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면 화동리] 17대호 이어진 이천서씨 집성촌
[청성면 화동리] 17대호 이어진 이천서씨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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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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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동리 전경

음력 8월이 되기 전 7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청성면 화동리에 사람들이 몰린다. 인근 대전은 물론 서울.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몰리는 사람들의 행렬을 바깥에서만 보고 판단하려면 도저히 답을 낼 수가 없다.

이날은 화동리의 넓직한 마을주차장은 물론 심지어는 19호 국도변에도 차량이 밀리고 도로변 주차도 다반사로 이루어진다. 이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분모는 이들 모두가 이천서씨 문중이라는 점이다.  이날 모이는 사람들의 수효는 평소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수보다 훨씬 많다.

이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매년 마을 내에서 합동으로 정해놓은 '벌초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택해 벌초를 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이전까지 소 문중끼리는 잘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도 벌초를 함께하고 난 후부터는 집안 어른의 얼굴을 알게 되고 같은 문중이라는 동질감도 형성하게 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많아졌다.

벌초하는 날을 정해 운영한 이후 이날은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음력 10월 시제나 여느 명절보다도 더 큰 명절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 한가지 이곳에서는 60년대부터 전해져온 합동시제가 아직도 올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옛날보다 거주하는 주민들의 수가 훨씬 줄어든 요즘. 명절 때에는 제사를 모시러 귀향하는 출향인보다 오히려 제사를 지내러 타지로 가는 주민들이 많은 현실에 비추어볼 때 '벌초하는 날'과 합동시제 때는 반대로 마을로 들어오는 주민들이 많다는 점이 문중을 틈실하게 이어가는 지주이기도 하다.

마을에는 현재 44가구 1백45명의 주민들이 거주한다. 서성훈 지도자가 포도와 사과를 재배하고 있는 것을 비롯, 마을 내에 이제 한 두 농가씩 포도재배 농가가 생기게 되었다.  본래 마을터는 지금과 같은 국도변이 아니라 골짜기 안에 있다하여 '골안'이라고 불리운 곳에 위치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마을은 국도변으로 내려왔고 이제 마을 본동 외에 소화동(작은 화동)에 2가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을의 옛 지명은 '되기'라 했다. 주민들은 '한 말만 되면 다 넘쳐나간다'는 뜻에서 일정량 이상의 재물을 모으는 형세라고 전한다. 그래서 큰 부자는 없단다.  마을을 '되기'라고 해왔던 한편 장군이 태어날 터라 하여 일제 침략기 당시에 일본인들이 맥을 끊었다는 '피지재'가 마을 뒤에 있다.  액을 끊을 때 피가 나왔다고 피지재라고 하는 이곳은 농조에서 대안리로 나가는 장연저수지 수로공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넓은 길로 변했으나 그 이용도로 볼 때 주민들의 필요에 의한 길이라고는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피지재를 메워야 마을의 맥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주민들이 많다. 마을 뒤 산허리를 잘라 돌아나간 수로에 대해서도 사람 얼굴에 줄을 그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중 7∼8가구를 제외한 가구가 이천서씨로 이루어져 있으니 서씨 집성촌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이천서씨의 낙향은 조선 단종대에 이루어졌다.

화동리에 자리잡은 후 17대손까지 내려왔다. 1대를 30년이라 해도 4백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밭작물이다. 특수작물이라야 담배농사를 짓는 6농가 정도이며, 고추농사가 일반적인 밭작물 가운데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인다. 터널재배를 위한 고추작목반(회장 서만범)이 지난해 10월에 이루어진 것은 그동안 전통적인 노지고추만 재배해온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큰 자극제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군내 여느 마을에는 많이 보편화되어 있는 과수재배도 이 마을에선 이제 시작이다. '농법이 다른 곳보다 10년은 더 떨어져 있다'고 말하는 서만범 이장의 말을 빌면 고추 터널재배를 통해 병도 덜하고 생산량이 많은 새로운 재배방법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마을 내에는 화동 청년진흥회(회장 서성훈)가 있어 마을의 크고 작은 대소사나 애경사를 주도적으로 맡아 처리하고 있으며, 출향인 모임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서씨들의 고향계와 대전지역의 고향계가 있다.  특이하게 대전지역 출향인 가운데 장남들만이 모이는 장남계가 알려져 있다.  대를 이은 서기환, 서강돈 전 군수를 비롯, 군의원을 지낸 서문범씨와 서강학, 서성효씨 등 전임 면장 등이 화동리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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