews.com
  • 승인 2023.02.10 14:14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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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진세은씨의 일기장과 소지품. 언니 진세빈씨와 반지를 나눠꼈다. 

유가족 진세빈(24)씨는 시종일관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다가 동생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제야 웃었다. 유가족 전체를 대표할 수 없는 본인 상황을 인터뷰 내내 강조하면서,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도 조심했고 행여나 말실수를 할까 말을 천천히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동생 이야기는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티 없이 맑지’ 이런 말을 들어요. 악의가 없고 모두에게 친절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들도 좋아하고, 친구도 많죠.” 

연년생 자매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툼이 없었던 ‘쌍둥이’ 같았던 자매는 다이소에서 파는 스티커 타투를 손목에 나눠서 붙이고, 꽃반지를 커플링으로 끼고 다닐 정도로 가까웠다.

한 살 차이지만 언니 진세빈씨는 대한민국 K-장녀의 무게(?)감이 있었고, 막내 진세은씨는 집안 내 분위기메이커였다. 

세빈씨는 3살까지, 동생 고(故) 진세은씨(사망 당시 22세)는 2살까지 옥천에서 살았다. 3살, 2살에게 옥천 기억이 있을리 없다지만 이들은 옥천에서 쌓은 추억이 한가득이다. 할머니댁과 외할머니댁이 모두 옥천에 있고, 한달에도 몇 번씩 고향을 방문하는 부모님을 따라 옥천을 자주 방문했다. 서울에서 초,중,고를 졸업했지만 세빈씨와 세은씨에게 ‘고향’은 ‘옥천’이다.

‘사랑을 줄 줄 알았던’ 동생 세은씨의 할머니, 외할머니 사랑은 지극했다. 70대 할머니들이 좋아하실 부드러운 음식을 직접 만들고 바리바리 싸서 옥천을 찾았다. 대전역에 들러 성심당 빵을 샀는데 사실 이건 세은씨가 아닌 세빈씨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시간대가 잘 맞으면 무궁화호를 탔고, 안 맞으면 607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고구마무스샐러드 진짜 기가막히게 만들어요. 계란장도 잘하고요. 할아버지께서 7년 전 쯤 돌아가셨는데 할머니께서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셨나봐요. 세은이가 그거 알고 더 자주 찾아뵈었어요. 재작년 추석 때 제가 코로나19에 걸려서 부모님도 이번 추석 때는 옥천 가지 말자고 했거든요. 세은이가 자기 혼자서라도 가겠다며 진짜 혼자 기차타고 갔다 왔어요. 할머니, 외할머니 집에서 놀다가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놀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식품도 사먹고 저도 세은이도 옥천에서 추억이 많습니다. 옥천을 참 좋아했어요, 우리 세은이가.”

세은씨의 전공은 정보통신학이다. 전공은 전공 대로 공부하고,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에도 관심을 가졌다. 언니 진세빈씨 입장에서는 ‘별안간’ 공무원이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도 했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20대 초반 청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언니 세빈씨는 휴학을 권했고 학교 밖 사회를 경험하면서 길을 찾아가길 권했다. 길을 찾는 첫 과정은 유럽 여행이었다. 세빈, 세은 자매는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이번 겨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세빈씨도, 세은씨도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여행 경비도 제가 더 많이 보태고, 여행 준비도 제가 더 많이해서 제가 뭐라고 했거든요. ‘알았어, 나도 할게’ 했었는데…. 친구들한테 언니랑 여행간다고 자랑을 엄청 했었데요, 나중에 알았는데.”

진세빈씨는 <옥천신문>과 인터뷰하는 결정적 이유로 옥천주민들이 동생 진세은씨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동생이 정말 옥천을 좋아했어요. 그런 옥천에서 동생을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멀리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라 나와 상관없는 일로 느끼실 수 있지만 알고 보면 피해자가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고 알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