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하나 없이 폭력적으로 진행된 국가애도기간, ‘애도의 통제’
영정사진 하나 없이 폭력적으로 진행된 국가애도기간, ‘애도의 통제’
유가족과 상의 없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 설치한 정부
시청 광장에 유가족이 분향소 설치하겠다고 하니 안된다는 서울시
“누구를 위한 애도인가, 국가가 허락한 애도만 강요하는 꼴”
  • 이현경 기자 lhk@okinews.com
  • 승인 2023.02.10 14:06
  • 호수 167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세빈씨. (사진제공: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첵회의)
진세빈씨. (사진제공: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합동분향소는 오늘(2022년 10월31일) 중으로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를 완료하여 11월5일까지 조문객을 받을 예정입니다’

정부는 10.29 이태원 참사 이틀째 날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조기를 게양했다. 공직자는 애도 리본을 달았고, 공공행사는 줄줄이 취소·연기됐다. 정부의 합동분향소는 ‘서울시청 앞 광장’ 한켠에 마련됐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를 잃고, 병원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르기 바빴던 유가족은 분향소를 마련할 생각도 할 수 없는 이른 시점이다. 2022년 10월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다수 언론 보도를 통해 예방이 가능했던 참사로 ‘인재(人災)’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던 시점이기도 하다. 

정부가 합동분향소를 차린 10월31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야 할 국가 애도기간으로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수많은 질문이 날아들 시점에 마련된 애도기간은 대통령이 질문을 받지 않도록 하는 명분이 됐다. 같은 날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역시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이라며 전날 있었던 이상민 장관의 책임회피성 발언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았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은 곧장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의 합동분향소는 수백송이의 국화가 대신했다. 단 한 명의 피해자 얼굴도, 이름도 정부 분향소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 따르면 정부는 단 한 명의 얼굴도 걸 수 없었다. 분향소 운영을 두고 유가족과 협의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애도인가’, ‘보여주기식 분향소 설치’ 등 비판이 따랐다.

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정부의 국가애도기간의 방점이 ‘애도’에 있지 않고 ‘기간’에 있다고 지적한다. 유가족에게 슬퍼할 시간을 ‘제한’한 것이다. 유가족이 직접 꾸린 분향소가 있는 녹사평역 일원에 극우단체의 ‘국민들에게 더이상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는 구호와 현수막이 나오게 된 배경 역시 애도의 통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보고, 듣고, 느낀 유가족 전세빈씨는 국가애도기간을 “국가의 폭력”으로 평가했다. 

“정부의 대외적 소통 채널은 지금도 없습니다. (참사 직후) 위패도 영정도 없는 정부 분향소는 말 그대로 폭력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애도’라는 단어를 국민께 보이고, (참사의 원인을) 숨기고, 이 상황을 빨리 끝내기 급급했습니다. 보여주기식 애도는 유가족이 마련한 녹사평역 분향소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도둑 조문’을 온 것부터 문제였죠. 조문 오는 시간을 미리 알았다면 더 많은 유가족이 총리며, 장관이며 기다리고 있었을 거예요. (할 말이 많은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게 어딨냐는 원망만 나왔어요. 그런데 그날 한덕수 총리가 분향소 옆에 있는 극우주의자들에게 ‘악수’를 하고 갔어요. 그 악수가 어떤 의미였을까요? 말로는 애도를 한다면서 도둑 조문에,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혐오를 쏟아내는) 극우주의자와 악수를 하는 행동이 어떻게 같을 수 있나요? 이 정부 관료들은 말과 행동이 너무 다릅니다.” (진세빈씨)

‘분향소’를 둘러싼 국가의 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 분향소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만들었다. 녹사평역에서 자리를 옮겨 유가족이 분향소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만들려고 했지만 서울시는 허가를 내지 않았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4일,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를 광화문 광장에서 열려고 했지만 서울시의 불허로 어렵게 되자 기습적으로 시청 앞 광장에 시민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협의회와 서울시, 경찰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서울시는 6일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에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냈다. 광화문과 서울시청 앞 광장을 불허한 서울시가 마련한 공식적인 10.29 이태원 참사 시민 추모 공간은 녹사평역 ‘지하 4층’이다.

“10.29 참사 추모대회를 광화문에서 하려고 했는데 서울시에서 당일 한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기로 해서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대요. 그 방송국에 협조 공문을 보냈는데 오전에만 촬영하기 때문에 (추모대회가 열리는) 오후는 상관이 없을 것 같다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그런 답변이 왔대요. 이걸 근거로 광화문 사용하겠다고 해도 서울시는 방송국 핑계로 안 된다고만 한 그런 상황이에요. 서울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으로 계속 몰렸어요. 그런데 이런 사정을 잘 모르시는 시민들이 유가족이 무작정 떼를 쓰는 것처럼 보실까봐 걱정이에요. 서울시도 이 참사에 책임이 있잖아요. 시청 앞에 분향소가 있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전혀 방법이 없었던, 절박함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진세빈씨)

“죽을 각오로 (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 설치하러) 갔지만, 현장에서 진짜 죽을까봐 무서웠습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필요했던 기동대가 (4일) 유가족들을 막아섰더라고요. 분향소 설치 못하게 하려고. 언론 보도 보니까 기동대 숫자가 몇 천 명이라고 하던데 이태원에는 왜 없었을 까요. 경찰기동대와, 유가족, 시민까지 합쳐서 몇 만 명이 부딪혔고 그 인파에 끼여서 우리 세은이가 느꼈을 압사의 공포를 저도 느꼈습니다. 세은이가 느꼈던 고통의 1천분의 1도 안 됐을 건데 순간 무서워하는 제가 너무 미웠어요. 세은 아빠가 들고 있던 세은이 영정사진을 제게 쥐어 주고 경찰 쪽으로 몸을 날렸고, 저는 세은이 부서질까봐 들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같이 밀고 있었어요. 경찰 지휘부로 보이는 사람이 눈에 보이니까 저도 모르게 ‘세은이 살려내. 세은이 22살이야’ 이런 소리가 나왔어요.” (고모 진아무씨)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에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를 설치했다. (사진제공: 행정안전부)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에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를 설치했다. (사진제공: 행정안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