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식의 장터에 가다] ‘진안고원’ 오일장을 가다.
[이명식의 장터에 가다] ‘진안고원’ 오일장을 가다.
이명식 (옥천읍 가풍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19.06.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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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이산 저산으로 뻐꾸기울음 애달프게 하늘길을 열었다. 4번 국도를 지나 19번 국도를 깨웠다. 다시 30번 국도를 따랐다. 그다지 빠른 속도도 아닌지라 이따금 창문을 열었다. 계절은 봄의 끄트머리에서 초여름에 걸쳐있어 아카시아 꽃은 어느새 그 향기 바람 끝에 여물고, 서러운 이름에도 쥐똥나무 꽃향기가 코끝에 맑다. 잘린 땅 낮은 언덕으론 불 밝히던 찔레꽃이 푸름에 묻혔다. 
벌써 연두가 짙어 초록이 싱그러운 날이다. 어제부터 내리는 비는 아침에도 오락가락했다. 가뜩이나 마당의 잔디가 비비 돌아가는 때 마침 반가운 빗질이다. 마이산을 끼고 있는 진안 오일장엘 가는 길이다. 갈 때는 영동, 무주를 거쳐 갔다. 몇 번 갔던 길이라 그다지 낯설지가 않았다. 가는 길에 가끔 쉴 때는 본 적도 없는 그곳 사람에게 말을 걸곤 하였다. 무주를 지나면서 슬슬 맛깔스러운 전라도 말투에 익숙해졌다. 봄과 여름이 더디 오는 산골, 들녘에는 늦은 모내기로 트랙터가 고요한 정적을 깨며 싫지 않은 흙탕물을 일으켰다. 진안은 인근 호남지방에서도 해발이 높은 지역의 분지이다. 전체 면적의 80%가 산림이며, 호남의 지붕 ‘진안고원’이라고 이름한다.

진안읍 내 진안천의 시장 다리를 건너 진안 오일장이 선다. 이곳에는 고원 상설시장이 있고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시골에서 조금씩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팔 수 있게 할머니들만을 위한 ‘할머니 장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장에는 아마도 근처 마을의 할머니들이 다 나온 것 같았다. 시장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벌써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노래자랑을 하는 듯하였다. 한 여가수의 가냘픈 목소리가 발길을 끌었다. 나이 지긋한 남자는 가락에 맞춰 몸을 흔든다. 약주를 한두 잔 걸쳤는지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모양이다. 마냥 행복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는 할머니들은 가지고 온 물건 파는 것을 잊어버린 듯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래서 장날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장 구경을 나온 나도 그 속에 나를 세워두고 한동안 빠져들었다. 얼마 후 음악이 끊기고 다시 장은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멈췄다 돌아가는 레코드판 같았다.
 오일장에는 풋마늘이 많이 나왔다. 좀 게으른 사람들 챙겨가라고 오이, 가지 등 채소 모종이 막바지로 진열되어 있었고 옥수수 모종은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많았다. 진안은 전라도에서도 내륙에 위치한 산골이라 그런지 생선 장수가 눈에 많이 띄었다. 빙빙 돌아가며 파리를 쫓는 바람개비가 나를 멈춰 세웠다. 부모와 함께 장사하는 아들인 듯 젊은 청년이 입담을 한다. 보지만 말고 한 손 들여가라고 성화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럴 만도 하건만 아직 갈 길이 바쁘다. 그런 핑계로 야멸스럽게 돌아섰다.

