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오동1리] 그린벨트 재조정, 주민 최대 숙원
[군서면 오동1리] 그린벨트 재조정, 주민 최대 숙원
<오동1리...1996년 7월 20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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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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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서면 오동1리

군서면 오동1리 취재는 오동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현재 마을 노인들이 제시하는 마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그린벨트 획정으로 인한 주민생활의 불편이었다.

특히 옥천쪽 군서, 군북면 그린벨트 획정은 이웃 대전시민들의 공기를 맑게 해주기 위해 획정된 것으로 옥천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넓게 퍼지면서 실제적인 그리벨트의 경계 조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즉 오동 1리의 경우 마을 앞으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서화천을 중심으로 그린벨트가 획정되어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사는 집 한 채를 마음대로 못하고 벽돌, 스레트 하나도 신고 없이는 올리지 못하는 극심한 생활불편이 가장 주된 불편사항이다. 축사 하나도 마음대로 못짓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주택 등이 형성되어 있는 마을을 그린벨트에서 제외시키고 마을 뒤 산림을 중심으로 새로 경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낡은 주택을 개량, 보수하고 축사를 하나 짓는 것이 그렇게도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인가를 주민들은 되묻고 있으며 정책 입안자들의 탁상 행정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그린벨트가 아닌 타지역과 비교해도 동등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쯤에서 오동 1리의 역사를 돌이켜보자.  오동리(梧桐里)는 옛부터 마을 이름 그대로 전해오던 곳이다. 1739년이나 1890년의 기록에도 역시 오동리라 불렸다.  전하는 말로는 오동리라 불린 유래는 오동리에 월전리 장군대좌, 하동리 옥녀탄금, 사정리 작약미발, 사양리 선인독서 등 이른바 군서 8명당의 하나인 '오동제월(오동제월)'이라는 명당이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전한다.

옛부터 명당의 하나로 지칭돼 오던 곳. 그 명당이 지금 찾아졌는 지는 모를 일이나 수많은 지관들과 풍수들이 찾아들고 뭇사람들의 입으로 회자되던 곳이 바로 이 마을이다.  이와 관련해 월전리 장군대좌혈이 내려오던 중 오동리와 경계 지점쯤에 등성이가 잘려 아예 길이 나버린 곳이 있으니 주민들은 이를 '쑥고개'라고 부른다. 옛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잘랐다고도 하고 일제 침략기 일본인들이 기를 끊기 위해 잘랐다고도 전하는데 쑥과 관련해서는 쑥뜸을 떴다고도 하고 흐르는 피를 쑥으로 막았다 해서 쑥고개라 한단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5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분리돼 오동2리를 이루고 있는 '질벌'을 비롯해 양지말, 아랫말, 도래말, 점말 등이 그것이다.  마을은 옛부터 '무중골'이란 지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무중골(武中)이란 옛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곳에 백제 군사들이 진을 치고 싸웠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특히 백제 멸망 당시 요충지로 여겼던 육로의 탄현(炭峴)이 이곳이라는 견해가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는 마을 뒤 할미성(노고성)과 식장산 사이의 고개 지명이 '숯고개'라는 것과 관련해 나온 말인 듯 하며 노고성의 존재와 무중골 등 삼국시대의 옛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음에 비추어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마을이 있음을 증명해준다. 마을은 현재까지 지금은 비록 7가구 정도가 남았지만 17대를 내려온 경주김씨가 터전을 일궈 살아온 곳으로 현재 60호 가량이 거주한다. 벼농사와 특히 축산이 주요 산업에 속한다.

이곳에서 기르는 한우는 6백여두로 주민수 보다도 두배 이상 많고 면전체적으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83년부터 시작한 느타리버섯 재배는 폐목을 이용한 재배법을 활용하는 등 군내에서도 유명하며 작목반(회장 김명선)을 꾸려나간다. 딸기 재배도 5가구 정도, 다른 마을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양잠 농가도 5∼6 농가로 주민들은 그야말로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마늘 재배도 많은 곳이다.

올해 새로 구성된 부녀회(회장 김영옥)는 마을일 돌보기는 물론 폐품 수집 및 환경운동에도 힘써 특색있는 마을로 이끌어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마을 부녀자들로 구성된 친목회(회장 박점례)가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을에서 난 인물도 많다. 면내에서는 공무원 등 공직에 진출한 인사들이 가장 많은데 현직 김홍헌(서울) 변호사, 김원식 매일경제 보도국장을 비롯, 김홍필 전 옥천부군수, 박노령, 임갑순 전 면장 등이 대표적이다.

군에 근무하는 박종태 농지계장과 박종옥, 김정길, 유소현씨 등의 공무원들도 이 마을 출신.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손현수씨의 아들 손 현(충북체고 2)군. 옥천중 시절 소년체전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했던 손 군은 육상 꿈나무. 투기 종목인 격투기 한국페더급 참피온인 김도형씨도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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