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의 마지막 알 수 없는 ‘정보의 통제’
내 가족의 마지막 알 수 없는 ‘정보의 통제’
방역과 안전 관련 유관기관 대책회의 해왔던 용산구, 인파 집중 예측 가능
‘오후 6시34분 112 첫 신고’ 참사 일어나기 3시간 전, 참사 막을 골든타임 놓쳐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 목격자 진술 확보 커녕 공공정보 공개도 소극적
  • 이현경 기자 lhk@okinews.com
  • 승인 2023.02.10 14:01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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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튿날(2022년 10월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10월31일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핼러윈 데이에 사람이 모인 것은 어떤 하나의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11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역시 “막연하게 정부의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유가족들은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발언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를 두고 “이태원에 간 사람이 문제”라는 잘못된 인식을 낳았다는 것이다. 

책임자들의 주장과 달리 10.29 이태원 참사는 막을 수 없는 사고가 아니었다. 용산구 보도자료를 보면 2020~2021년 ‘구청장 주재’ 핼러윈 데이 관련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었다. 코로나19 방역과 시민의 안전을 위한 기관별 역할 분담이 사전에 오갔다. 참사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부구청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특별 방역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회의였는데 평년과 달리 하나가 추가됐다. 참사 전날(10월28일) 용산구는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 재확산, 마약류 사건·사고 우려되는 엄중한 시기인 만큼 주민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강조한 ‘마약과의 전쟁’이 새롭게 언급됐다.

통상적으로 진행된 핼러윈 관련 대책회의는 용산구가 다년간 경험을 통해 이 기간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측은 했지만 참사 당일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112 첫 신고 접수 시간과 경찰, 소방의 대응 시간 사이 괴리가 근거다. 경찰이 공개한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112 최초 신고는 ‘오후 6시34분’이다.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이 발표한 참사 시작 시점인 ‘밤 10시15분’ 보다 3시간41분 앞선 시간이다. 

112 최초 신고자는 직접적으로 ‘압사’를 언급했다. 신고자는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 데 너무 불안하거든요. 그니까 사람이 내려 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 당할 거 같아요. (중략)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 골목으로 다 들어가요. (중략) 지금 아무도 통제 안 해요.” 오후 8시7분 신고자는 현장에서 사람이 다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신고자는 “여기 사람들이 인원이 너무 많아서 정체가 돼 사람들 밀치고 난리가 나서 막 넘어지고 난리가 났고 다치고 하고 있거든요.” 오후 8시53분 신고자는 압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신고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 당할 것 같아서 ... 좀 부탁드릴게요. (중략) 사람들이 압사 당하고 있어요 거의.”

참사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대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사실상 전부 놓쳤다. 다수 언론보도와 국정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참사 당일 이태원에 배치된 정복을 입은 경찰 인력은 38명이 전부였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이태원 관광특구’는 참사 당일 오후 6시 유동인구 3만3천명을 넘어섰다. 정복 경찰 한 명당 869명의 인력을 통제해야 했던 셈. 참사 직전인 밤 10시는 유동인구 5만7천명을 돌파했다. 옥천군 전체 인구보다 많았던 상황. 집회에 출동했던 교통기동대(20명)가 밤 9시30분~10시 이태원에 투입됐다고 해도 정복 경찰 한 명당 983명을 통제해야 했던 상황으로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집회 대응을 위해 녹사평역 인근에서 경찰기동대(60여명)가 대기중이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기동대는 밤 11시가 넘어서 이태원에 출동했다. 

특수본은 예측이 가능했던 참사였던 점을 인정했고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와 용산구, 용산소방서 등 관련 기관의 적절한 조치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13일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 결과 발표 때 공개된 정보를 보면 사고 발생 당시 현장에는 1㎡당(0.3평) 6~10명이 서 있었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받는 힘은 약 224~560kg 가량이다. CCTV 분석 결과 사고가 발생한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는 저녁 10시25분께 가장 많은 사람이 있었다(1㎡당 10.7명). 전문가들은 1㎡당 5명이 한계치라 말하는데 한계값의 2배보다 많았던 것이다. 군중 밀도가 높아지면서 ‘군중 유체화(의지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태)’ 현상이 발생했고 골목으로 떠밀려 온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사인으로는 압착성 질식사, 기도 폐색질식사, 뇌손상 등이 거론됐다.    

‘언론’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소식이 쏟아지지만 정작 유가족이 정부로  부터 ‘공식적’으로 들은 부분은 없다. 참사를 조사하는 ‘과정’에 유가족의 ‘참여’가 부재했고,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카메라 앞에 섰을 뿐이다. 

4.16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159명의 피해자 각각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었고 생의 마지막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유가족이 알지 못한다. 쏟아지는 언론 보도와 특수본의 수사, 국정조사 결과가 개개인 생의 마지막을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이태원 도심 곳곳에 달린 CCTV, 인근을 지났을 지도 모를 차량의 블랙박스, 최대 인파 10만명이 몰렸다는데 이 안에서 내 가족의 마지막을 봤을 수도 있는 목격자, 뒤늦게 참사 수습에 나선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달고 있을지도 모를 바디캠 등 유가족에게는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 하룻 밤 사이에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유가족이 늦게나마 이별을 준비하려면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아는 것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핼러윈 데이 당일 저는 지인들과 홍대에 있었어요. 이태원 쪽에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홍대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11시가 조금 넘으니 부모님에게 괜찮냐는 연락이 왔어요. 부모님도 그때쯤 이태원 소식을 들으셨던 것 같아요. 동생에게 연락이 안 된다면서 걱정하는 부모님을 달래며 택시를 타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택시가 너무 안 잡혀서 집에 도착하니 새벽 0시30분(10월30일, 참사 다음날)이었어요. 겉옷을 입고 집을 나서려는 부모님을 마주쳤는데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나가시려던 참이었어요.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긴급 수술을 마친 동생을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어요. 동생의 얼굴을 보고 그제야 큰일이 났다는 체감을 했습니다.” (진세빈씨)

“동생이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수혈을 많이 했대요. 듣기로는 200개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정확한지는 확인을 안 해봤어요. 혈액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정헌혈’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고 SNS를 통해서 헌혈을 부탁했어요. 하루 사이에 정말 많은 피가 모였다고 해요. (…) 동생은 참사 3일째 되는 날 가족의 곁을 떠났습니다. (…) 슬퍼 할 시간 보다는 (참사 당일) 동생의 상황을 아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저는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구급일지’를 받았습니다. 동생의 24시간 행적을 찾아 다닌 건데 구급일지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CPR을 제대로 받은 건지, 언제 이송이 된 건지... 저만 이런 상황이 아니라 유가족 대부분이 마지막 행적을 알지 못합니다.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진세빈씨)

“정부가 첫 단추부터 잘못끼웠기 때문에 모든 기관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이상민 장관의 첫 발언부터가 잘못됐고, 근조없는 리본이 그 다음, 위패가 없는 정부 분향소까지 (이런 분위기인데) 어떻게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내 가족을 검안한 의사에게 마지막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한 유가족이 있는데 바로 전화를 끊었다고 해요. 소방관 면담은 트라우마 때문에 못 만난다고 합니다. 유가족이 의사 면담 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마지막을 묻고 싶고, (나 대신) 마지막을 봐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어도 못해요.” (고모 진아무씨)

한편, 동생에게 보내준 사랑은 사랑으로 되갚았다. 진세빈씨는 오랫동안 길러온 머리를 잘랐다. 소아암 환자에게 써달라며 40cm 가량 머리카락을 ‘어머나 운동본부’에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