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검침원 노동자지위확인 소송 판결문 분석] 법원, 업무 지시·사실상의 징계권한 가진 군 “상당한 지휘·감독” 판결
[수도검침원 노동자지위확인 소송 판결문 분석] 법원, 업무 지시·사실상의 징계권한 가진 군 “상당한 지휘·감독” 판결
업무 보고 의무·24시 비상연락망 유지·실질적으로 고정된 보수 등 노동자성 인정 근거 쏟아져
도급계약 형식, 4대 보험 미가입 등은 군이 ‘우월한 지위 이용해 임의로 정한 것’
  • 허원혜 기자 heowant@okinews.com
  • 승인 2022.04.29 15:05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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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법원이 옥천군 수도검침원은 군의 지휘·감독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임을 인정했다. 

공개된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군이 수도검침원에게 업무를 지시해왔다고 인정하고 사실상 징계권한과 이를 통해 계약해지까지 할 수 있는 상당한 지휘·감독권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그밖에도 수도검침원이 군으로부터 업무를 위한 핵심 장비를 받아 사용했고 독립 사업자처럼 고객을 유치해 추가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없었던 점,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채용공고와 비슷한 형식의 모집공고를 통해 이 일을 하게 된 점 등 여러 가지 사유가 인정됐다. 

반면 옥천군이 주장했던 ‘수도검침원이 근무장소와 시간을 자율적으로 택할 수 있었고, 겸업을 해 노동자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약서에 따라 군이 실질적으로 근무장소와 시간을 정할 수 있었고 겸업의 경우 노동자성을 부정하기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옥천군과 수도검침원이 체결한 계약의 주요 내용에 따르면 검침원들은 월1회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해 고지서를 받고 업무수행을 위한 공통 지시사항과 개별 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 이외에도 옥천군 공무원으로부터 유선 혹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업무지시를 받았다. 

군은 노동자성을 확인할 수 있는 ‘상당한 지휘·감독’ 권한으로 볼 수 있는 징계 권한도 사실상 갖고 있었다. 

계약서 제9조(해지) 제2호는 임무를 해태하여 관리자로부터 3회 이상 경고처분을 받은 경우 계약 해지 또는 재계약 제외사유가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이러한 근거를 들어 수도검침원이 실질적인 종속관계에 있다고 봤다. 

그밖에도 옥천군을 사용자로 볼 수 있는 근거는 계약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4조(임무) 제5호, 7호, 9호, 제8조(사고의 책임) 6항에 따라 수도 사용량의 30% 이상 변동이 있을 경우와 수도검침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사고 등이 발생하였을 경우, 군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제4조 10항에 따라 항시 연락이 가능하도록 비상연락체계를 유지 해야 했다.

■검침시간, 검침구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었다는 옥천군 주장 받아들여지지 않아

옥천군은 소송 중 “근무 장소와 근무시간을 지정하지 않았다. 스스로 검침구역을 정한 뒤 자신이 원하는 일자 및 시간대에 검침업무를 수행했다”며 “일부 검침원은 다른 업무를 겸업했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근무장소와 근무시간을 지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부정했다. 

법원은 우선 출퇴근시간을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고 검침원 스스로 일자, 시간을 정해 업무를 수행했던 것은 업무가 사업장 외부에서 이뤄지고 소비자 마다 검침 가능 시간대가 달라 노동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계약서에 따라 검침 및 고지서 배부의 경우 매월 10일부터 20일까지, 검침자료 전산입력의 경우 매월 21일터 23일까지 엄격하게 지정된 시기 및 기간에 업무를 수행하여야 했다고 반박했다. 회의 및 고지서 수령 등을 위해 일정한 시기에 상하수도사업소 사무실로 출근해야 했던 사정까지 고려하면 근무 시간 및 장소에 상당한 구속을 받은 것이라고 봤다. 

검침구간을 정하는 권한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서 제3조(검침대행구역)은 “담당구역은 관리자가 지정하는 수용가(소비자) 소재 지역으로 한다”고 명시해 종국적으로 군이 검침구역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석했다. 

일부 검침원이 겸업을 통해 별도의 소득을 벌어들였고 이를 제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두고는 노동자성을 부정할 만한 이유로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원고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동안 계약을 갱신해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을 인정했다. 일부 수도검침원이 별도의 소득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는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이유로는 부족하다”고 명시했다. 

■옥천군 “법원 판결 나온 이상 고용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그밖에도 수도검침원의 노동자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많았다. 법원은 검침원이 스스로 노력해 고객을 새로 유치하거나 업무 양을 늘려 수입 규모를 확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이 독립 사업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군이 PDA 단말기 및 수도검침장비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복비로 연 25만원을 지급한 사실 역시 근거가 됐다. 차량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옥천군 주장한 것은 충분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보수는 검침단가에 검침전수를 곱한 금액인데다 담당구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매월 지급되는 수수료가 실질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고 봤다. 군은 복리후생적 급여로 매월 정액의 교통비 및 급식비를 지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볼 때 보수의 성격은 노동을 제공한 데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고 봤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채용공고 형식과 유사한 모집공고를 냈던 것. 계약서 제9조 제4호에 따라 상한연령을 만 60세로 정한 것도 노동자성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꼽았다. 

군이 우월한 지위에서 검침원들과 위장도급계약을 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성했다고 볼 수 있는 비판 지점도 있다.  

법원은 취업규칙이 존재하지 않고 군이 검침원들을 위해 고용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등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라며 “군이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정들”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군 자치행정과 이문형 과장은 수도검침원 고용 여부를 두고 “법원 판결에 따라갈 수 밖에 없다”며 “고용 방식은 검토중이다” 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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