시장을 돌며 맛보는 먹거리는 언제고 꿀맛이다. 가격도 그러려니와 들밥을 먹는 기분이다. 시장 한쪽 이것저것 빵 종류를 파는 난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옛날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시던 간식이 살포시 떠올랐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어머니의 시룻번을 한참 음미하고 있던 터였다. 두 개에 3천 원 하는 술빵을 집어 들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도 않고 입에 물고 다녔다. 시장을 한 바퀴 돈 뒤 점심을 먹자고 한다. 옥천을 떠나올 때 싸 온 김밥이며 빵 그리고 사과, 달걀로 요기를 하면서 온 지라 그다지 배는 고프지가 않았다. 그래도 진안의 맛을 새기고 가야 한다기에 미리 눈에 넣어두었던 뚝배기집에서 선짓국밥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하였다. 격식을 차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딘가 사치스러웠고 장날을 찾아다니는 입맛에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선짓국밥을 시켜놓고 옆자리에 앉아 콩나물해장국을 먹는 분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처남과 매형, 누나와 동생 사이인 것 같다. 장날을 택해 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고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먹는 모양이었다. 전라도의 어감으로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몹시 찰지다. 
시장 옆을 흐르는 물은 진안천이라고 했고 진안의 특산품이 무어냐고 물으니 콩나물국밥에 반해 듣질 못한 것 같다. 보다 못한 주인아주머니가 말 중매를 한다. 별거 아닌 것을 묻는다는 듯 되레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옥천에서 왔다고 하니까 아주머니(누나)는 대뜸 물 맑은 곳이라고 응대했고 나는 이곳 진안 사람들이 환경 보전을 잘 해주어서 그렇다고 웃어넘겼다. 아주머니는 또 옥천 하면 육영수 여사가 떠오른다고 하면서 최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난 행보가 안타깝다며 끌끌 혀를 찼다. 달랑 묵은 총각김치와 점심으로 깃들인 선짓국밥을 깔끔하게 한 그릇 다 비웠다. 똑같은 재료이지만 전라도의 맛은 어딘가 달랐다. 그것이 손맛이고 토속적인 맛이려니. 뚝배기집에서 나 또한 내 누님의 맑은 미소에 살포시 젖었다.
진안의 특산품으론 아무래도 인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근 금산에 밀려있기는 하지만, 금산의 땅이 이미 인삼재배로 인하여 기력을 많이 잃은 상태라 토질과 풍토가 비슷한 진안이 얼마 전부터 인삼의 특산지로 주목받아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금산의 수삼에 맞서 홍삼으로 차별화 해오고 있다. 홍삼을 특산품으로 내세워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곳곳에 진안홍삼을 알리는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만큼 홍삼 가게도 많이 눈에 보였다. 아마도 인삼 수확 철에는 진안장 어디를 가나 인삼이 가득하리라. 인삼의 고장 ‘진안고원’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연평균 기온이 전주보다 3℃ 정도 낮다고 한다.
진안읍 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진안읍 중심지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한국의 명품 마이산이 자리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라 말의 귀 사이를 비집고 탑사까지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였다. 그래도 아쉬움에 가까이 가보기로 하였다. 마이산은 남우세스럽게 알몸을 드러내고 내리는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산 저편 탑사의 돌탑들도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었다.
내비게이션도 함구하고 있는 곳이다. 

사람들에게 물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찾아갔다. 진안에서 전주 방향으로 가다 서기를 몇 번 하며 묻고 또 물었다. 이윽고 구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길이 나면서 지금은 관광 온 차들이 들려가는 곳으로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광고와 영화, 드라마의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못지않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푸른데 용담댐 둘레로 새로 난 길에는 특이하게도 붉은 단풍나무 가로수가 일품이다. 내가 차를 운전하는 건 아니지만 양심도 없이 무겁게 졸음이 내려앉는다. 용담댐 물문화관에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너른 잔디밭에 일상생활의 폐품을 재활용한 환경작품 204점으로 구성한 환경 조각공원은 어딘가 모르게 정감이 갔다. 굳이 말을 안 해도 새로운 아이디어도 그렇고 자원의 활용과 환경보호의 측면을 크게 감지할 수 있었다. 골치를 앓고 있는 우리 군 장계관광지가 재단장되면 장마철마다 떠내려오는 대청댐의 폐품을 활용한 조각 마당을 설치하여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 갔다.
용담댐은 진안에서 금산으로 흐르는 금강을 진안군 용담면에서 막아 만든 댐으로 전주, 완주, 익산, 군산, 서천의 전주권과 새만금의 용수공급, 금강의 홍수피해를 덜어 주기 위해 2001년까지 12년에 거쳐 조성된 댐이다. 댐 아래로 난 다리 밑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모습에 내 마음도 바짓가랑이를 걷고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댐에서 내려오는 첫물인지라 더욱더 시원하리라.
토속적인 것을 찾아가는 길, 더군다나 한국적이었으면 좋겠다. 진안고원장의 할머니 이야기에 쫑긋 귀를 세웠다. 진안천 징검다리에 내려놓은 발자국과 온종일 오락가락하는 빗방울은 모름지기 용담댐에 모여 정강이 힘을 더하고 내가 금산, 영동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옥천으로 되돌아왔을 땐 이미 그 빗방울도 골골을 내리 적시며 옥천에 와 있을 것이다. 해종일 내가 발품을 판 진안은 2만5천여 사람들이 아기자기 살아가는 살뜰한 고을이다. 산 좋고 물 맑아 인심마저 넉넉한 곳이라는 인상을 머릿속에 명품으로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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